선량한 악당이자 음험한 주인공···감독들 눈에 쏙 들어온 '애덤 드라이버'

백승찬 기자

명감독 캐스팅서 우선순위 차지

배역 위해 물불 안가리는 연습벌레

‘라스트 듀얼’·‘아네트’서 강점 극대화

영화평론가 “시대 뚫는 공시적 얼굴”

영화 <아네트>의 애덤 드라이버와 마리온 코티아르. 둘의 뜨거운 사랑은 예기치 않은 파국을 맞이한다.

영화 <아네트>의 애덤 드라이버와 마리온 코티아르. 둘의 뜨거운 사랑은 예기치 않은 파국을 맞이한다.

리들리 스콧, 마틴 스코세이지, 짐 자무시, 스파이크 리, 노아 바움벡, 스티븐 소더버그, 레오스 카락스, 테리 길리엄, J J 에이브럼스…. 최근 몇 년간 애덤 드라이버(38)를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한 감독들의 목록이다.

드라이버는 앞선 세대의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조니 뎁 같은 대중적 스타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명감독들의 캐스팅 목록에 우선순위로 올라 있다. ‘작가 감독’의 ‘영화제 영화’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드라이버는 전 세계 영화팬의 이목이 집중됐던 <스타워즈> 시퀄에서 핵심 인물인 카일로 렌을 연기했다.

많은 배우들이 선역과 악역을 모두 맡을 수 있다. 드라이버는 선역을 맡을 때 그늘을, 악역을 맡을 때 빛을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 지난달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한 두 영화에서도 드라이버는 자신의 강점을 살린 배역을 맡았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감독 리들리 스콧)는 하나의 성폭행 사건을 세 명의 관계자들이 각기 다르게 기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드라이버는 성폭행 가해자이자 두 번째 증언자로 등장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아네트>(감독 레오스 카락스)에서는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연기했다. 오페라 가수(마리온 코티아르)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 그는 사랑스러운 딸 아네트를 얻지만, 아내와 불화를 겪다가 조금씩 자기파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드라이버의 출연작 중 가장 대중적 영화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의 카일로 렌은 20세기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악당 다스 베이더의 후계자이자, 영웅 한 솔로의 아들인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의 애덤 드라이버. 그는 성폭행 가해자이면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의 애덤 드라이버. 그는 성폭행 가해자이면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

출세작이라 할 만한 HBO시리즈 <걸스>에서도 드라이버는 기괴한 성벽을 가진 남성으로 출연했다. 여느 배우가 연기했다면 ‘변태’라 해도 무방하겠지만, 드라이버는 이 시리즈에서 조금씩 극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잡지 GQ는 <걸스>의 배역을 두고 “성적인 매력과 양보 없는 자신감으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남자. 악당이라 불러도 좋은 남자”라며 “드라이버는 그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사람을 자주 연기한다. 그 사람은 대개 ‘멍청이’다”라고 표현했다.

드라이버는 2019년 뉴요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는 ‘정답’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는지 안다면, 매번 완벽한 연기를 하지 않겠는가.” 서승희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아네트>에서 드라이버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나쁜 아빠’인 어려운 연기를 소화했다”고 평했다.

드라이버는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2년8개월의 고된 훈련을 받고 이라크 파병을 앞뒀으나 산악자전거를 타던 중 큰 부상을 당해 전역을 택했다. 이후 어린 시절의 꿈이던 배우가 되기 위해 줄리아드 스쿨에 입학했다. 드라이버는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에서 땀을 잔뜩 흘리며 연기하고 있는 연습벌레였다고 한다.

스코세이지의 <사일런스>에서는 17세기 일본에 도착한 선교사 역을 맡기 위해 드라이버는 23㎏을 감량했다. 자무시의 <패터슨> 배역을 위해선 버스 운전을 배웠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카일로 렌 역을 맡으면서는 “배우는 모든 걸 생사결단의 문제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버라이어티)고 말했다. 감독들도 드라이버의 배역에 대한 헌신을 높게 평가한다. 스코세이지는 드라이버의 “진지함, 헌신, 우리가 하려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호평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테리 길리엄은 “드라이버는 매우 엄격한 남자다. 반면 매우 얼빠져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로건 럭키>의 소더버그는 “그의 몸, 대화의 리듬은 완전히 예상 밖이면서 또한 매우 유기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사일런스>의 애덤 드라이버. 17세기 일본에 도착한 선교사를 연기하기 위해 23㎏을 감량했다.

영화 <사일런스>의 애덤 드라이버. 17세기 일본에 도착한 선교사를 연기하기 위해 23㎏을 감량했다.

영화 <패터슨>의 애덤 드라이버. 버스를 운전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는 인물이다.

영화 <패터슨>의 애덤 드라이버. 버스를 운전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는 인물이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카일로 렌 역을 맡은 애덤 드라이버.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카일로 렌 역을 맡은 애덤 드라이버.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드라이버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배우라고 평했다. “드라이버는 세련된 이미지의 동시대 얼굴이 아니라 시대를 뚫고 나오는 공시적인 얼굴을 가졌다. 할리우드에도 남배우가 집단으로 출연한 액션영화가 많아지다보니 여배우와 호흡이 좋은 배우가 드물어졌는데, 드라이버는 티모테 샬라메와 함께 여배우와 앙상블이 좋은 배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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