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성욕을 바라보는 두 시선, 베네데타 vs 박쥐읽음

백승찬 기자

일부 성직자는 평생에 걸친 금욕을 맹세한다. 인간이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계율을 지킨 성직자는 속세로부터 경이로운 시선을 받는다.

최근 개봉한 <베네데타>(감독 폴 버호벤)는 금욕의 계율을 공공연히 어긴 수녀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탈리아 페시아의 수녀 베네데타 카를리니(1590~1661)의 삶을 바탕으로 했다. 어린 베네데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녀원에 맡겨진다. 신앙심 강한 수녀로 성장한 베네데타는 23세때 처음으로 예수가 자신을 짐승으로부터 구해주는 등의 초자연적 환영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영적 체험은 환영에 그치지 않고 이마, 손 등 예수의 상처가 있던 부위의 성흔으로 나타난다. 베네데타는 예수가 자신과 결혼하자 했다고도 주장한다. 베네데타는 영적 능력을 인정받아 수녀원장 자리에 오르고 수녀원 안팎에서 추앙받는다.

동료 수녀 바르톨로메아와의 성적 관계가 폭로되면서 베네데타의 파멸이 시작된다. 피렌체 국립문서보관서에는 1619~1623년 이뤄진 베네데타의 재판 관련 문서가 보관돼 있다. 문서에는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의 성행위가 상세히 기록돼있다. 영화에는 베네데타가 나무로 깎아 만든 성모 마리아상을 자위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묘사됐다.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초적 본능>(1992), <스타십 트루퍼스>(1997), <엘르>(2016) 등 문제작을 만들어온 버호벤은 <베네데타>에서도 우회하지 않는 직선적인 묘사를 선호한다.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의 성교는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당시 가톨릭 성직자들은 “육체는 가장 큰 적”이라고 가르쳤지만, 베네데타는 육체의 기쁨을 만끽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버호벤은 베네데타가 영적 체험을 실제로 겪었는지 모호하게 처리했다. 어떤 이들은 베네데타가 스스로 성흔을 만들었다고 의심하지만 베네데타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설령 스스로 상처를 냈더라도 그것은 신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욕을 발현하는 데도 부끄러움이 없다. 처벌을 피해 도주할 기회를 마다하고 베네데타는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신의 선택과 허락을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의 뜻을 유일하게 해석하는 교황청의 권위에 베네데타는 도전한다.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찬욱의 <박쥐>(2009) 역시 사제의 성욕에 대해 말한다. 박찬욱은 버호벤과 달리 우회한다. 뱀파이어 장르물의 외피를 입힌 뒤에야 사제의 욕망에 접근한다. 신부 상현은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백신 실험에 자원했다가 수혈을 받은 뒤 뱀파이어가 된다. 오감이 예민해지고 피를 갈구하기 시작한다. 상현은 어린 시절 친구 강우의 아내인 태주와 몸을 섞는다. 상현은 피리로 자신의 사타구니, 성기 부위를 호되게 내리칠 정도로 성욕을 경계하는 엄격한 사제였다. 왜 흡혈욕구가 성욕으로 이어지는지, 왜 그 성욕이 계율을 파괴할 정도로 강해지는지 박찬욱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상현은 베네데타와 다르다. 흡혈하고 섹스한 뒤 줄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상현의 죄의식은 제3자의 존재나 시선으로 강화된다. 상현은 강우를 낚시터에서 살해한 뒤 자신과 태주 주변에서 강우의 환영을 본다. 상현과 태주가 성교할 때 강우가 그 사이에 끼어있는 장면은 한국영화에서 유례 없이 그로테스크한 베드신이다. 강우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게 되었지만 시선만큼은 늘 상현과 태주를 향한다. 상현은 베네데타와 달리 죄의식과 계율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박쥐>에선 차라리 태주가 베네데타에 가깝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행동을 밀어붙인다.

영화 <박쥐>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박쥐>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쥐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쥐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셀름 그륀 신부는 책 <베네딕도 이야기>에서 위대한 성자로 꼽히는 베네딕도 역시 인간적 욕망을 느꼈으며, 이를 직시해 영성의 원천으로 변화시켰다고 봤다. 성욕이라는 불길 없이는 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도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순결은 기독교 덕목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덕목”이라고 인정한 뒤 “순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그 덕목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혼의 습관을 훈련시켜” 준다고 말한다. 성욕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프로이트는 성적 욕망과 종교의 관계를 일찌감치 연구했다. 그는 논문 ‘강박 행동과 종교 행위’에서 “본능의 체념은 인류 문화 발전의 바탕 중 하나”라며 “종교는 개인에게 본능적인 쾌락을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프로이트의 생각을 따른다면 베네데타는 신에게 바칠 제물을 스스로 취함으로써 기쁨을 누렸고 상현은 그것이 잘못이라 생각하고 후회했다. 상현은 떠오르는 아침 햇빛을 맞이하며 재가 됐지만, 베네데타는 서슬 퍼런 종교재판에서 살아남아 굴욕을 감내하면서도 천수를 누렸다. 누가 더 행복한 삶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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