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보다 모사가 두드러진 대선, 대선 정국은 정치 영화에 득일까 독일까···영화 ‘킹메이커’

백승찬 기자

“졌지만 잘 싸웠다.”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아쉽게 패배한 이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의 서창대(이선균)는 이 말이 가장 싫다고 한다. 승부를 시작했으면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한국처럼 제3지대의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확립돼있는 나라에는 서창대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강원도 인제에서 약방을 하는 서창대가 야당 신민당의 젊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앞에 무작정 나타나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서창대는 애기똥풀을 넣은 편지를 김운범에게 보내며 자신을 선거전략가로 채용해달라고 요구한다. 애기똥풀은 잘못 쓰면 독이 되고, 잘 쓰면 제독하는 재료다. 자신을 잘 활용해서 더 큰 정치인이 돼 달라는 뜻이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서창대(이선균)는 야당 신민당의 젊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의 선거전략가로 나선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서창대(이선균)는 야당 신민당의 젊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의 선거전략가로 나선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야당 신민당의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가운데)은 1971년 대통령선거 신민당 후보 자리를 놓고 ‘40대 기수론’의 김영호(유재명, 왼쪽) 등과 경쟁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야당 신민당의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가운데)은 1971년 대통령선거 신민당 후보 자리를 놓고 ‘40대 기수론’의 김영호(유재명, 왼쪽) 등과 경쟁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설경구)은 서창대의 선거 전략 덕분에 당내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민당 대선 후보가 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설경구)은 서창대의 선거 전략 덕분에 당내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민당 대선 후보가 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서창대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거운동원들은 여당 공화당 운동원인 척 가장해 유권자 앞에서 거만을 떨거나, 선물을 줬다가 빼앗는 식으로 상대의 표를 잠식한다. 김운범은 서창대의 선거 전략 덕에 선거에서 연전연승한다. 캠프 내에서는 서창대의 야비한 전략을 비토하는 이들도 나타나지만, 김운범은 서창대에 신뢰를 보낸다. 김운범은 마침내 쟁쟁한 당내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민당 대선 후보가 돼 현직 대통령과 맞선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서창대는 더 과감한 전략을 짜내지만 이때부터 김운범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 한때 그와 함께했던 선거전략가 고 엄창록의 이야기에 바탕한 픽션이다. 처음 설경구에게 전해진 시나리오에는 배역 이름이 모두 실제 인물이었지만, 큰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새로운 감각의 연출력을 선보였던 변성현은 <킹메이커> 역시 눈까지 즐거운 현란한 정치드라마로 만들어냈다. 큰 틀에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도 화면 구성에 갖가지 재치를 더했다. 매 장면을 꼼꼼하면서도 풍성하게 꾸며냈다. 같은 장면 안에서도 서창대는 그림자가 지는 쪽에, 김운범은 조명을 받는 쪽에 세워두는 식이다. 어선이 둥둥 떠있는 목포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김운범의 연설 장면도 인상적이다. ‘40대 기수론’을 탄 김운범이 김영삼을 연상시키는 김영호(유재명), 이철승을 연상시키는 이한상(이해영)과 신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대결하는 대목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당내 주류인 총재 강인산(박인환),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경쟁자 김영호, 캐스팅보트를 쥔 이한상 등 숱한 변수를 계산하며 서창대와 김운범은 열세를 뒤집으려 한다. 달래고 거래하고 협박하고 속이는 선거 과정이 치밀한 심리 스릴러처럼 그려졌다.

서창대(이선균)는 선거운동원들이 여당 공화당 운동원인 척 가장해 유권자 앞에서 거만을 떨게 하는 등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서창대(이선균)는 선거운동원들이 여당 공화당 운동원인 척 가장해 유권자 앞에서 거만을 떨게 하는 등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설경구, 가운데) 대선 캠프 내에서는 서창대의 야비한 전략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김운범은 서창대에게 신뢰를 보낸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설경구, 가운데) 대선 캠프 내에서는 서창대의 야비한 전략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김운범은 서창대에게 신뢰를 보낸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을 승승장구시켜 당 내에서 입지를 다진 서창대가 직접 공천되기를 원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균열이 발생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김운범을 승승장구시켜 당 내에서 입지를 다진 서창대가 직접 공천되기를 원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균열이 발생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속에서 서창대(이선균, 왼쪽)는 종종 그림자가 지는 쪽에, 김운범(설경구)은 조명을 받는 쪽에 위치해 있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속에서 서창대(이선균, 왼쪽)는 종종 그림자가 지는 쪽에, 김운범(설경구)은 조명을 받는 쪽에 위치해 있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입지를 다진 서창대가 직접 공천되기를 원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균열이 발생한다. 서창대는 이북 출신이기에 반공주의가 강했던 당시에 출세가 쉽지 않은 것으로 설정됐을 뿐, 이외의 개인사는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감독은 서창대에게 구구절절한 개인사를 부여하는 대신 그의 전략이 빚어내는 스릴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창대가 그림자를 벗어나 빛을 향해 가는 욕망의 근원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았다. 누구나 아는 실존 인물에 바탕한 김운범은 많은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탄탄한 캐릭터로 기능할 수 있다. 반면 장르물에 최적화된 모사꾼이던 서창대가 욕망을 가진 현실적 캐릭터로 거듭나기 위해선 조금 더 인간적인 손길이 필요했다. <킹메이커>가 정치 스릴러로서는 성공적이지만, 전기 영화로서는 어정쩡해 보이는 이유다.

코로나19 시국에 미루고 미루다 개봉일을 29일로 잡았다. 공교롭게도 방역 상황이 악화돼 개봉일이 설 연휴인 내년 1월 말로 다시 연기됐다. 김운범의 대의보다 서창대의 모사가 유독 두드러지는 대선이 1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냉소를 부르는 대선 정국은 정치 영화에 득일까 독일까.

영화 <킹메이커>는 고 김대중 대통령, 한때 그와 함께했던 선거전략가 고 엄창록의 이야기에 바탕한 픽션이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는 고 김대중 대통령, 한때 그와 함께했던 선거전략가 고 엄창록의 이야기에 바탕한 픽션이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 속 대통령의 회의 장면. 야당 후보 캠프의 회의 장면과 구도는 비슷하지만 여러 모로 대비되게 짜여졌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 속 대통령의 회의 장면. 야당 후보 캠프의 회의 장면과 구도는 비슷하지만 여러 모로 대비되게 짜여졌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Today`s HOT
개전 200일, 침묵시위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황폐해진 칸 유니스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아름다운 불도그 선발대회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페트로 아웃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5연승한 넬리 코르다, 연못에 풍덩! 화려한 의상 입고 자전거 타는 마닐라 주민들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