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관한 기묘한 우화···아이슬란드 영화 ‘램’

백승찬 기자

세상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이다. 눈보라 속에 거센 숨소리를 숨긴 존재가 양들이 쉬고 있는 축사로 들어온다. 양떼를 키우고 밭을 가는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부부는 얼마 뒤 새끼양을 받아내다가 기묘한 표정을 짓는다. 부부는 새끼양을 집안으로 들여 분유를 먹이고 요람에 눕히며 ‘아다’라는 이름을 붙이는 등 아기처럼 돌본다. 아이가 없던 부부는 행복을 느낀다. 오랜만에 남동생의 집을 찾은 형 피에튀르(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는 아다를 본 뒤 부부의 행동에 아연실색한다.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29일 개봉하는 <램>은 보기 드물었던 아이슬란드 영화다. 춥고 광활하고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의 한적한 목장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그려냈다. 초반 20분은 대사가 거의 없다. 마치 농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처럼 마리아 부부의 일상을 담아낸다. 묵묵히 소임을 수행하지만 부부의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다. 아다가 등장하면서 부부의 삶이 바뀌고, 형 피에튀르가 나타나면서 다시 한번 긴장감이 싹튼다.

아다의 정체는 영화 시작 40분쯤이 지나서야 일부가 밝혀진다. 그만큼 전개가 완만하다.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잔잔한 분위기 속에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을 조금씩 전개시킨다. 부부와 아다의 일상을 차분히 관찰하도록 하고 이들의 삶이 어찌 될지 궁금해하도록 만든다.

수입사는 이 영화의 장르를 ‘호러’라 칭했지만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충격을 주는 장면은 없다. 습기 찬 겨울처럼 으스스한 공기가 이어진다. 이 영화로 장편영화 연출에 데뷔한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은 조부모의 양떼 목장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경험과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민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민담에선 인간은 동물이, 동물은 인간이 되곤 한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도 종종 모호해진다. 경계가 흐려진 상태를 긍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고하는 경우도 있다. <램>은 후자다. 특히 짐승의 영역을 넘보려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한다. 그 욕망이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법한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음을 암시한다.

눅눅하고 기묘하고 교훈적인 우화다. 홀린 듯 아다에게 애정을 쏟는 누미 라파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올해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독창성상’을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영화 <램>의 한 장면 | 오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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