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흥행 키워드···마블은 왜 ‘멀티버스’를 열었나

백승찬 기자

20편 이상 마블영화 스토리 쌓이며 가능해진 다중우주 도입

디즈니플러스의 ‘왓 이프…?’와 ‘로키’서도 멀티버스 선보여

상업적 판단…제약 없이 방대한 세계관에 우려 목소리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   피터 파커(왼쪽)의 부탁을 받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멀티버스의 문이 열린다. | 소니 픽쳐스 제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 피터 파커(왼쪽)의 부탁을 받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멀티버스의 문이 열린다. | 소니 픽쳐스 제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 멀티버스가 열려 옛 악당 그린 고블린이 나타난다.  | 소니 픽쳐스 제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 멀티버스가 열려 옛 악당 그린 고블린이 나타난다. | 소니 픽쳐스 제공

지난달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팬데믹 이후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미 죽은 옛 악당,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이 나타나는 ‘동창회’에 600만 가까운 관객이 환호했다.

추억의 영웅과 악당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대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4기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된 ‘멀티버스’ 덕이다. 마블 영화 속 멀티버스는 각기 다른 차원의 우주로, 서로 중첩될 일이 없는 세계관을 뜻한다. 멀티버스 덕에 여러 개의 우주에 각기 다른 스파이더맨, 악당들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 가능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멀티버스는 코믹스 역사에서 매우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도구의 하나였다”며 “60~80년에 이르는 마블 코믹스의 역사, 20편 이상의 마블 영화들을 갖고 있기에 이제 멀티버스 이야기를 시작할 충분한 캐릭터가 쌓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블은 <노 웨이 홈> 이전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전개할 단서들을 조금씩 제시해왔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9부작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는 MCU의 영웅들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삶을 사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매 에피소드에는 “시간, 공간, 현실은 일직선 이상이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프리즘이다. 하나의 선택이 끝없는 현실로 분화되며, 당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왓 이프…?>에서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 로저스가 아니라 그의 연인인 페기 카터가 슈퍼솔저 혈청을 맞고 ‘캡틴 카터’가 된다. ‘어벤져스’ 멤버로 예정됐던 아이언맨, 토르, 호크아이, 헐크가 차례로 살해되는 사건도 발생한다. 역시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6부작 시리즈 <로키>도 멀티버스 세계관에 기반한다. 로키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에 의해 살해됐지만, <로키>는 그 이전 시간대에서 분기된 멀티버스를 그리기에 같은 배우인 톰 히들스턴이 출연할 수 있었다. MCU의 차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제목에서부터 멀티버스를 다룰 것을 천명했다. 이 영화의 티저 예고편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멀티버스의 사악한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멀티버스 세계관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는 무수히 많은 우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우주에 분신을 갖고 있다”는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멀티버스 이론을 라디오 방송에 비유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공간은 여러 방송국에서 송출된 수많은 전파로 가득 차 있다. 라디오를 켜면 그중 하나의 전파만 수신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노 웨이 홈>에서처럼 멀티버스의 여러 자아들이 한 공간과 시간에서 만나는 일은 양자역학을 동원해도 상상하기 어렵다.

MCU의 멀티버스는 2008년 <아이언맨> 이후 영화,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30편 이상의 목록이 쌓여 여러 등장인물과 서사가 충돌하는 양상을 해결하는 방책으로 보인다. 한 작품의 설정이 다른 작품과 충돌해도 ‘각기 다른 멀티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멀티버스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MCU에서 죽거나 은퇴한 인기 히어로를 다시 불러올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노 웨이 홈> 역시 이 전략을 따랐다. SF작가 이경희씨는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에서 “‘마블 코믹스’는 다세계 해석을 아예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다. 마블에서 출판하는 코믹스들은 모두 다른 버전의 평행 우주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워, 같은 히어로의 이야기를 무수히 반복해 생산한다”고 적었다.

다만 멀티버스 세계관 때문에 기존의 촘촘한 서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 웨이 홈>은 촬영 중에도 시나리오를 고쳤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대혼돈의 멀티버스> 역시 촬영 종료 후 대규모 재촬영을 했다. 과거 영화와 향후의 영화, 텔레비전 시리즈 등을 연결하는 방대하고 복잡해진 세계관을 제작진도 통제하기 어려워한다는 분석이 잇달았다. 케빈 파이기조차 멀티버스 세계관은 “세심하게 적용돼야 한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왓 이프…?>의 여덟 번째 에피소드에서 울트론은 타노스를 죽여 인피니티 스톤을 가진 뒤 멀티버스의 경계를 넘는다. 다른 멀티버스에서 이를 지켜보던 화자 왓쳐가 “이건 불가능해”라며 놀라자, 울트론은 “멀티버스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되받는다. 좋은 작품은 주어진 한계를 의식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과정에서 탄생하곤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해진 멀티버스에선 향후 수습할 수 없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SF평론가 고장원씨는 “1950년대 이후 숱하게 나온 멀티버스 SF가 현대 과학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양한 지식을 다뤄왔다면, 마블이나 DC코믹스의 멀티버스는 조금 더 상업성이 강화된 형태에 가깝다”고 평했다.

OTT 시리즈 <로키>의 한 장면. 멀티버스 세계관에 기반했다.  | 디즈니플러스 제공

OTT 시리즈 <로키>의 한 장면. 멀티버스 세계관에 기반했다. | 디즈니플러스 제공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 포스터. 이 시리즈에서 MCU의 영웅들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삶을 산다.  | 디즈니플러스 제공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 포스터. 이 시리즈에서 MCU의 영웅들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삶을 산다. | 디즈니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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