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한산한 극장서 즐기는 나만의 자유시간읽음

백승찬 기자

꺼봐요, 피곤했던 일상…켜봐요, 새로운 세상

[설 특집]한산한 극장서 즐기는 나만의 자유시간

2년 전이라면 떠들썩했을 겨울방학 극장가는 지금 한산하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수치인 7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는 사실은 영화 관계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안긴다.

설연휴를 앞두고 새로운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한국영화도 있고, 다채로운 시선의 다양성 영화도 있다.

마스크를 쓴 채 대화 없이 한쪽을 보고 2시간가량 보내는 영화관은 감염 위험으로부터 생각보다 안전한 공간이다. 음식물 취식이 없을 때 영화관에서 집단감염이 보고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설연휴에 볼만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한국영화 2파전

<해적: 도깨비 깃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해적: 도깨비 깃발>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은 총제작비 230억원대의 대작이다. 2014년 개봉해 866만 관객을 모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후속편 격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바뀌었다. 여말선초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해랑(한효주)이 이끄는 해적단과 무치(강하늘)가 대장인 의적단의 모험을 그린다. 우연히 같은 편이 된 두 무리는 고려 왕실의 사라진 보물을 찾으려 한다. 역적 부흥수(권상우)가 이들 앞을 가로막는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호쾌한 액션과 코미디의 조화를 꾀했다. 새로운 해적왕을 꿈꾸는 막이 역의 이광수가 코미디 지분의 절반가량을 담당한다. 야망은 크지만 능력은 부족하고, 자신감이 지나쳐 주변의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는 이광수의 장기이기도 하다. 명확한 시대배경을 전제하지만 사실상 판타지 모험극에 가깝다. 한국영화가 바다 위 액션을 연출하는데도 기술적으로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킹메이커>(감독 변성현)는 대선을 한 달여 남기고 개봉하는 정치영화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한때 그의 정치참모였던 고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름은 모두 바꾸었다. 배우들이 부담을 덜고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설경구가 불리한 조건을 딛고 정치적 입지를 다져가는 야당의 젊은 정치인 김운범 역을, 이선균이 그를 돕는 서창대 역을 맡았다. 서창대는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김운범은 서창대의 전략에 힘입어 승승장구해 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지만, 이후 서창대와 조금씩 멀어진다. 이기기 위해 표를 모으고 상대의 표를 깎고 적과 연합하고 동지와 멀어지는 과정이 긴박한 스릴러처럼 그려졌다. 풍부한 의미를 담도록 짜인 세트,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설계한 조명으로 눈도 즐거운 영화다.

■다양한 시선의 영화들

영화 <원 세컨드>의 한 장면 | 찬란 제공

영화 <원 세컨드>의 한 장면 | 찬란 제공

<원 세컨드>는 중국의 저명한 감독 장이머우의 영화다. 문화혁명기로 추정되는 시대, 네이멍구의 사막을 가로질러 한 남자가 시골 마을회관을 찾아온다. 남자는 이곳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원한다. 필름이 이미 다른 마을로 넘어갔다는 소식에 남자는 다시 이동한다. 남자는 영화 상영 전 틀어주는 중화뉴스(한국으로 치면 대한뉴스)에 오래전 헤어진 딸이 ‘1초’가량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의 염원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한 소녀가 필름을 훔쳐 달아난다. 소녀가 필름을 훔친 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가 첫 상영을 앞두고 ‘기술적 문제’로 출품이 취소됐다. 외신에서는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했다. 소박하면서도 뭉클한 이야기에 능한 장이머우의 솜씨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제공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김정영)은 여자라서 혹은 가난해서 공부를 못하고 미싱을 돌렸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에도 청계피복노동조합 여공들은 퇴근 후 공부하던 노동교실을 지키고,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1977년 9월9일 노동교실 점거 결사투쟁 사건 이후 주도자들은 구속되고 노조원들은 흩어졌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오랜 침묵을 깬다. “시댁도, 남편도, 자식들도 모르는 일”이라며 출연을 거절하던 노동자들이 다시 모여 당시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떠올린다. 이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음을,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난 그 시절이 지금도 삶의 희망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어나더 라운드>(감독 토마스 빈테르베르크)는 술과 인생에 관한 영화다. 무기력과 권태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 네 명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이 정도 알코올이 있으면 삶이 한층 창의적이고 활력에 넘친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가설대로 삶에 활력이 돌지만,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서 각종 사고도 일어난다. ‘중년의 위기’를 자기연민 없이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 종반부 마스 미켈센이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담은 춤을 보여준다.

<1975 킬링필드, 푸난>(감독 드니 도)은 제42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이다. 1975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 크메르 루주에 장악된 후 모든 걸 빼앗긴 슈가 잃어버린 세 살배기 아들 소반을 찾기 위해 나서는 여정을 그렸다. 드니 도 감독이 어머니가 겪은 사건을 기반으로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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