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대중 선거전략가 다룬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이 대선 아닌 후보경선을 더 공들여 묘사한 이유

백승찬 기자

변성현 감독(42)은 대선 한 달여 앞으로 정해진 <킹메이커>의 개봉 시기를 “정말 원하지 않았다. 대선 시국 노리고 이슈화하려고 만들지는 않았다는 점만은 믿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기가 “영화를 영화로 평가받기에 안 좋은 타이밍”이라고 설명했다. <킹메이커>는 촬영을 마치고 2020년부터 개봉을 준비했으나 예기치 못한 팬데믹으로 자꾸 늦춰졌고 결국 지난달 26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전략가였던 엄창록의 실화에 바탕했다. 설경구가 젊은 정치인 김운범 역을, 이선균이 이북 출신의 전략가 서창대 역을 연기했다. 명백한 정치 영화를 정치의 계절이 아닐 때 개봉하고 싶었던 것은 변성현이 그만큼 영화의 만듦새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변성현을 최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엄창록은 김 전 대통령 자서전에 몇 줄의 글로 소개된 인물이다. 한때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곁에서 기발한 전략으로 선거 승리를 도왔으나 어느 순간 당시 여당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지역감정을 자극한 전략도 엄창록의 아이디어라고 전해진다. 변성현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간 엄창록을 묘사한 김 전 대통령의 문장에서 원망보다는 애틋함을 느꼈다”며 “엄창록에 대해 자료를 찾아봤는데 알려진 게 적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창작자가 끼어들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 <킹메이커>의 변성현 감독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변성현 감독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애초 시나리오에 ‘김대중’, ‘엄창록’이라고 적혀있던 배역 이름을 촬영 전 ‘김운범’, ‘서창대’로 바꾼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실제 이름을 따온다면 배우로서도 자유롭게 연기하기보다는 실존 인물을 모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같은 대사 한 줄이라도 ‘나 김대중이오’라고 할 때 영화적으로 주는 힘이 있거든요. 실화의 힘이냐, 자유로운 창작의 여지를 두느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변성현은 김대중을 존경한다고 했다. 다만 “개인적인 존경심과 별개로 김운범을 ‘거인’처럼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운범의 이데올로기, 욕망, 갈등을 직접 파고들기 보다는 ‘서창대를 통해 본 김운범’을 그리려 했다. 서창대는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선거에 이기고자 한다. 정치 신인으로서 서창대의 도움을 받던 김운범은 어느 순간 서창대가 선을 넘었다고 느낀다. 김운범과 서창대가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수단이 정당화되는가’를 두고 논쟁하다가 이별을 결심하는 7분간의 대화 장면은 변성현이 촬영하면서 가장 긴장한 대목이다. 변성현은 “처음에는 ‘원 테이크’로 찍을까 생각했다가 결국 ‘평범하게 찍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변성현은 관객이 연출과 촬영의 테크닉을 눈여겨보기보다는 두 배우의 호흡, 대사, 연기에 집중하길 원했다.

<킹메이커>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서창대의 도움을 받은 김운범이 승승장구하는 대목, 김운범이 신민당 대선 후보경선에서 당내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출되는 대목, 서창대가 여당으로 넘어가고 김운범은 대선에서 패배하는 대목이다. 영화적으로는 두번째 대목이 하이라이트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세 후보가 연합하고 배신하는 과정이 긴박한 스릴러처럼 그려졌다. 마지막 대목은 애잔하고 쓸쓸하다. 변성현은 “시나리오 검토 단계에서 3막(마지막 대목)이 ‘루즈’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난 애초의 이야기 구조를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대선이 아니라 후보경선을 더 공들여 묘사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부와 싸우는 이야기는 ‘플랫’하다고 느꼈다.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이 맞붙은) 신민당 경선이 역대 가장 재미있는 경선이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김운범이 야당인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김운범이 야당인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김운범(설경구, 오른쪽)은 빛, 서창대(이선균)는 그림자와 같은 인물이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김운범(설경구, 오른쪽)은 빛, 서창대(이선균)는 그림자와 같은 인물이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던 변성현의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은 설경구, 임시완의 남성 투 톱 영화였다. 표면적으로 갱스터 장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두 남자의 멜로물이라 해도 될 정도로 감정 흐름이 묘하다. <킹메이커> 역시 김운범, 서창대 사이에 기묘한 애증이 나타난다. 변성현은 “내 모든 영화의 작법 바탕에 멜로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다. 어쩌면 다른 걸 못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변성현은 스크린의 모든 구석을 신경 쓰고 공 들이는 감독이다. 배우에게는 고개를 어디까지 돌려야 할지까지 주문한다. <킹메이커>의 미술과 촬영 역시 세심하게 조율돼 있다. 빛과 어둠이 김운범과 서창대가 선 자리를 절묘하게 나누고, 1960~70년대의 풍경이 사실적이면서도 동시대의 감각을 거슬리지 않게 재현됐다. 변성현은 “고증은 하되 따라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고 언급했다.

차기작은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이다. 설경구가 세번째로 변성현의 영화에 출연한다. 전도연, 이솜, 구교환이 함께 한다.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 킬러와 그가 소속된 회사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작품이라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변성현은 “찍으면서도 ‘이걸 핸드폰으로 본다고?’라고 얘기하곤 한다. 억울하다. 넷플릭스 관계자 만날 때마다 ‘단 몇 개 관이라도 좋으니 극장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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