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캐스팅, 퀴어 커플...현대적으로 각색된 '나일 강의 죽음'

백승찬 기자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의 한 장면. 리넷(갤 가돗)은 경제력, 외모 등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의 한 장면. 리넷(갤 가돗)은 경제력, 외모 등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서 에르큘 포와로 역을 맡고 연출까지 한 캐네스 브래너.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서 에르큘 포와로 역을 맡고 연출까지 한 캐네스 브래너.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어떤 작품들의 전개는 21세기 독자에게 너무 느리고 점잖게 느껴질 수 있다. <나일 강의 죽음>(1937)의 경우 나일 강 위 유람선 안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정작 등장인물들은 놀랄 정도로 태연하다.

9일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은 이 소설의 두번째 영화화 사례다. 첫번째는 1978년 이뤄졌다. 이번 영화는 팬데믹으로 수차례 개봉이 미뤄진 끝에 선보였다.

배경은 나일강 위의 호화 유람선이다. 아름다운 외모, 막대한 재산, 탁월한 사업감각을 모두 갖춘 리넷(갤 가돗)은 사이먼(아미 해머)과 막 결혼해 신혼여행중이다. 문제는 사이먼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리넷의 친한 친구 재클린(에마 매키)의 남자친구였다는 점이다. 재클린은 리넷과 사이먼의 신혼여행지마다 따라다니며 분노의 눈길을 보낸다. 어느날 밤 사이먼과 실랑이를 벌이던 재클린이 우발적으로 총을 발사해 사이먼이 다리에 부상을 당한다. 모두가 재클린을 진정시키고 사이먼의 치료에 여념이 없는 사이, 리넷이 관자놀이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다. 유람선에 탑승해있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포와로는 크리스티가 창조한 대표적인 명탐정이다. 많은 독자가 포와로를 알고 있다는 전제 때문인지, 원작에는 포와로가 별다른 배경 설명 없이 등장한다. 영화는 포와로의 전사(前史)를 덧붙이며 시작한다. 포와로는 1차대전 참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이후 평생의 사랑을 잃었다는 설정을 내세웠다. 포와로 특유의 콧수염의 유래도 전쟁 당시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설명했다. 크리스티 원작을 모를 가능성이 있는 현대 영화 관객들을 위한 성의 있는 각색이다.

러닝타임이 127분인데 1시간이 지날 쯤에야 첫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첫 살인사건인 리넷의 죽음은 70분쯤에 발생한다. 추리영화로서의 전개가 느리다고 할 수 있지만 이후엔 사건 흐름이 빠르다. 캐릭터 구축에 사용되는 전반부 1시간도 헛되지는 않다. 등장인물은 대체로 현대 관객이 수긍할만하게 각색됐다. 가수와 그 매니저인 조카 캐릭터는 흑인 배우가 맡았다. 리넷의 사촌이자 재산 관리인 앤드류는 인도 배우 알리 파잘이 연기했다. 원작에서 대책 없이 과격한데다 반인본주의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주의자 남성 캐릭터는 합리적인 비판정신을 가진 중년 여성 캐릭터로 전환됐다. 퀴어 커플도 등장한다.

브래너는 2017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이어 다시 한번 크리스티 원작을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다. 브래너가 자전적 요소를 담아 각본을 쓰고 연출한 흑백영화 <벨파스트>는 8일(현지시간) 발표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왕립셰익스피어극단의 배우였다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록하트 교수가 됐고, 크리스티의 대중적 추리소설을 연출했다가 북아일랜드 노동자 가정을 그린 흑백영화를 연출하는 등 브래너는 다채로운 경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는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는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서 포와로 역을 맡고 연출까지 한 케네스 브래너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나일 강의 죽음>에서 포와로 역을 맡고 연출까지 한 케네스 브래너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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