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서 통제는 연인 관계의 통제보다 비정상적일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가 던진 평등과 합의

넷플릭스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모럴센스>는 시종일관 ‘적극적 합의’를 핵심 키워드 삼아 BDSM을 둘러싼 현실의 지형도를 꼼꼼하게 살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모럴센스>는 시종일관 ‘적극적 합의’를 핵심 키워드 삼아 BDSM을 둘러싼 현실의 지형도를 꼼꼼하게 살폈다. 넷플릭스 제공

<모럴센스>는 지난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로맨스 코미디 영화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유능하지만 애교 없고 무섭다는 평가를 듣는 사원 지우(서현)는 비슷한 이름 때문에 회사 동료인 대리 지후(이준영)의 택배를 잘못 수령하고,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BDSM 성향자인 지후가 지우에게 주인님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두 사람은 3개월짜리 계약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잠깐, 영화에서도 간단하게 나오는 BDSM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DS는 지배와 복종을 뜻한다. 지배하는 도미넌트와 지배당하는 서브미스, 줄여서 ‘돔’과 ‘섭’이라고 부른다. <모럴센스>에서 지우와 지후가 맺는 것은 DS 관계이며, 통제하고 통제당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유희가 핵심이다. 흔히 때리고 맞는 행위를 상상하는 것은 SM이며 신체적, 감각적 개념이다.

‘낮엔 직장 상사, 밤엔 복종 관계’
3개월짜리 ‘정신적 유희’ 계약
색다른 사랑 방식 통해 ‘평등’ 질문

<모럴센스>의 첫 장면은 이러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평등한 관계는 없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면 의도했든 아니든 권력은 한쪽으로 기울죠.” 원작과 영화는 BDSM을 둘러싼 현실의 지형도를 꼼꼼하게 살핀다. 여성이자 직급이 낮은 지우가 지배하는 돔 역할, 남성이자 상사인 지후가 섭 역할을 맡아 권력의 저울을 맞추고, 현실의 위계 폭력과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식이다. BDSM에 대한 설명은 물론 ‘정상성’ 그리고 ‘변태성’, 올바른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고찰하는 원작은 성교육서로 삼아도 될 정도다. 원작에서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은 달라서, 백 명의 커플이 있다면 이들의 사랑 방식은 이백 개’라고 표현하는 부분은 개인의 고유성과 상호 존중을 강조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취향이, 착취나 강요 없이 성립하려면, ‘어떤’ 상호 소통과 합의가 필요한가? 이러한 고찰 없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면, 폭력과 착취를 옹호하는 패착에 빠질 것이다. 반대로 <모럴센스>의 고찰을 무시한 채 소재의 ‘빻음’만 비판한다면 소위 비정상으로 구별되는 욕망과 관계를 간단하게 폐기 처분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모럴센스>는 특수 취향으로 낯설게 보이는 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 평등과 합의라는 의제를 던져놓는다. 이는 결국 ‘BDSM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이러한 적극적 합의가 부족한지, 그래서 합의의 형식이 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폭력을 ‘로맨틱’으로 학습
‘분위기 깬다’ 인식에 피해자 양산
결국 정상인·성범죄자 구별 못 해

지우와 지후는 다양한 규칙이 포함된 계약서를 작성한다. 섭인 지후는 원할 때 돔인 지우에게 지배와 폭력을 요청하지만, 안전어를 사용해 언제든 행위를 멈출 수 있다. 이 통제권이 중요하다. 통제권이 없다면 BDSM은 그저 폭력에 불과하다. 지우의 지인인 혜미가 성향자끼리 데이트할 때, 방에 들어서자마자 강압적으로 돌변한 상대 남자처럼. 혜미가 당황하며 “우리 여기까지 합의 안 했잖아요”라고 말하자, 남자가 비웃는다. “좋아하잖아, 억지로 하는 거.” ‘변태 바닐라’는 이렇게 성향자인 척 접근해 규칙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구는 사람을 뜻한다. 이 변태 바닐라와, ‘너도 즐겼잖아’라고 말하는 무수한 ‘정상인’ 성범죄 가해자는 사실상 구별이 불가능하다. 남자를 제압한 혜미는 “내가 변태라고 네가 날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고 일갈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런 일을 겪으면 고소하고 싶어도 소용이 없다고 운다. 합의 없는 폭력은 플레이가 아니지만, 합의된 폭력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혜미는 ‘쉽게 강간할 수 있는/해도 되는 여자’가 된다. 디지털성범죄를 추적하고 고발하며 n번방 문제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BDSM 문화에서 어떻게 청소년 성착취가 일어나는지 고발한 기획보도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성향자이자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는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고, 수사관들이 합의된 플레이로서의 BDSM과 폭력을 구별하지 못해 피해자가 폭력에 동의한 것으로 착각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뤘다. 이것은 BDSM 성향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거나 밤늦게 돌아다녔다거나,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많은 여성이 피해자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어떤 상황이든, 성인지 감수성의 변화와 성평등이 필요한 이유다.

지우가 지후와의 연애를 고민할 때,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건 수직적 관계지만 연애는 대등한 관계여야 하니까.” 지후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지우가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당연히 고백도 받아들일 거라고 착각’한 지점이다. 평소의 플레이 때 자신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었으니까. 하지만 플레이와 현실은 다르고, 합의된 상태가 아니라면 피지배자인 섭에게도 지배자인 돔과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모럴센스>는 분명히 한다. 이쯤에서 질문해야 한다. BDSM에서 하는 놀이로서의 통제는 연인 관계에서의 일상적 통제보다 비정상적인가? 안전어가 있으면 끝나는 인위적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폭력보다 얼마나 위험한가? 상호 합의하에 강압적 역할을 연기하는 것과, 상대를 제압하거나 강제로 키스하는 것이 로맨틱하다고 가르치는 사회 중 뭐가 더 ‘변태적’인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속해서 ‘적극적 합의’라는 개념을 논의해왔다. 적극적 합의는 타인과 성적 행위를 할 때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떤 조건과 한계로, 어떻게, 왜 하는지 또는 하지 않을지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당사자 간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영국, 스웨덴, 독일,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11개 주 등)가 강간죄 구성 요건으로 ‘동의’를 두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권고했고, 정의당을 중심으로 21대 국회에서 이미 비동의 간음죄가 발의된 적 있다.

적극적 합의에는 다섯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적극적 합의는 첫째,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합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말 또는 행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날 것. 모텔에 함께 갔다거나, 심지어 음식을 덜어줬다는 행동마저 오랫동안 동의로 통용되었으나 모두 틀렸다. 합의가 아니다. 둘째, ‘의식이 있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음주운전 또는 졸음운전 차량에 타지 않듯이, 술이나 약물에 취한 사람에게 성적 행위의 의사를 물어서는 안 된다. 셋째,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결정자가 지금 이 성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험(임신이나 감염 등)을 내포하는지 등을 알고 이해하지 못했다면 ‘Yes’는 ‘Yes’가 아니다. 넷째,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당사자 간의 위계 때문에 거절이 불이익이나 위협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는 적극적 합의가 불가능하다. 다섯째, ‘모든 과정에서,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키스에 합의했다고 해서 섹스에 동의한 것이 아니며, 섹스 도중에도 한쪽이 원한다면 멈춰야 한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라고 해도 함부로 상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형법은 현재 또는 과거에 상대방과 혼인 관계 혹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은 동의를 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명시한다.

적극적 합의는 단순히 한쪽이 의사를 묻고, 한쪽이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양쪽이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개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요구 또는 거절하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이걸 다 지키면서 도대체 뭘 할 수가 있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필요한 절차를 무시한 덕분에 우리는 너무 쉽게 로맨틱해지는 지름길로만 달려왔다. 그 잘못된 경로 때문에 폭력과 통제를 로맨틱하다고 학습하고, 적극적 합의를 구하는 과정은 분위기 깬다고 받아들이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자를 숱하게 양산했다.

로맨스 서사, 동의·상호 존중 필요
처음부터 있어야 할 ‘적극적 합의’
좀 늦어진 규범으로 반영하면 돼

적극적 합의를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것은 아직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인물 간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청자의 비명과 딱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에 키스하는 것과, 그 순간 “키스해도 돼?”라고 묻는 것은 몰입의 밀도가 다르다. 갑자기 과속방지턱 하나가 턱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로맨스 서사에는 적극적 합의와 동의,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사실, BDSM만 롤플레잉을 하는 게 아니다. 로맨스, 특히 이성애 자체가 이미 롤플레잉이다. 바람직한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상이 정형화되어 있고 ‘남친룩’, ‘소개팅룩’이 따로 있으며, ‘심쿵’ 같은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행위와 대사가 있다. 연애와 사랑은 사회적 문법과 관습을 따른다. 그저 여기에 적극적 합의를, 처음부터 있어야 했으나 좀 늦게 만들어진 규범으로 추가하면 될 일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은유가 통할 만큼 충분한 정보와 관계가 쌓였다면 시적 허용(?)처럼 은유를 좀 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동의를 뜻하진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그만, 그놈의 “라면 먹고 갈래?”를 놔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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