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제가 찍은 그 영화를 '픽'한 사람들...다양성 영화의 새 강자 왓챠

백승찬 기자

왓챠 콘텐츠수급팀 3인 인터뷰

티탄, 아네트, 레벤느망 등 화제작 수입

“모두가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양성 영화시장 새 강자 된 왓챠 콘텐츠수급팀 관계자들을 17일 서울 서초구 왓챠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이유승, 전혜린, 전은재씨.  김창길기자

다양성 영화시장 새 강자 된 왓챠 콘텐츠수급팀 관계자들을 17일 서울 서초구 왓챠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이유승, 전혜린, 전은재씨. 김창길기자

지난해 개봉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과 감독상 수상작 <아네트>, 다음달 개봉하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레벤느망>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수입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영화 수입은 돈만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영화제 마켓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영화 중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거래할 수 있는 판단력, 해외 영화관계자와의 네트워크가 모두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영화 수입에 뛰어든 지 3년밖에 안 된 왓챠가 좋은 작품을 골라 수입하고 국내 개봉까지 성사시킨 건 눈에 띄는 일이다. 왓챠에서 영화 수입을 담당하는 콘텐츠수급팀 전혜린 팀장과 이유승·전은재 매니저를 최근 서울 서초구 왓챠 사무실에서 만나 그 비결을 들었다.

왓챠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OTT시장에 뛰어들었다. 웨이브, 티빙 등 다른 국내 OTT와 달리 왓챠는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을 배경에 두지 않아 콘텐츠를 자체 수급해야 한다. 영화의 경우 기존 수입사에서 국내 방영권을 사오다가, 2019년부터 직접 수입을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왓챠 공개용으로 영화를 수입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많은 해외 영화사들이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회사에 영화를 팔기 꺼렸기 때문이다. OTT 시장의 성장과 함께 극장 스크린의 권위가 줄어들긴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는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하고 영상, 음향의 질을 높인다. 전혜린씨는 “극장 플랫폼을 거치지 않으니까 해외 영화사들 사이 왓챠 인지도가 쌓이지 않았다”며 “이후 극장 개봉을 추진했고, 다른 큰 수입사들이 고르지 않은 작품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 선택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플랫폼 이미지를 단숨에 고양할 수 있는 이른바 ‘아트버스터’에 전력하는 것이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 애덤 드라이버·마리옹 코티아르 주연의 <아네트>는 제작 소식이 전해진 수년 전부터 많은 수입사가 눈독을 들인 작품이다. 처음에는 카락스 측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유승씨는 “카락스가 아날로그적인 감독이라 처음에는 OTT 회사가 수입을 한다는 데 대해 우려했다”며 “ ‘우리는 극장과 상충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극장 경험을 플랫폼에 가져오려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왓챠 유저들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과감하게 구입하는 방법이다. 왓챠는 대다수 유저가 좋아할 만한 블록버스터는 없지만, 영화팬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성영화, 고전영화를 제공하는 ‘틈새 전략’을 구사한다. 기계와의 성행위를 다룬 <티탄>, 임신중단을 소재로 한 <레벤느망>은 다른 수입사들이 섣불리 관심 갖기 어려운 영화였으나, 왓챠가 구매한 후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빙 영상으로 그려낸 동성애자 난민 이야기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다음달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례적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장편 다큐멘터리, 국제 장편영화상에 동시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 역시 왓챠가 스크리너만 보고 구매한 작품이다.

작품 수입을 결정할 때는 콘텐츠수급팀 3인을 포함해 총 10명가량의 직원이 함께 논의한다. 이유승씨는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일 필요는 없다. 저희가 추구하는 비전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전혜린씨는 “아무리 돈을 벌 가능성이 있더라도 ‘킬링 타임’을 위해 복제된 것 같은 영화는 지양한다”고 말했다. 전은재씨는 “<레벤느망>은 시놉시스만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며 “상업적으로 팔기 어렵더라도 극장과 왓챠에서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레벤느망>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레벤느망>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아네트>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아네트>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한 장면 | 왓챠 제공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시기엔 네트워킹과 작품 구매를 위해 해외 영화제에 자주 출장을 갔으나, 이후엔 출장길이 막혔다. 최근 끝난 베를린영화제 마켓에도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해외 영화인들과 직접 교류할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온라인으로 영화를 봐도 작품을 판단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한다. “‘영화제 뽕 맞는다’는 표현이 있어요. ‘마켓 피버’에 휩싸여 영화를 제대로 판단 못할 수 있다는 애기죠.(웃음)”(전은재), “ ‘큰 영화’가 선보이면 이성적 사고를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수입사와 경쟁이 붙을 것 같으면 마음이 급해져 막 지르는 거죠. 온라인으로 함께 보고 논의하니까 오히려 작은 영화도 ‘한 땀 한 땀’ 들여다보는 측면이 있어요.”(이유승)

왓챠는 10여년 전 과거 영화평 기록 사이트로 출발했을 때부터 누적된 6억5000만개의 별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별점과 개인 취향을 근거로 유저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왓챠의 강점이다. <오징어 게임> 등 시리즈물이 강세인 OTT 세상에서 영화는 살짝 시선을 벗어난 듯하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 OTT를 구독하는 이들도 상당수라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전혜린씨는 “시청시간 기준으로 보면 시리즈물이 인기지만, 특정한 포인트를 가진 영화가 유저를 유입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시리즈물의 긴 시청시간을 장벽으로 느끼는 유저도 있다”고 말했다. 전은재씨는 “<티탄>이 왓챠에 공개된 날 영화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왓챠파티에서 새벽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왓챠는 올 상반기에도 개성 있는 영화들을 선보인다.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애프터 양>, 페넬로페 크루즈가 감독 역으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콧대 높은 배우 역으로 출연하는 <오피셜 컴피티션> 등이다. 이 영화들 역시 극장 개봉 후 왓챠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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