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 ‘얼굴이라는 미로 속에서’ 김민세

박송이 기자

“꿈·현실 오가는 영화 좋아해…나를 되찾는 시험에 합격한 기분”

2024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자로 <릴리와 들장미>(도서출판b)의 정철훈 시인이 뽑혔다. 시 심사위원단(위원장 이은봉, 위원 고진하·고형렬·오성호)은 수상작을 두고 “심미적 연민과 함께하는 서정적 페이소스가 그의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차원 높은 예술로 만들고 있다”라고 평했다. 영화 평론 수상작(심사위원장 손희정, 위원 김희경·이대범)은 김민세 평론가의 ‘얼굴이라는 미로 속에서’가 선정됐다. 박인환 시인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논문을 대상으로 한 문학 부문의 올해 수상작은 없었다.

박인환상은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문학 정신을 기리려 2020년 제정한 상이다. 강원 인제군과 인제군문화재단, 경향신문,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시 부문 상금은 3000만 원, 영화 평론은 500만 원이다. 시상식은 28일 인제군 박인환문학관에서 열린다.


2024 박인환상 학술부문 영화평론분야에 당선된 김민세씨. 김민세 제공

2024 박인환상 학술부문 영화평론분야에 당선된 김민세씨. 김민세 제공

토드 헤인스 감독 ‘메이 디셈버’
얼굴·신체 키워드로 꼼꼼히 분석

매년 영화 몇백편 보는 영화학도
“당장 찍을 수 없다면 평론으로도
내 안의 영화열정 내놓고 싶었다”

2024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작인 김민세씨의 ‘얼굴이라는 미로 속에서’는 “얼굴과 신체라는 키워드를 통해 토드 헤인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여 이 기묘한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꼼꼼한 분석”이라는 심사위원단의 평을 받았다.

김씨는 수상소감에서 “1년에 몇백 편의 영화를 보곤 했지만, 최근 몇달 동안은 손에 잡히지 않아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인환 평론상 공모는 어떻게든 나를 되찾기 위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이었다”며 “모든 것이 두렵고 알 수 없는 청춘의 한순간에 이런 수상의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네이버 영화

김씨는 수상작에서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 <아임 낫 데어> <캐롤> 등으로 잘 알려진 토드 헤인스 감독의 최신작 <메이 디셈버>를 다뤘다. 김씨는 헤인스의 전작들을 언급하며 그를 “예술 혹은 영화가 소수를 위한 텍스트가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이어 <메이 디셈버>는 이러한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다소 괴상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분석한다.

<메이 디셈버>는 1996년 발생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34세 기혼 여성 메리 케이 르투어노가 자신이 가르치던 13세 남학생 빌리 푸알라우와 성관계를 갖다 현장에서 적발됐다. 메리는 빌리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했지만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수감된다. 영화는 23년이 지난 후, 당시 사건이 영화화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내털리 포트먼)가 사건의 당사자인 ‘그레이시’(줄리앤 무어)를 연기하게 됐고,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레이시의 집에 머물게 된다. 김씨는 “그레이시를 응시하고 다가가야 하는 동시에 그레이시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 엘리자베스”의 얼굴과 몸짓을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김씨는 경향신문 서면 인터뷰에서 “<메이 디셈버>는 평범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영화인데, 실화의 이야기와 얼굴을 가져오는 부분에서 이상하게 뒤틀려 있는 게 느껴졌고, 몇몇 장면에서는 이 영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미궁에 빠지게 됐다”며 “어떻게든 이 미궁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이 디셈버>는 단순히 실제를 재현한다는 것을 넘어서, 재현에 대한 메타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다. 단순한 재현의 윤리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과거의 시간과 실제 인물을 정말 재현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과 사유의 여지를 준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영화 후반부 엘리자베스 역을 연기한 포트먼의 긴 독백 신에 주목하며 이 장면을 감독의 전작인 <다크 워터스>와 비교해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 독백 장면에서 직관적으로 느꼈어요. 제가 보고 있는 그 얼굴은 모두의 얼굴(엘리자베스, 그레이시, 내털리 포트먼, 줄리앤 무어, 메리 케이 르투어노)인 동시에 그 누구의 얼굴도 재현할 수 없는 텅 빈 얼굴이라는 것을요.”

좋아하는 영화 장르를 묻자, 김씨는 “꿈과 현실,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드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제가 보고 있는 이미지가 인위적으로 구성된 픽션의 이미지인지 날것으로 남아 있는 논픽션의 이미지인지, 혹은 제가 보고 있는 피사체의 얼굴과 몸짓이 영화 속 인물의 것인지 배우의 것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워지는 영화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라는 수식이 고루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관련해 아직도 유의미한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있고 그런 생경한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이상한 행복함을 느껴요.” 그런 면에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과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장건재, 비간, 장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한국 독립영화를 보면서 영화 연출에 꿈을 가지게 된 김씨는 현재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이다. 2021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면서 기대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지 못했다. 평론을 쓰게 된 건 이 때문이다. “어떻게든 제 안에 있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내놓고 싶었고, 당장 학교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혼자서 영화평론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 스토리’에 페이지를 개설해 영화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글을 눈여겨본 영화 전문 매체 ‘코아르’의 제안을 받아 3년 전부터 필진으로 참여해왔다.

그는 평론과 연출 중 특별히 무엇 하나에 비중을 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저에게 영화 글을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프로세스에서 나오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도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려고 노력하고요. 무엇보다 지금 이 시기에 저를 통과해 가는 여러 사건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재에 충실하며 조금씩 삶의 각도를 수정하고 변경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의 비전이 뚜렷해지는 순간이 올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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