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조지킬’…<지킬 앤 하이드> 검증된 배우와 이야기의 힘

이유진 기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밤 검은 어둠 길 잃은 영혼/새벽은 멀고 끝 없는 밤/세상 그 무엇도 날 막을 순 없어/승리하겠어 끝내 이겨내’(지킬) ‘시끄러워 죽겠구만 뭐라 지껄여/가소로와 승리를 한다고/듣다보니 안쓰러워 네가 불쌍해/넌 나를 못 벗어나 절대’(하이드)

몸의 반쪽은 지킬, 다른 반쪽은 하이드로 분장한 배우 조승우(38)가 1~2초 간격으로 몸을 돌려가며 ‘대결’을 부르기 시작했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흰 조명이 지킬의 얼굴을 비출 땐 선하고 맑은 목소리, 녹색 조명이 하이드의 얼굴을 비출 땐 가래가 끓는 듯 거친 음색이었다. 관객은 모두 숨을 죽였고, 시선은 눈 앞의 남자에게 쏠렸다. 시선의 끝엔 어느새 조승우가 아닌 두 개의 자아가 충돌해 괴로움에 휩싸인 한 남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킬과 하이드만이 있었다.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샤롯데시어터는 4년 만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돌아온 조승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의 얼굴엔 피를 튀기는 듯 치열한 티켓팅, 일명 ‘피켓팅’에서 승리했다는 미소가 가득했다.

<지킬 앤 하이드>에 대한 한국 관객의 애정은 각별하다. 누적 공연 횟수 1100회·누적 관객 수 120만 명·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95% 등 압도적인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2004년 한국 초연을 시작했다. 독일·일본·스웨덴 등 10여개국 무대에 올랐지만, 한국에서 유독 큰 성공을 거뒀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한국 관객이 <지킬 앤 하이드>에 매료된 이유를 두고 한국 가요의 질감을 지닌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멜로디, 신파적이고 극적인 이야기 등 여러 분석이 뒤따랐다. 그 중 가장 고개를 끄덕이게 한 건 상반된 두 자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힘이 관객에게 호소했다는 분석이다. ‘조지킬(조승우+지킬)’이라는 별명이 거품이 아니었음을 그는 매 공연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관객들은 전석 매진 행렬로 입증했다.

이번 공연은 이런 평가에 더욱 힘을 싣는다. 데뷔 18년차를 맞이한 조승우는 ‘물 오른’ 연기로 그 명성을 더 공고히 했다. 뮤지컬 공백기 <비밀의 숲>의 황시목, <라이프>의 구승효, <명당>의 박재상 등으로 감정이 절제된 캐릭터를 선보여온 그는 이번 무대에서 절정의 감정선을 폭발시키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간감이 더해진 다이아몬드형 무대 역시 배우에게 온전히 시선을 집중하는 데 최적화됐다. 5m 높이로 층층이 쌓아올린 시험관, 시약병이 무대를 가득 메우는 지킬의 실험실도 눈길을 끄는데, 총 1800개 가량의 매스실린더가 쓰였다.

<지킬 앤 하이드>는 단순히 배우 브랜드에만 의존한 작품은 아니다. 이미 검증된 강렬한 이야기와 호소력 짙은 넘버는 고전의 명성을 입증한다. 극은 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두 가지 상반된 인격인 지킬과 하이드를 통해 사회풍자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선사한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낸 사건이 많았던 해인 만큼 그 울림이 더 묵직하다.

<지킬 앤 하이드>는 오는 5월19일까지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한다. 조승우 외에 홍광호, 박은태가 지킬·하이드 역을 맡았고, 레드랫의 쇼걸 ‘루시’ 역은 윤공주·아이비·해나, 지킬의 약혼녀 ‘엠마’ 역은 이정화·민경아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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