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계급의 울타리를 벗고 3대 대물림된 ‘죄의 씨앗’을 찾다읽음

선명수 기자

서울예술단 창작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2016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가상의 계급사회에서 한 가족에게 3대에 걸쳐 대물림된 ‘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예술단 제공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2016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가상의 계급사회에서 한 가족에게 3대에 걸쳐 대물림된 ‘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예술단 제공

무대 위 세계는 1지구에서 9지구까지 아홉 구역으로 철저하게 구획된 계급사회다. 법과 정치로 이 세계를 이끄는 상위 지구와 경제를 지탱하는 중위 지구, 책임도 권리도 없이 생존이 곧 투쟁인 하위 지구로 나뉜다. 지난 3일 막을 올린 서울예술단의 창작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이 가상의 계급사회에서 3대에 걸쳐 한 가족에게 대물림 된 ‘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2018년 초연 이후 이번이 세 번째 시즌으로, 관객 호평 속에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검은 하늘 아래 역사는 시작되고 비에 젖은 풀밭의 악취 속에 자라나 어린 새가 추락할 때 완성된다는 것을.” 뮤지컬의 막을 여는 넘버 ‘프라임 스쿨’의 노랫말은 앞으로 이어질 비극의 연대기를 예고한다.

공연은 1지구의 엘리트 학교인 ‘프라임 스쿨’의 법학 통론 시간으로 시작된다. 교수는 ‘법의 울타리’를 강의하며 60년 전 9지구에서 발생했던 ‘12월 폭동’(혹은 ‘12월 혁명’)을 언급한다. 모범생인 열여섯 살 ‘다윈 영’과 자유롭고 반항적인 ‘레오’는 교수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토론을 벌이고, 두 친구는 이내 가까워진다. 부유하고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다윈은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옛 친구 ‘제이 헌터’의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헌터의 조카 ‘루미’의 부탁으로 9지구의 ‘후디’(극중 후드 티셔츠는 하위 지구 범죄자의 상징이다)가 범인이라던 제이 헌터 살해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열여섯 동갑내기가 추적하는
3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
웅장함·서정 넘나드는 27곡
시적인 가사·잘 짜인 군무
2018년 초연 이후 세 번째 무대

2016년 세상을 등진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2016)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이희준 극작가가 856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공연에 맞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로 압축했다. 열여섯 동갑내기 친구들이 3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범죄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공연은 다윈 영 가문에 얽힌 ‘죄의 씨앗’이 드러나며 또 다른 비극을 향해 간다. 30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극 중반에 밝혀지지만, 여러 인물의 사연과 비극의 뿌리인 ‘12월 폭동’ 이야기까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막판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한다.

선택받은 1지구의 견고한 울타리를 벗어나 마침내 가족의 역사와 대면하게 된 다윈은 “태초의 세계를 누빈 인류의 발자취 속에 생존자는 모두 살인자들뿐인데 그 누굴 심판할까”라고 노래한다. 공연은 대물림된 죄의 굴레를 통과하며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처절하고 무겁게 그린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악은 결국 생존에 내포된 씨앗이며, 그것이 승리자의 역사 속에 숨겨져 왔던 ‘악의 기원’임을 이 공연은 이야기한다.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내용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다채로운 음악과 시적인 가사, 잘 짜인 군무다. 박천휘 작곡가의 대극장 뮤지컬 데뷔작으로 웅장과 서정을 넘나드는 27곡의 넘버가 극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서울예술단 단원 김용한과 그룹 ‘비투비’ 멤버 이창섭이 주인공 다윈 영을, 배우 민우혁·윤형렬이 다윈의 아버지 니스 영을 번갈아 연기한다. 일부 넘버의 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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