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랄프 고토니 “‘류재준 교향곡 2번’은 거대한 작품”

문학수 선임기자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초연

·핀란드 태생 ‘전인적 음악가’ 고토니 인터뷰

핀란드 태생의 노장 랄프 고토니(75)에게는 그야말로 ‘전인적 음악가’라는 수식어가 마땅하다. 피아니스트로 음악가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지휘자, 작·편곡가로서의 명성도 그에 못지않다. 독일 함부르크 음대와 베를린 국립음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영국 왕립음악원 등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낸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비평가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음악현상학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까지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고토니가 ‘2021 서울국제음악제’를 위해 내한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개막 연주회에서 지휘봉을 든다. 그는 이날 세계 초연하는 류재준의 교향곡 2번에 대해 “거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주시간 70분에 달하는 이 교향곡은 베토벤의 ‘합창’처럼 성악을 포함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가사로 삼아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호른 연주자 6명, 바이올린 파트에 26명, 퍼커션도 6대나 된다. 아주 두텁고 풍성한 사운드를 구사한다. 두번째 악장에서 합창단과 5명의 솔리스트들이 노래하는데, 파도가 점점 거대한 폭풍으로 몰아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그 불행하고 암담한 감정을, 먹구름 속에 숨었던 햇살이 다시 나타나 서서히 몰아낸다. 밝고 재미있고 위트도 있지만, 굉장히 무시무시한 곡이다. 나는 이 곡의 악보를 보면서 작곡가 스스로가 병마와 싸워 이겨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가 겪었던 고통과 투쟁이 음악에서 느껴졌다.”

랄프 고토니의 지휘 장면.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랄프 고토니의 지휘 장면.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랄프 고토니의 지휘 장면.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랄프 고토니의 지휘 장면.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이어서 고토니에게 ‘음악가로서의 다양한 캐릭터’에 대해 물었다. 그는 “너무 많은가?”라고 반문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중에서도 지휘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일”이라면서 “거의 모든 음악가들이 자신만의 악기로 시작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다른 음악가들과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오래도록 추구해온 ‘앙상블의 미학’을 짐작케 하는 발언이었다.

스스로 털어놓듯이 ‘지휘’는 이제 그의 음악적 삶에서 핵심이다. 하지만 지휘 데뷔는 “서른다섯 살 때, 장난처럼 우연히” 이뤄졌다. “핀란드 심포니와 리스트의 협주곡을 협연할 때였다. 연주회 1부를 마치고 인터미션이 됐을 때 지휘자가 갑자기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할 수 없이 ‘내가 해보겠다’라고 나섰는데, 사실 절반쯤은 장난이었다. 정말로 내게 지휘를 맡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그러다 단원들한테 등 떠밀려 진짜로 포디엄에 서게 됐다. 우왕좌왕하면서 슈베르트의 5번 교향곡 1악장을 제법 그럴 듯하게 지휘했는데, 느린 2악장에서 급기야 큰 실수를 했다. (실제로 동작을 보여주면서) 마치 에어로빅 하듯이 이렇게 이렇게 지휘하다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나는 펄쩍 뛰면서 그것을 왼손으로 받아내고…. 하여튼 연주회장이 웃음바다가 됐고 나는 온몸에 진땀이 났다. ‘다시는 지휘를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크게 웃음)”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이제 ‘지휘자 고토니’는 지휘봉을 거의 쓰지 않는다. 맨손으로 지휘하는 이유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농담을 먼저 던져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맨손으로 지휘하는 것이 음악적 정보를 주기에 더 용이하다. 지휘봉은 자칫하면 음악을 기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부드러운 레가토(음과 음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를 지시한다거나 음악적 호흡을 표현할 때, 현악기 파트에 신호를 줄 때도 맨손이 더 유용하다. 훌륭한 오케스트라일수록 지휘봉이 필요치 않다. 다만,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는 지휘봉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뷰 내내 유머와 진지함을 오가던 그는 ‘작곡가 진은숙’ 얘기가 나오자 더 유쾌해졌다. 그는 진은숙의 시아버지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음악가들이고, 완벽한 다문화 패밀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내는 이집트 출신의 비올리스트다. 베를린에서 음대 교수로 일하는 큰아들은 중국 출신과 결혼했다가 지금은 일본 출신의 첼리스트와 산다. 은숙의 남편인 내 둘째아들은 피아니스트다.”

진은숙의 음악에 대한 견해를 묻자, “아쉽게도 아직까지 은숙의 곡을 한번도 지휘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구스타보 두다멜과 LA필하모닉이 은숙의 <생황 협주곡>을 초연했을 때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은숙의 음악은 매우 지적이어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예컨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유럽적 모더니즘과 아시아적 정신이 접목된, 거기에 개인적 스토리와 감정까지 투영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은숙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두다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토니는 23일 연주회에서 류재준의 교향곡 2번 외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1번도 지휘한다. 그는 11월6일에도 예술의전당에서 청중과 만난다. 슈만의 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휴고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을 실내악으로 편곡해 지휘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김다미, 플루티스트 조성현(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바수니스트 유성권(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을 비롯해 김상진(비올라), 심준호(첼로), 박정호(더블베이스), 김지인(하프), 최인혁(트럼펫), 세바스티안 알렉산드로비치(오보에), 세르지오 피레스(클라리넷), 그리고 독일 ARD콩쿠르 우승자인 리카르도 실바(호른)가 무대에 오른다. 소프라노 임선혜와 독일 본 극장의 솔리스트인 테너 키어런 카럴이 노래한다.

랄프 고토니가 류재준의 교향곡 2번 초연을 앞두고 리허설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랄프 고토니가 류재준의 교향곡 2번 초연을 앞두고 리허설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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