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의 몸짓에서 솟구치는 에너지···우리 춤의 소용돌이, ‘회오리’

선명수 기자

국립무용단-해외 안무가 첫 협업 작품

전통춤의 원형에서 파생된 이국적인 에너지

“한국춤 정제된 움직임 속 분출되는 에너지에 매력”

국립무용단이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테로 사리넨과 협업한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이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테로 사리넨과 협업한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막이 오르면 무대 한 켠에 무용수가 올라 춤을 춘다. 마치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박은듯 단단하게 땅을 딛고, 상체의 몸짓은 바람에 흔들리듯 자유롭고 우아하다. 무용수 뒤에서 비추는 조명이 그 곡선적인 몸짓을 마치 회오리처럼 극장 전체에 거대한 그림자로 만들어낸다.

국립무용단이 처음으로 해외 안무가와 손 잡고 만든 작품, <회오리>(Vortex)가 돌아온다. <회오리>는 국립무용단이 핀란드를 대표하는 안무가 테로 사리넨에게 ‘한국 전통춤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2014년 탄생한 작품. 전통춤을 기반으로 하는 국립무용단이 1962년 창단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안무가와 협업한 작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무용계에서도 호평받았다.

초연 후 세 차례의 국내 공연과 함께 2015년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2019년 일본 가나가와예술극장 초청 공연 등을 거치며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과 다시 만난다.

한국과 핀란드 최고 제작진이 만든 우리 춤의 소용돌이 | 국립무용단 ‘회오리’

국립무용단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샤먼’의 춤으로 문을 연 무대는 잔잔하게 시작해 점차 강렬한 회오리를 만들어 간다. 한국 전통춤의 원형에 역동적이고 이국적인 움직임이 조화를 이룬다. ‘자연주의’라는 자신의 춤 철학을 구축해온 안무가 테로 사리넨은 한국 춤이 지닌 독특한 호흡과 선, 낮은 무게 중심이 주는 매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사리넨은 개막을 앞두고 지난 23일 열린 언론 대상 시연에서 한국 춤이 지닌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언급했다. 그는 “정제된 움직임 속 분출되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한국 무용수들의 장점”이라며 “한국 전통춤은 무용수의 움직임이 멈추더라도 그 여운이 계속 남아 에너지가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춤의 많은 춤사위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듯, 안무가 또한 작품의 영감을 자연에서 찾았다. 한국 전통춤을 기반으로 하는 국립무용단과 핀란드 현대무용가의 협업이 이질감 없이 이뤄진 것은 안무가가 추구하는 움직임이 하늘을 지향하고 각을 이루는 서양 춤에 비해 땅을 지향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우리는 계속 땅에 연결돼야” ‘하늘 지향하는’ 서양 무용과의 차이에 주목

사리넨은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우리는 계속 땅에 연결되어야 한다”면서 “꿈을 꾸고 창작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샤먼’ 역을 맡은 국립무용단 무용수 송설은 “안무가가 땅의 기운과 바닥에 깊게 뿌리를 내리라고 강조하는데, 이런 안무법이 한국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회오리>를 안무한 핀란드 출신의 안무가 테로 사리넨. 국립극장 제공

<회오리>를 안무한 핀란드 출신의 안무가 테로 사리넨. 국립극장 제공

작품은 출렁이며 순환하는 바다의 움직임으로 삶의 흐름을 은유한 1장 ‘조류’(Tide), 인간의 근원과 내면을 탐구하는 2장 ‘전파’(Transmission), 외부로의 확장을 표현한 3장 ‘회오리’(Vortices)로 구성돼 있다. 작품을 주도하며 전체 흐름을 이끄는 것은 ‘블랙’ ‘화이트’ ‘샤먼’ 등 다섯 명의 주역 무용수들이다.

사리넨은 “서로 다른 전통과 생각, 교육, 배경 등이 만나면 회오리가 만들어진다”며 “이 작품은 ‘전수’에 의미가 있는데 블랙은 경험이 많은 세대, 화이트는 경험이 적은 후세대를 의미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선 과거의 것을 받아야 하는데 샤먼은 블랙과 화이트 너머에 있는 자연과 같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회오리>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공연에 생동감을 더하는 것은 80분간 소용돌이치듯 이어지는 음악이다. 전통을 소재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소리꾼 이승희와 가야금(박순아), 피리(나원일), 해금(천지윤)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 제의적 춤사위에 강렬함을 더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디귿(ㄷ)자 형태의 간결한 무대에 조명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기도, 몽환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강렬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팬데믹으로 한동안 멈췄던 국립무용단의 해외 공연도 이 작품으로 재개된다. 지난 2월 개관한 핀란드의 전문 무용 공연장인 ‘헬싱키 댄스하우스’는 개관 후 첫 해외 초청작으로 <회오리>를 선정했다. 이 작품을 고국 핀란드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은 안무가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됐다. 사리넨은 “이 공연은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이 만나 악수를 하는 작품”이라며 “이렇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업할 수 있다는 것을 핀란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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