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무대 미술로 구현한 부자들의 낙원, 빈자들의 지옥···뮤지컬 ‘웃는 남자’읽음

선명수 기자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양쪽 귀 밑까지 길게 찢어진 입을 가진 남자. 그래서 그는 웃고 있지 않아도 늘 웃는 것처럼 보인다. 공연장에서 관객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도 장막 위에 내걸린 붉은 입의 형상이다. 막이 오르면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위태롭게 떠 있다.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무대 위에서 배는 곧 좌초되고, 거센 풍랑처럼 휘몰아치는 음악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시작부터 압도적인 무대 스케일로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8년 초연한 <웃는 남자>는 제작 기간만 5년에 제작비 175억원이 투입된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3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미소처럼, 이야기는 기이하고 참혹하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신분 차별과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인신매매단에 의해 입이 찢어져 웃는 모습을 갖게 된 광대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그린다. 당시 영국에는 아이들을 납치해 신체 일부를 훼손한 뒤 귀족들에게 놀잇감으로 파는 인신매매단이 있었고, 빅토르 위고는 어린이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공연은 콤프라치코스를 태운 배가 좌초된 후 홀로 버려진 어린 그윈플렌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납치돼 입이 찢긴 뒤 버려진 그윈플렌은 유랑극단의 광대로 살아가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귀족사회와 얽히게 된다. 작품은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타락한 세상을 비춘다. 사람들은 늘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윈플렌을 ‘괴물’이라 부르지만, 그윈플렌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세상을 향해 진짜 괴물이 누구냐고 묻는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미술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그윈플렌의 입을 형상화한 대형 세트는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눈보라 치는 숲속, 귀족들의 화려한 궁중 파티, 유랑극단의 활기찬 야외 무대 등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마타하리> 등 유명 뮤지컬의 곡을 쓴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도 극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공연을 꽉 채운다. 그윈플렌이 귀족들을 향해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질타하며 부르는 ‘그 눈을 떠’(Open Your Eyes)는 인물의 쌓여온 감정을 분출하면서 극의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대표 넘버다. 초연 이후 4년 만에 그윈플렌으로 돌아온 박효신을 비롯해 박은태, 박강현, 신영숙, 김소형, 민영기, 양준모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에 선다.

빅토르 위고의 방대한 원작 소설을 표면적인 사건 중심으로 압축하다 보니 전개가 매끄럽지 않고 작위적인 부분은 아쉽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작품의 주제도 직설적인 대사로 전달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극이 설명적이다. 그윈플렌과 데아가 여러 겹의 천 위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지만 두 사람의 멜로에 극이 갇힌 느낌도 든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8월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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