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 혹은 과격···매슈 본의 새롭고 끔찍한 결말, ‘로미오와 줄리엣’

백승찬 선임기자

매슈 본의 새로운 해석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매슈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매슈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막이 오르기 전부터 무대 뒤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울한 소음이 새어 나왔다. 곧 시작할 공연이 그저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전조와 같았다.

8일 개막해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하는 매슈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익숙한 원작을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냈다. 프로코피예프가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쓴 발레 음악에 지금까지 수많은 안무가가 도전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로 꼽히는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어떤 앞선 작품과도 달랐다. 발레 음악을 활용했지만 발레 동작이 거의 없어 발레라고 부를 순 없다. 본의 작품은 ‘댄스 시어터’ 혹은 ‘댄스 뮤지컬’로 불린다.

셰익스피어 원작에서도 두 연인은 10대였지만, 역대 영화·연극·발레 각색에서 이들을 10대처럼 보이게 하는 일은 드물었다. 본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10대임을 분명히 한다. 원작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는 ‘베로나 인스티튜트’라는 청소년 시설로 바뀌었다. 이곳이 기숙학교인지 교화시설인지 정신병원인지는 모호하다. 하얀 벽, 때때로 울리는 신경질적인 알림음, 폭압적인 경비가 시설의 성격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원작에선 대대로 원수인 두 귀족 가문에 속한 청춘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지만, 본은 가문이라는 배경을 완전히 없앴다. 대신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한다. 원작에서 줄리엣의 다혈질 사촌 티볼트는 본의 작품에서 폭압적인 경비원, 두 연인의 비밀 결혼식을 올려주는 로렌스 수사는 시설에서 학생이 어울리는 파티를 주최해주는 따뜻한 심리상담 목사가 됐다.

원작에서 비극의 근원은 두 가문의 적대감이겠지만, 본의 작품에선 청소년들에 대한 성적·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경비 티볼트다. 음악도 크게 줄였다. 프로코피예프의 52곡을 모두 연주하면 2시간 30분에 달하기도 한다. 본은 30곡만 골라 편곡하고 신곡 5개를 추가했다.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을 빼면 90분 정도다. 이러한 선택들 때문에 극의 전개에는 속도감이 붙었지만, 갈등의 깊이는 얕아졌다. 로미오의 부모를 위선적인 셀러브러티 혹은 정치인으로 설정한 것은 다소 안이하고 편의적인 각색으로 보인다.

매슈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매슈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본은 10대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천장에선 미러볼이 내려와 화려한 무도회 장면을 연출한다. 두 연인은 10대답게 과격하고 열정적이다. ‘발코니 2인무’를 추는 두 무용수는 한 몸이라도 된 듯 입술을 붙인 채 바닥을 뒹굴거나 발코니를 횡으로 이동한다. 원작의 비극적 결말은 치밀한 계획이 사소한 오류로 뒤엉키면서 벌어졌다. 본의 작품에선 좀 더 직접적인 이유로 빚어진다. 원작보다 더 강렬한 결말이지만, 그 대가로 여운은 사라졌다. 난데없이 뺨을 맞은 듯 갑작스럽다.

본은 e메일 인터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언젠가는 해야 하거나 하게 될 작품”이었다고 했다. 다만 “오페라, 발레, 영화, 연극 등 여러 면으로 여러 차례 다뤄졌기 때문”에 제작을 미뤄오다가 “모든 부문에서 젊은 무용수와 창작자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을 제작”하는 아이디어로 답을 얻었다고 했다. 본은 분명 완전히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었다. 다만 새롭고 과감하고 때로 충격적인 도전에는 그만큼의 실패 가능성도 따른다는 깨달음도 준다.

매슈 본이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매슈 본이 ‘로미오와 줄리엣’.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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