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협주곡·궁예 레퀴엠’…클래식과 대중의 통로를 만드는 유튜버들

백승찬 선임기자

KBS교향악단 PD 서영재·‘일구쌤’ 안일구

기발하거나 진지하거나…모두 연주자 출신

KBS교향악단 유튜브에 출연한 프랑스 출신의 오보에 연주자 프랑수와 를뢰가 한국의 바케트를 맛보고 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갈무리.

KBS교향악단 유튜브에 출연한 프랑스 출신의 오보에 연주자 프랑수와 를뢰가 한국의 바케트를 맛보고 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는 현재 이견이 없는 주요 미디어다. 매우 오래된 예술 장르인 클래식 음악도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 새로 만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클래식 세계로 안내하는 유튜버 2명을 인터뷰했다.

베르디 ‘레퀴엠’과 궁예의 만남…KBS교향악단 유튜브 PD 서영재

KBS교향악단 유튜브가 공개한 ‘강호동 협주곡’. 강호동의 <1박 2일> 출연 장면들을 모아 음악과 엮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갈무리

KBS교향악단 유튜브가 공개한 ‘강호동 협주곡’. 강호동의 <1박 2일> 출연 장면들을 모아 음악과 엮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갈무리

한국의 정상급 교향악단인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을 보면 간혹 믿을 수 없는 영상들이 섞여 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실황,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실황 사이에 ‘강호동 협주곡’ ‘궁예-레퀴엠’이 돌출한다. ‘강호동 협주곡’은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강호동 모습을 작곡가 ‘불고기버거세트’의 음악에 결합한 영상이다. ‘궁예-레퀴엠’은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김영철)가 신하들을 처형하는 모습에 베르디의 ‘레퀴엠’을 배경음악으로 썼다. 두 영상 모두 온라인에서 바이럴되며 10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현재 KBS교향악단 유튜브 구독자는 14만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 유튜브다.

이 영상들을 만든 서영재는 KBS 교향악단에 PD로 입사한 지 2년이 넘었다. 근엄한 교향악단의 공식 유튜브 영상이라곤 믿기지 않는 재기발랄함에 “팀장 허락 받았냐”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교양있게 라면 먹은 느낌” 같은 댓글이 올라온다. 서영재는 “교향악단, KBS라는 자원을 잘 융합하면 대중이 클래식을 좋아하는 가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서영재 PD. 본인 제공

KBS교향악단 서영재 PD. 본인 제공

[긴급] 중요한 공연중 팀파니가 찢어졌습니다

아무도 서영재에게 이런 영상을 제작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기존의 관행대로 연주 실황 영상이나 공연 안내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업무는 충분했다. 서영재는 스스로 그 이상을 욕심냈다. 마감 기한도 따로 두지 않고 온갖 영상을 편집하면서 퍼즐을 맞췄다. ‘강호동 협주곡’ 같은 웃긴 영상만 만든 것도 아니다. 공연 현장에 나가 백스테이지의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그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오는데 무대 위의 모습만 보여주긴 아쉬웠다”고 말했다. 덕분에 관객은 정명훈 지휘자와 한재민 첼리스트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 담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연 중 팀파니가 찢어져서 연주자가 대처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은 500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프랑스 출신 오보에 연주자 프랑스와 를뢰와 인터뷰하면서는 한국의 바케트 맛 평가부터 부탁한 뒤, 모차르트의 오보에 곡에 대한 해석으로 넘어갔다.

서영재가 이같이 흥미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연주자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영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트럼펫 연주자였다. 공연 전 연주자의 긴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히려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민감한 연주자는 촬영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2년 이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서영재에 익숙해지다보니 이제는 별 어려움 없이 촬영할 수 있다고 한다.

서영재는 학창 시절부터 ‘기행’을 하곤 했다. 졸업 연주회 마지막 곡 마지막 음을 불면서 무대 위에 눕기도 했다. 스스로 연주자로서는 마지막 곡이라는 의미로 관에 들어가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졸업을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교수님이 제 기행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기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지만, PD로서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알리는데는 성공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존 윌리엄스, 히사이시 조를 좋아한다는 그는 “짧은 영상, 짧은 음악, 짧은 식사의 시대일수록 긴 독서, 긴 클래식 음악, 긴 코스 요리가 필요하다”며 “클래식은 어떻게 진입하는지만 알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그 길을 영상으로 안내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토벤 교향곡에 대한 심층 강의…플루티스트·유튜버 안일구

플루티스트 안일구(왼쪽)와 평론가 유정우가 ‘일구쌤’ 채널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구쌤 갈무리

플루티스트 안일구(왼쪽)와 평론가 유정우가 ‘일구쌤’ 채널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구쌤 갈무리

유튜브 채널 ‘일구쌤’은 ‘유튜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기발한 ‘밈’이나 자극적인 ‘쇼츠’ , 구독자의 시선을 잡아끌 깜짝 이벤트는 없다. 대부분 영상이 진지하다. 카메라를 고정해둔 채 진행자 일구쌤과 초대된 평론가가 차분하게 대화하는 형식이다. 최근 열린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협주곡 전곡 공연 리뷰는 각 30분, 47분으로 두 차례 나눠 올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해설 영상은 1시간 21분에 달했다.

‘일구쌤’ 안일구는 현역 플루트 연주자다. 독일 마인츠 국립음대 등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뒤 귀국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쌤’이라 불러달라 하다보니 ‘일구쌤’이 됐다. 코로나19 창궐 시기 연주 무대가 사라지고 레슨도 끊기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유튜브를 떠올렸다. 친분이 있던 유정우 평론가를 고정 출연자로 섭외했고, 조회수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한 아카이빙을 우선하기로 마음먹었다.

“와인도 초심자를 넘어서면 복잡하고 깊이 있는 맛을 느끼고 싶잖아요. 클래식도 독서 배경음악을 넘어 듣기 시작하면 깊이를 추구하게 됩니다. 깊이 있는 분야니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플루티스트 안일구. 본인 제공

플루티스트 안일구. 본인 제공

한 번 보시면 평생 써먹습니다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전격 분석 | 초연 200주년

콘텐츠의 수준은 ‘전문 연주자끼리 대여섯 시간 이야기하는 수준’과 일반인 수준의 중간으로 잡는다.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말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클래식 하루만 들으면 안다’는 식으로 허풍을 치지도 않는다. 안일구는 “클래식은 평생 함께 할 수 있고, 굉장히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음악이다. 이런 음악에 접근 가능하면서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선을 찾는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사 입장에서는 공연 전 정보를 안내하는 ‘프리뷰’를 선호하지만, 안일구는 ‘리뷰’에 더 의미를 둔다. “리뷰는 연주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될지 결정하며, 10년 뒤에도 생명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해엔 팬데믹 시기 막혔던 세계 유명 요케스트라들의 내한이 집중적으로 이뤄져 일구쌤 채널은 이 공연을 다수 리뷰했다. 기획사의 협조를 받아 리뷰하지만, 무조건 좋은 반응만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23년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세계 최정상 베를린 필하모닉의 브람스 교향곡 4번 연주를 두고는 “지휘자의 지나친 리듬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반면 관객들로부터 ‘음량이 너무 작다’는 평을 받았던 라파우 블레하츠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깨지기 쉬운 와인잔처럼 기막힌 연주였다”고 평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유일의 한국인 단원인 비올리스트 박경민(오른쪽)이 ‘일구쌤’ 채널에 출연해 안일구와 대화하고 있다. 일구쌤 갈무리

베를린 필하모닉 유일의 한국인 단원인 비올리스트 박경민(오른쪽)이 ‘일구쌤’ 채널에 출연해 안일구와 대화하고 있다. 일구쌤 갈무리

안일구가 독일 유학파 출신의 현역 연주자다보니 동료 연주자를 비교적 쉽게 섭외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안일구는 “음악계는 한 두 다리 건너면 대부분 연락할 수 있다. 모르는 분이어도 진심을 다해 e메일이나 디엠으로 연락하면 섭외 성공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베를린필 유일 한국인 단원인 비올리스트 박경민,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자 이승원 등이 출연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안일구는 최근 책 <클래식 듣는 맛>(믹스커피)도 냈다. 첫 플루트 선생님이 해준 “이 아름다운 음악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기뻐하라”는 말을 가장 앞에 내세웠다. 안일구는 “예를 들어 ‘외로움’이란 감정은 사람마다 다른데, 클래식은 저절로 개인에게 맞춰진 위안을 제공한다”며 “음악은 ‘나’와 세계의 1대1 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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