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소리와 조명으로 구성
우란문화재단에서 8일까지
연극 <땅 밑에>는 SF 작가 김보영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한다. ‘연극’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막상 보고 나면 이 작품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 이 ‘연극’에는 연극의 필수 요소인 배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땅 밑에 있다는 ‘지국(地國)’을 찾아가는 ‘하강자’들의 이야기다. 10명의 탐사대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지하미로를 조사한다. 하나둘 사고로 낙오하거나 포기하고 오랜 경험을 가진 3명만 남아 여정을 계속한다. 더 나아간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지난 탐험 때 폐기종에 걸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대원 1명이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탐험을 이어간다.
관객은 먼저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의 3층으로 가야 한다. 안전을 위해 1명씩 천천히 입장한다. 어둑어둑한 통로의 가파른 철제 계단을 밟으며 1층으로 내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는다. 다른 공연의 경우 1층 입구로 들어가지만, <땅 밑에>는 관객을 하강의 여정에 동참시키기 위해 평소엔 스태프들이 이용하는 3층으로 들어가게 꾸몄다. 각 자리에는 헤드폰이 놓여 있다. 헤드폰 위에는 탐험용처럼 보이는 전등도 달려 있다. 시간이 되면 불이 완전히 꺼져 암전 상태에서 헤드폰을 통해 나오는 소리로 연극을 듣는다.
암전이 지속하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조명이 쓰여 극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관객 헤드폰 위의 등도 가끔 켜져 암흑 속을 가른다. 처음엔 천장에서 하강하는 돌멩이 모양 조형물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용되다가, 주인공이 예상치 못한 탐험 결과를 마주하는 종반부에 이르러서는 조명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환상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 핵심은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사운드다. 여러 가지 효과로 입체감을 살려, 등장인물들이 사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설계했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배우가 없기에 오히려 배우가 미리 녹음한 소리에 더 집중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인간 배우 없이도 소리와 조명의 조합을 통해 으스스하고 낯선 땅속 여정에 참여한 듯한 감각이 활성화된다.
각 회차 관객 정원은 20명이다. 서울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사운드 디자이너 정혜수가 연출했다. 정혜수는 “사운드가 우리를 물리적 파동으로,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엮어주는 가능성에 주목해왔다”고 말했다. 9월8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