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읽음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3월을 꿰뚫는다. 말씨와 씨말은 비단실로 꿰어 엮어서 그 참올(眞理)을 틔워야 한다. 참올의 올은 올발라서 올이다. 다스려 올바른 것이 올이다. 진리란 ‘참’으로 ‘올’바른 것이다. 그래서 ‘참올’이다.

올은 또 우리말로 실이요, 줄이다. 사람은 날듯이 자유로운 시원하고 통쾌한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그 정신줄이 하늘 올이다. 다석은 올을 잡으라 했다. 올줄이 얼줄이고 ‘고디(貞)’다. 한웋님의 고디다!

올 잡고 참올 틔워 하늘 이어 받은 바탈(本性), 첫바탈, 온뿌리바탈(本來面目) 보아야 한다. 바탈 꿰뚫어 보는 것이 빈탕(虛空)의 시원시원한 ‘얼나’다. 하나를 낳은 비로소다. 다석은 “한웋님의 고디는 우리 때문 비르샤 / 우리로 하여금 늘 삶에 들어감을 얻게 하소서”라 했고, “하나, 이것을 찾아야 한다. 하나는 온전하다. 모든 것이 하나를 얻자는 것”이라고 했다(류영모 지음, 박영호 풀이, <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 두레, 2004).

자 그러니, 빈! 탕! 휘말려, 탕! 즉시 깨달아, 탕! 활짝 피어, 없이 있는 얼나! 그 ‘나’가 오롯한 제바탈 보시라! 탕!

조화는 잘몬(萬物)을 낳고 기르고 꾸미는, 그 모든 대자연의 황홀한 재간이다. 다석은 몸성히, 맘놓이, 바탈태우의 조화에 힘주었다. 몸성히는 몸 싱싱 멀쩡하기, 맘놓이는 마음 비우기, 바탈태우는 사람 본디 하늘 씨알(天性) 태우기다. 그것들이 하나로 타 번지는 나날을 ‘오늘살이’라 했다.

바탈 불꽃 태우면 바탈이 없다. 없이 있는 바탈이 참이다. 참나, 얼나다! 안팎 없는 바탈 환히 틔워야 한다. 그래야 ‘씻어난 이’로 뒤바뀐다. 거듭남이다. 나날을 새로 사는 부활이다. 죽은 자의 부활이 아니라 산자의 하루하루 부활이다! 새 삶, 부활!

1월과 2월에서 말씨/씨말의 말을 얼숨으로 잘 쉬었다면 3월은 익숙할 것이다. 그 익숙함의 줄을 잡아야 한다. 꽁무니라도 상관없다. 공부는 줄잡기다. 줄을 놓지 않아야 참올이 줄줄줄 꿰진다. 자, 참올의 줄을 타자!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여섯은 응달에 도착했다. 그 후미지고 그늘진 곳은 씻어난 이가 앉아 있었던 보리수 아랫자리다. 마음이 빛으로 치솟아 훌훌 몸을 벗고 환빛의 얼숨이 된 그의 자리는 맑고 투명했다. 환히 트여 맑은 응달 주위로 얼김의 우숨이 불었고 사슴뿔 틔운 그이는 붕새를 타고 날았다. 삽시간이었다. 여섯은 응달을 둘러싸고 앉아 말씨름에 들어갔다. 얼 깬 빛 한 줄기 높이 솟았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어린님 : (응달을 스치고 지나간 붕새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첫 마디가, “닦아남”. 다석이 도(道)를 ‘길’로 바꾼 이유가 여기 드러나. 흔히 “도 닦아” 말해. 그 말의 딱 맞는 표현은, “길 닦아”, “제길 가”. 길 깔고 길 넓히는 따위 닦음 아냐.

닦아남은 닦고(修行) 닦아(修練) 솟는 것! 바탈 솟아 확연한 것! 닦아는 선(禪)의 다른 이름.ㅤ웋숨 웃숨 하늘 숨에 마음 꽂혀 회오리로 돌돌돌 올라가 숨빛 틔워 열리는 한 가운데, 그 텅텅 빔 가득가득 선!

수행은 위아래 숨빛 열어 산알 움 활짝! 수련은 얼빛 끄트머리 다 열어 없긋(無極) 환빛! 닦고 닦아 어진 이, 착한 이, 깨친 이. 어질고 착한 이가 현(賢)! 속알(德) 큰 알짬(精)된 이, 바로 그이. 맑고 투명하고 향기롭게 닦아난 이.

어라? 다시 보니 닦아난 이 아닌 닦아남? 그이 아닌 닦아의 솟구침 가리켜? “좋이지 말”라 잡는 말 무슨 뜻? 씨알이 그 닦아남 좋아하면 왜 안 돼?

씨알 하나하나 닦고 다 닦아 뒤집혀 제 세상 올 세상 싫어?

마음이 빛으로 치솟아 훌훌 몸을 벗고 환빛의 얼숨이 된 그 자리. 닝겔, 빛,의 기억들, 2020, 연필, 수채

마음이 빛으로 치솟아 훌훌 몸을 벗고 환빛의 얼숨이 된 그 자리. 닝겔, 빛,의 기억들, 2020, 연필, 수채

사슴뿔 : (응달의 그늘진 자리 가운데에 손을 놓으며) “좋이”는 ‘마음에 들게’를 뜻한다네. ‘좋이 여기다, 마음에 들다’ 할 때 잘 맞고, 또 ‘별 탈 없이 잘’의 뜻으로 ‘몸조심하고 좋이 지내라, 별 탈 없이 잘 지내라’고 할 때 딱이네.

그러니 “좋이지 말아서”는 ‘마음에 들게 하지 말아서’로 풀면 될 것이고, “닦아남을 좋이지 말아서”는 ‘닦아남을 좋아하지 말아서’라 말하면 자연스럽지.

그 다음 “씨알이 다투지 않게”는 말 그대로라네. 사람들이 다투지 않게 하라는 것이지. 말이 좀 꼬여 보이네! 허허 참, 이것 참!

‘닦아남’을 좋아하지 말아서, 씨알이 다투지 않게 하라는 것일까? 무슨 말일까? 도대체 ‘닦아남’이 무엇이기에? 자, 그 다음을 보세나.

늙은이 : (얼김의 하늘 숨 우숨을 홀로 느끼다가 불현 듯 돌아앉으며) 잠깐 기다려! ‘닦아남’이 무엇인지 풀지 못하면 그 뒤가 다 허사야! 여기서 ‘닦아남’은 누구를 가리키는 게 아냐! 그 자체로 봐야지. 그이를 좋아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야. 씨알이 다투는 이유는 ‘닦아남’을 차지하고픈 하고잡이야.

씨알 스스로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속알이 깊기를 바라. 그런데 욕심을 가진 씨알도 많아서 수행도 수련도 없이 “닦아남”으로 곧잘 꾸미지. 그 욕심이 하고잡이야. 하고잡 숨기고 ‘어진 이’ 가면을 쓰고 다녀. 그걸 쓰니 좋고 나쁜 걸 몰라. 모르면서 무조건 차지하려 해. 볼 줄 몰라. 눈이 있어도 제 눈 뜨지 못한 거야.

옛 중국 동진(東晉) 사람 갈홍(葛洪, 283∼343)은 “흰 돌이 옥 같네. 간사하고 아첨하기가 어짊 같네.”라 했어(<포박자((抱朴子)> ‘내편(內篇)’, “白石似玉 奸佞似賢·백석사옥 간녕사현”의 풀이).

흰 돌이 옥 같다니 눈에 뭐가 낀 거야. 마음에 ‘하고잡’이 가득 섰어. 그러니 눈이 뒤집혀서 흰 돌이 옥으로 보이지. 그걸 ‘사현(似賢)’이라고 해. ‘어짊 같다’는 뜻이야. 본래 현(賢)은 속알 쓰임이 뛰어난 참으로 어진 사람 뜻해. 그런데 간사하고 아첨하기가 이 ‘어짊 같다’니 무슨 소리겠어?

어진 이는 스스로 드러내는 법이 없고 자랑 질도 하지 않아. 너도나도 다 자랑 질로 ‘어짊’을 해대는 꼴이 문제지. 마음 좀 닦으니, 길 위에 흰 돌이 우뚝 하거든. 더 가지 못하고 거기서 멈춰. 그게 옥인 줄 안거야. 가짜에 홀려서 진짜를 못 가려. 그러니 자기가 간사해. 내가 나에게 사로잡혀 아첨하는 꼴이 딱 제나야. 저만 아는 제나가 한껏 부풀어 오른 거야.

닦아남은 채우는 게 아니라 맑게 비우는 거야. 밖이 없이 커서 넘치지 않지. 그런데 “닦아남을 좋이”라고 하면 이미 그 마음에 무언가 쌓이기 시작해. 좋이, 좋이, 좋이, 더, 더, 더 그 마음에 하고잡의 제나가 들어차거든. 그런 사람들이 많아. 마음에 들도록 자기의 헛꼴이 꽉 들어찬 사람들. 허깨비 아상(我相)이야!

닦아남은 말이지, 그게 밝혀지는 순간 이미 꽝이 돼버려! 허사야! 아무도 몰라야지! ‘나’조차도 비어서 없어야 제대로지!

하고잡을 일으키는 욕심이요, 욕망이라네. 닝겔, 소리없는 숲, 2020, 연필, 수채

하고잡을 일으키는 욕심이요, 욕망이라네. 닝겔, 소리없는 숲, 2020, 연필, 수채

깨달이 : (얼김의 우숨이 불어가는 쪽으로 가 킁킁 거린다) 눈코귀혀몸뜻, 여섯 뿌리! 그 뿌리가 빛·냄새·소리·맛·느낌·마음의 나무로 자라! 여섯 뿌리, 여섯 나무, 여섯 의식! 그 여섯의 여섯이 다 분별심!

의식은 깨어 있는 ‘나’의 마음! “흰 돌이 옥 같다”는 건 눈 의식이 흐린 것!

뜻(意), 참올(法), 깬앎(意識)이 중요해! 그게 바로 마음! 마음이 맑아야지! 마음 맑으려면 앞 다섯 뿌리 다 맑아야지! 그것들이 여섯 번째 제6식 마음 만들어!

닦아남은 그 마음 아래 더 깊은 아뢰야식! 씨알의 가장 근원적이고 심층적인 근본의식, 제8식! 씨알 품고 있는 첫 뿌리의 깊고 깊은 뜻! 씨알 틔워 하나 나무 되고, 열매 맺어 씨 맺고, 다시 그 씨 싹 터 나무 되는 돌돌돌 돌삶(輪廻)! 비로소의 비, 비어 빈탕의 맨, 맨 처음, 그 첫 씨알, 첫 뿌리의 뜻! 그 뜻 이미 한 나무 큰 그림 큰 몸 다 들어 차 있어! 씨알 하나 나무 전체 이미 다 품고 있어!

그 마음 좋이 여겨, 별 탈 없이 잘 자라길 집착해! 말나식 제7식! 제6식, 제8식 사이, 끊임없이 다툼 일으키는 거간꾼! 제7식!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가 문제야!

아치가 일으켜 셋을 다 망쳐! 아치는 첫 뿌리 뜻의 참올 깨닫지 못하는 밝없(無明)! 밝음 없으니 어둠이 그의 병! 늘없(無常), 나없(無我)조차 몰라! 하고잡이 돌고, 화가 치솟고, 어리석어! 쓸몬, 씹, 밥, 높, 잠에 홀려 살지!

아견은 오직 ‘나’에 집착하는 것! 참나 아닌 거짓 나로 살아!

아만은 ‘나’에 빠져 거만과 오만이 된 것! 거만과 오만의 거짓 나로 남 업신여겨!

아애는 스스로 나를 탐해! 탐에 사로잡혀 거짓 나도 몰라!

거간꾼이 드러낸 이 홀림에서 벗어나야 참 꼴 봐! 참 꼴 보지 못하는 나! 거짓 나 좋이 여기는 분별심!

다섯 뿌리에 휘둘리니 마음이 영 맑지 못해!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사슴뿔 : (깨달이가 킁킁 거리는 쪽에서 얼김의 구슬을 잡아채며) 여기는 “쓸몬”이 주제어라네. 쓸몬은 물품이나 재화를 뜻하는 우리 토박이 말이지. 하고잡을 일으키는 욕심이요 욕망이라네. 그것이 ‘흔찮은건’ 흔치 않다는 뜻이니 아주 귀하다는 뜻이라네. 그 귀한 걸 “높쓰지 말아서”라고 했다네. 귀한 물건은 높여 쓰지 말라는 것이지. 그러니 “씨알이 훔침질을 않게”라고 한 말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첫 행과 두 번째 행의 비유가 다르다네. 쓸몬은 하고잡이 사무치는 물건이니 ‘훔침질’로 이어지나, 닦아남을 좋아하지 말라는 얘기는 갸우뚱 이라네. 씨알 바람은 곧 닦아남이지 않겠는가!

깨달이 : 두 행만 보면 그 속뜻의 깊이 헤아림 어려워. 배가 항구에 닿듯 두 행이 세 번째 행에 닿아야 말뜻 풀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어린님 : (깨달이와 사슴뿔에게) “하고잡” 또 나와. 1월에서 본 그 하고잡. 좀 더 강조하듯 “하고잡만 ᄒᆞᆫ건 보질 말아서”라 해. 하고 싶어 하는 것만 하는 걸 보지 말라 하는 것.

하고잡이 넘쳐. 하고잡이 들끓어. 그걸 보아선 안 돼. 그걸 보면 마음 어지러워.

2월 첫 머리 두 행과 비슷해. 마음 균형 유지하라는 것. 한쪽으로 기울어 쏠리면 안 된다는 것. 그것 아무리 좋아도 “좋이지 말”아야 해. ‘좋이’가 ‘하고잡’. 심지어 ‘닦아남’조차도 그러지 말라는 것.

늙은이 : (동그라미를 그리며 보리수를 한 바퀴 돈다) ‘닦아남’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겉치레라면, ‘쓸몬’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하고잡이지. 하고잡의 욕망은 그렇게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는 거야. 안에는 겉치레가 잔뜩 쌓이고 밖에는 훔침질로 가득 해.

하고잡이 ‘ᄒᆞᆫ’인건 밑도 끝도 없이 큰 거야. ‘ᄆᆞᆷ’이라 쓴 것도 그래. 그 마음 한복판이 어지럽게 돌아. 옴짝달싹 못하고 갇힌 꼴이지.

이미 있는 길은 쉬워도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몰라. 다툼과 훔침이 있는 길이라면 버려야 할 길이지. 길로 드러난 ‘닦아남’은 징검다리 두드리듯 두드려 봐야 해.

사랑이 : (응달 밖의 어딘가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렇군. 어찌 보면 그것은 이미 드러난 길이겠군. 닦아서 드러난 길이겠군. 그러니 그 길 좇거나 바라고 높이는 짓 따위 하지 않아야 겠어.

길 옳단 길 늘길 아니고 그 길 참도 아니지. 결국 바라고 높이는 ‘하고잡’이 씨알을 다투게 하는 뿌리야. 쓸몬이 흔하든 흔치 않든 ‘높쓰지’로 바라는 게 문제야. 바라고 높이고 높여서 쓰는 쓸몬은 탐욕이 만들어낸 헛짓 우상이지. 우상에 사로잡힌 것도 훔침질이야.

사람이 쓸몬을 훔친 게 아니라 우상이 그 마음을 훔친 거지. 눈을 사로잡고, 귀를 사로잡고, 코를 사로잡고, 입을 사로잡고, 몸을 사로잡고, 급기야는 마음까지 다 사로잡혔으니 어지럽지 않겠어?

떠돌이 : (응달 안으로 들어가 철퍼덕 앉는다.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본다. 모두가 깜짝 놀란다) 곰곰 생각해도 닦아남이 가지 못할 길인지 알 수 없군! 하루하루 닦아 본들, 이미 있는 그 길이 없을 때도 있고 뚜렷이 보일 때도 있어! 안으로 닦아야 길에 모심이 있고, 밖으로 닦아야 길들이 열리지 않겠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씨알이 좀 다투면 안 되나? 닦이를 좋이 좇아서 가 봐야 그 길이 무슨 길인지 알 수가 있지!

그 길이 아닌 길이라면 아님을 알 것이고, 그 길이 막힌 길이라면 막힘을 알 것이고, 그 길이 험한 길이라면 험함을 알겠지! 세상 온갖 쓸몬이 다 높여 쓰는 것들도 아닌데 무어 그리 야단이야? 흔치 않으니 훔치려는 마음이 있겠지! 닦이도 흔치 않고 쓸몬도 흔치 않으니 갖고 싶은 게 아니겠어?

하고잡으로 가득해 마음이 어지러우면 쓰러질 때까지 가보는 거야! 가고 또 가고 가는 게 길이야! 그깟 하고잡이 뭐 그리 대수람! 닦이가 길이고 쓸몬이 길이라면 다투고 훔쳐서라도 가 봐야지! 마음 어지럽게 돌려 돌아온 자리에 길이 화들짝 열리면 원이 없겠구먼, 참!

씨알은 오직 모를 뿐이야, 참! 이러 저리 찌르고 닥치는 대로 부딪히는 거야! 좌충우돌이야! 화들짝 열린 자리에 뭐 마음 따위가 있겠어, 참! 마음도 없는데 그 따위 하고잡이 또 어딨고, 참!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어린님 : (떠돌이와 얼굴을 맞대고 눈을 부아리며) “씻어난이” 누군지 눈 부릅떠! 그이 “다시림”이 무얼 말하는 지 똑바로 들어! 그것 밝혀야 그 다음 행 따라 붙어! 잘못 밝히면 그 다음 행 줄줄이 낭떠러지! 꽈당! 폭망!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깨달이 : (응달에서 일곱 발자국을 옮기며) 머리 부서진 자리에 소낙비 폭포수 쏟아져 씻어난 이. 비로소의 비, 비롯의 비, 처음을 뜻하는 그 말. 비는 빔, 빈탕, 텅 빈 우주, 그 맨 처음의 앞. 깨달아 씻어난 이는 빈탕의 맨 처음 사람, 첫사람. 있이 없고, 없이 있는, 있없이의 초월. 있음이 있음으로, 없음이 없음으로, 있는 그대로 씨알 하나. 의식 무의식 하나로 열려 우주 빛 알갱이 환빛 터지는 밝달, 그이. 온몸, 얼나의 줏대 높 높이 솟아 한데로 돌아가는 돌돌돌 참올. 참 얼나, 얼빛 참나. 스스로 거리낌 없이 숨돌 올올 싱싱한 제 스스로, 그이. 그이 “다시림” 한 낱 세상 정치 아냐. 그이 다스리지 않아. 그이 ‘있없이’ 있는 그 저절로 “다시림”. “다시림”은 다시 임한 그이. 어디에나 임해 있는 그이, 그 다스림. 하나는 여기저기 있고, 그 여기저기가 다 하나니 다시림은 하나, 하나님!

스스로 거리낌 없이 숨돌 올올 싱싱한 제 스스로, 그이. 닝겔, 성장하는 파편, 2020, 연필, 수채

스스로 거리낌 없이 숨돌 올올 싱싱한 제 스스로, 그이. 닝겔, 성장하는 파편, 2020, 연필, 수채

사슴뿔 : (얼김의 우숨을 받아 추는 춤으로) 다석이 “다시림”이라고 쓴 이유가 있었다네. 다스림이기도 하겠으나 ‘다시림’은 그의 존재가 ‘있음’의 존재가 아닌 ‘없음’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네.

씻어난 이는 말씀으로도 존재하니 말이네. 그러니 ‘말씀 다시 임하다(臨)’라고 풀어도 틀린 말은 아니라네. 그 스스로 존재하는, 없이 있는 ‘임’이 다스림의 실체일 수도 있고 말이네. 허허 참, 이것 참!

<다석일지> 1권에는 ‘다스림’으로 풀었다네. 그런데 4권에 다시 쓴 ‘늙은이’에서 ‘다시림’으로 바꿔 썼다네. 다석은 ‘다스림’을 ‘다시림’으로 바꾸면서 ‘다스림’을 포월하는 개념어로 ‘다시림’을 사용한 것이라네.

늙은이 : (얼김의 우숨을 내려 추는 춤으로) 그렇지. 바로 거기에 하나의 풀림이 있어. 말씀으로 비우고 채우는 거야. 말씀이 말숨으로 ‘다시림’이거든. 말씀이 ‘참의 말숨’인 거야. 말숨이 한껏 들어오면 마음이 맑고 투명하게 비워지지. 채워지는 게 아냐. 그 말숨을 늘숨으로 쉬는 게 아주 중요해. 늘숨으로 쉬지 않으면 마음이 탁해져. 말짱 도루묵이야. 든든하지 않아.

“븨이고”의 ‘븨’는 ‘비’야. 빔이지. 비어있음. 비어있기만 하면 안 돼. 든든하게 돌아야지. 산숨(生氣), 늘숨(常氣)으로 텅텅 비어서 돌돌돌 돌아야 해. 그 숨이 가 닿는 곳이 배꼽 아랫자리야. 거기가 든든해야지. ‘다시림’의 ‘임’이 있는 곳이야. 그리 되면 마음은 부드러워져. 맑아져. 온 감각이 하나로 비어서 맑으니 뜻이 없지. 뜻이라는 말도 없어. 무어 바랄 게 없으니 그저 시원할 뿐이지.

어린님 :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을 땅을 가리키며) “그 뼈는 셰오라.”는 무슨 뜻?

사랑이 : (여전히 응달 밖의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 뼈’가 무엇인지에 달렸어. 그야말로 몸에 있는 뼈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상징어로 다른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해.

칼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어.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야.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에서 독자적으로 터져 나왔거든. 늙은이 노자도 이 시기 인물이니 그 시기의 사상적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

켄 윌버는 “수렵채집 시기의 위대한 교훈은 영(Spirit)이 곧 우리의 피며 뼈이고 우리의 기반이자 지원체인 지구라는 몸체와 긴밀히 짜여 있다는 것이 요지”라고 말하지(켄 윌버 지음, 조옥경·김철수 옮김, <켄 윌버의 신>, 김영사, 2018, 73쪽), 그는 또 “마음과 세계는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로 진화하는가”를 묻는 <모든 것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해.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자, 그의 연구에 따르면 그 시기의 ‘뼈’라는 말의 뜻은 ‘영(靈)’과 깊은 상관이 있어. 다시 살펴볼까? 마음이 비었고, 배꼽 아래가 든든하고, 뜻이 물러. 그런데 그 뼈가 세다는 게 뭘까? 그냥 뼈라고 하면 이어지질 않아. 그 영이 세졌다는 게 말이 되지. 그럼 영이 세졌다는 건 무슨 말일까?

깨달이 : (다른 쪽으로 발자국으로 옮기며) 아뢰야식이 가장 깊은 무의식으로 거기 첫 씨알의 참 뜻 있다고들 해. 한데, 더 아래 아홉 번째가 있어. 암마라식! 산스크리트어 ‘암말라’는 청정함! ‘참나’의 첫 뿌리 몸, 첫바탈! 부처의 슬기, 우주의 근원, 바로 그 청정함! 맑고 깨끗 시원해. 씻어난 이는 참나로 슬기, 우주 온갖 잘몬의 뿌리! 그저 시원시원한 그이! 그이 늘 임하니 깨우치지 않은 바 없! 므로 뜻이 따로 서지 않! 영이 임해! 영은 귀신, 혼, 혼불, 망령, 유령 따위 아냐! 영은 산알의 생명령! 씻어난 이 성인이라 말해! 그이가 성신(聖神), 성령, 긋(極)! 하늘 임해 솟난 그이! 바로 그이 세고 커!

떠돌이 : (응달 가운데에서 일어나 얼 깬 빛 한 줄기 올려보고 내려보고) 그건 길을 닦아 길눈 밝은 이로 우주를 꿰뚫어 보려고 하는 이들이나 생각하는 것이지. 참이나 참나 얼나로 깨치려는 자들의 뜻이지.

세상이 다 ‘참올’이라면,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맥락은 다르게 봐야 해! ‘씻어난 이’야 말로 ‘닦아남’의 실체라면 그 말의 풀이도 달라져. 실제로 어진 이가 세상을 다스리면 어떻게 되지?

그 사람은 온통 씨알을 향해 마음이 가 있어. 제 욕심 부리면 어진 이가 아니거든. 그런 사람은 제 마음을 갖지 않아. 있어도 다 풀고 열어서 나누려고만 하지. 제 자식 먹는 거만 봐도 부모는 배부르다고 하잖아. 어진 이의 마음이 그래. 제 마음 비우니 씨알이 배불러. 씨알이 배부르니 그도 또한 든든하지. 게다가 뜻을 세우지 않아. 뜻을 세우면 씨알이 힘들어. 성을 세우고 무기를 만들고 궁을 짓고 전쟁에 나서는 것들이 다 뜻을 세웠기 때문이야.

강을 파헤치고, 강제로 철거하고, 기지를 짓고, 산에 레일을 깔고, 원치 않는 비행장을 만들고, 무기를 사들여. 상상할 수 없는 돈들이 그런 데로 흘러가 사라지지. 좋은 뜻은 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는 거야. 씨알이 저절로 터지는 거지. 씨알이 저절로 터지면 다스림도 필요 없어. 마치 해와 달과 별과 우주의 이치가 똑발라서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는 것과 같아.

모든 조건이 맞았으니 씨알의 힘이 우뚝 해. 힘이 넘쳐. 뜻이 없어도 뜻이 서는 꼴이야. 다스림은 그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지. 뜻을 무르게 하니, 저절로 서잖아.

‘다시, 개벽’은 지금 여기에 뜻을 세워야 해. 저절로, 스스로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야 해. 그 혁명은 새 문명을 위한 다시 개벽의 조건이기도 하지.

씨알이 강하고 세지면 ‘다스림’은 그것으로 자연히 강하고 세져. ‘다시림’이라고 했는데, 언제나 다시 임하는 ‘닦아남’이어야지. 제 잇속만 차리는 그 따위 거짓 닦아남이 아닌 씨알의 제소리, 제 몫을 찾아주는 그 닦아남!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사슴뿔 : (그의 춤이 서서히 잦아든다) 씨알이 저절로 터져야 하는데 문제는 저절로 터지지 않는 것이라네. 허허 참, 이것 참! 저절로 터져서 조화를 이루면 다스림 따윈 필요가 없다네. 하늘땅 위아래 내리 솟나서 텅 텅 ‘씨알 튼 밝돌’로 환하면 씨알이 우뚝할 것이라네.

그런데 좋이 좋이 좋이 더 더 더, 제나가 들어찬 마음을 좇는 씨알이 큰 문제라네. ‘하고잡’ 끊어야 하는데 끊어지지가 않는다네. 끊어지지 않으니 씨알의 제소리 제 몫을 찾아주는 씻어난 이 나선 것이라네.

그가 하는 일은 늘 씨알이 못된 앎에 빠지지 않고, 못된 욕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라네. 좀 닦아서 뭘 안다고 헛짓 꾸미는 이도 구태여 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네. 딴 짓을 하지 않으면 못 다스릴 일이 없지 않은가! 허허 참, 이것 참!

스스로 깨달아 저절로 되었다고 스스로를 보면 도깨비. 닝겔, 어지러운 문장, 2020, 연필, 수채

스스로 깨달아 저절로 되었다고 스스로를 보면 도깨비. 닝겔, 어지러운 문장, 2020, 연필, 수채

깨달이 :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간다) 마음 맑고 시원하다고 자꾸만 그 마음 붙잡으면 그것 도루묵! 어느 순간 마음 다 열려 비었다고 그 빈 것 집착하면 헛짓! 닦고 닦아 비로소 제소리 찾았다고 제소리 빠지면 돌이킬 수 없! 이것저것 다 안다고 그 앎 자랑하면 얼간이! 스스로 깨달아 저절로 되었다고 스스로를 보면 도깨비! 흰 구름 좇다가는 도무지 가 닿을 수 없어 무너져! 생각에 빠져, 말에 빠져, 명상에 빠져, 어짊에 빠져, 씻어난 이에 빠져, 하나에 빠져, 전체에 빠져, 자꾸 자꾸 빠져서는 진흙탕! 진흙탕이 못된 앎, 못된 욕심, 못된 짓! 딴 짓 따로 없! 그게 딴 짓!

늙은이 : (꿈쩍도 한지 않고 서 있다) 씨알도 집착이야. 씨알이 없으면 그 못된 앎도 못된 욕심도 못된 짓도 없어. 씻어난 이도 집착이야. 그이가 없으면 씨알의 하고잡 따위가 어디 있겠어? 아무 것도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 일도 없지. 그냥 모든 게 저절로일 뿐이야. 그 저절로의 세계를 볼 뿐이야. 그 세계가 오롯한 하나의 님(主)이요, 임(臨)이지!

떠돌이 : (응달 밖으로 나와서 응달을 지운다. 양달이 찬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고 물이 흐른다) 저절로가 완벽한 절대의 조화라면 깨우치지 못할 게 없잖아! 못된 앎이 어디 있고 못된 욕심 따위가 어디 있겠어? 다 깨우쳐서 알아지겠지, 참! 씨알이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참! 저절로의 세계를 지금 여기로 씨알들이 당기고 있어! 여기가 아니면 다 필요 없거든, 참! 씨알은 여기저기 곳곳에 다 있어, 참! 씨알이 없으면 따위로 가정하지 말라고, 참! 밝게 터진 씨알들의 세계가 저절로야, 참! 저절로가 되어야 못 다스림이 없는 거야, 참!

어린님 : 그래. 저절로가 ‘다시 개벽’의 세계. 그럼 얼숨을 쉬면서 ‘3월’을 한문으로 새겨 볼까? ‘늙은이’도 다시 새로, 하늘 숨 밝게 새기면서.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⑥다시 님, 다스림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재,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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