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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통치 자료집 ‘어람관안’ 공개…거북선 숫자 등 국가기밀까지 세세하게 표기읽음

김종목 기자

조선 후기 ‘어람관안(御覽官案·원본 사진, 추정)’이 공개됐다. ‘임금이 보던, 관리(官吏) 이름을 적은 문안(文案)’이다. 중앙과 지방 행정·군사안보 현황까지 담았다. 거북선(20척) 등 병선 현황과 대마도를 조선 땅으로 기록한 지도도 들어갔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이 개인 소장자 의뢰를 받아 2권을 분석한 뒤 30일 이 같은 내용을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손 소장은 “군사 1급 기밀까지 들어간 걸 보면 어람관안이 틀림 없다”고 했다. 어람관안 존재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데 온전한 형태의 실체를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관안 내(官案 內)>와 <관안 외(官案 外>)’ 2권은 각각 58장(10.2m), 48장(8.2m)이다. 오동나무 표지 절첩본이다.

30일 공개된 두 권의 어람관안(추정)은 조선 왕실과 조선 팔도의 행정과 군사 등 모든 현황을 집대성했다. <관안 내(官案 內)>(아래)와 <관안 외(官案 外>) 원본 사진.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30일 공개된 두 권의 어람관안(추정)은 조선 왕실과 조선 팔도의 행정과 군사 등 모든 현황을 집대성했다. <관안 내(官案 內)>(아래)와 <관안 외(官案 外>) 원본 사진.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손 소장은 “조선 시대 행정 기관인 육조(六曹) 관리 직제부터 각 지방의 인구와 군사 안보 현황 등을 집대성한, 국왕이 직접 소지하며 국정에 참고한 실무집이자 국가 1급 기밀 자료”라고 했다. “조선 후기 미시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책 상태도 양호해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크다”고도 했다.

오동나무로 만든 <관안 내(官案 內)>(왼쪽)와 <관안 외(官案 外>) 표지 원본 사진.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오동나무로 만든 <관안 내(官案 內)>(왼쪽)와 <관안 외(官案 外>) 표지 원본 사진.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관안 내>는 왕실 사무를 맡아보던 종친부(宗親府)의 편제와 직무부터 역대 능원(陵園), 각 묘전(廟殿) 현황을 적었다. 태조부터 조선 왕조의 능·원·묘의 위치, 왕족의 생몰년도, 관리인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육조(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직제와 직급, 직무 등을 기록했다. 육조의 조직 구성, 위치·인원, 품계와 녹봉도 써놓았다. 각 해당관의 성명도 적었다. 궁중·중앙행정 등 중앙관서의 모든 현황과 한성부의 인구 등을 기록했다.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청, 총용청 등 수도 방위와 궁중 경호를 맡은 조직의 인원과 품계도 명시했다.

<관안 외>는 각 지방 수영(水營)과 병선의 숫자, 거북선의 숫자 등을 기록했다. 충청도 지방의 수영인 충수영의 귀선(龜船, 거북선) 11척 등 전국의 귀선은 총 20척으로 기록됐다. <관안 외>에는 조선팔도 지도 19장도 담겼다. 손 소장은 “경상도 지역에 대마도를 표기했다.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여긴 것”이라고 했다. 백두산은 함경도 지도에 들어갔다.

<관안 외> 경상도 지방 지도 중 ‘대마도(對馬島)’ 표기 부분(복제본).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관안 외> 경상도 지방 지도 중 ‘대마도(對馬島)’ 표기 부분(복제본).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어느 왕이 언제 이 어람관안을 통치 자료로 활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손 소장은 “<관안 내> 편에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1827~1849)의 능인 경릉(景陵)에 관한 기록이 나온 걸 보면, 그 다음 왕인 제25대 철종(1831~1863) 이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분은 지금 단정할 수 없다.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1급 기밀 자료

요즘 말로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군사 안보 현황까지 기록했다. <관안 외> 편에 실은 19장의 팔도지도는 산성과 수도 육대문의 조직 상황, 봉화, 도로, 수로, 저수지 등을 기록했다. 군영과 수영 등도 기록했다. 노정(路程)과 문명(門名) 등도 상세히 명기했다.

충청도 수영을 뜻하는 ‘충수영’(아래 빨간 스티커)의 귀선(龜船) 11척 등 수군 현황을 기록한 <관안 외>(복제본). 김종목 기자

충청도 수영을 뜻하는 ‘충수영’(아래 빨간 스티커)의 귀선(龜船) 11척 등 수군 현황을 기록한 <관안 외>(복제본). 김종목 기자

백두산 천지 등을 기재한 <관안 외>의 함경도 지도(복제본). 김종목 기자

백두산 천지 등을 기재한 <관안 외>의 함경도 지도(복제본). 김종목 기자

손 소장은 “우산도(독도), 대마도, 거문도 등 섬들을 자세히 그렸다. 북방인 함경도 육진 등의 노정(路程)도 표시했다. 청나라와 일본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두산과 천지도 표기했다. 만주 봉황성(鳳凰城)도 나온다. 손 소장은 “이 부분 묘사도 정상기의 동국대지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강원도의 삼진을 강릉, 원주, 회양이라고 표기했다.

정예군인 동오는 23만2748명, 예비군인 원군은 142만1868명이다. 전선은 168척, 귀선(거북선) 20척, 병선 12척, 방패선 32척 등 총 253척이었다. 송파에 9척, 동작에 4척, 서빙고에 5척의 배를 배치했다. 말은 5575필이었다. 마필 관리소는 37개소다. 각도 감목관(각도별 마필관리)도 기록했다.

손 소장은 “행정부터 군사 안보까지 통치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수록했다는 점에서 어람관안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관안 외>는 개성부사 등 각도별 부목군현의 편제와 직무, 직책 성명, 담당 구역도 명시했다. 관리를 추천하는 천거 규정까지 뒀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이 세종시 조치원 세종문화원 강당에서 어람관안 복제본을 펼쳐 놓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총 2권인 어람관안의 <관안 내>는 58장(10.2m), <관안 외>는 48장(8.2m)으로 이뤄져 있다. 김종목 기자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이 세종시 조치원 세종문화원 강당에서 어람관안 복제본을 펼쳐 놓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총 2권인 어람관안의 <관안 내>는 58장(10.2m), <관안 외>는 48장(8.2m)으로 이뤄져 있다. 김종목 기자

■공무원 인사 관리 지침…제때 기록 못해 문책도

이 국정 실무집은 종친부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관안 내> 첫 장엔 대군(大君) 등의 품계부터 나온다. 대군은 ‘왕자 중 정비(正妃)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嫡室王子)’다. 대군은 무품계고, 군(君)은 정1품이라고 적어뒀다. 손 소장은 “왕족의 품계에 관한 사항은 왕도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상세히 적어둔 것”이라고 했다.

‘관안(官案)’은 ‘조선 시대 각 관서의 관리·직원들의 이름을 기록한 인명록’이다. 인사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 기록은 시급하고, 엄밀하게 처리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임금에게 문책을 당한 일도 있다.

<태종실록> 33권 중 ‘태종 17년 3월16일’엔 ‘관리 명단에 구종지 등을 삭제하지 않은 이조 정랑 우승범 등을 의금부에 가두다’는 제목 아래 다음 구절이 나온다.

“이조 정랑 우승범, 이조 좌랑 권조를 의금부에 하옥시키니, 어람관안에 주륙을 당한 구종지 등의 성명(姓名)을 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일 만에 석방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 웹사이트(sillok.history.go.kr)에서 ‘御覽官案’으로 검색하면 총 9건의 결과가 뜬다. 실록 국역본은 어람(御覽)을 주로 ‘상(上)이 보시는’, ‘어람하시는’으로 해석한다.

<관안 내>에 수록된 승정원 직책과 직무에 관한 기록 중 ‘左承旨(좌승지)’ 아래 부분이 닳아 있다. 손환일 소장은 “인사 때마다 관리 이름을 붙였다, 뗏다 하며  난 자국 같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관안 내>에 수록된 승정원 직책과 직무에 관한 기록 중 ‘左承旨(좌승지)’ 아래 부분이 닳아 있다. 손환일 소장은 “인사 때마다 관리 이름을 붙였다, 뗏다 하며 난 자국 같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관안 내>와 <관안 외>의 각 직책을 적은 공간 아래 장지 여러 곳이 헐었다. 손 소장은 “관리가 바뀔 때마다 관리 이름을 작은 한지에 풀로 붙였다 뗀 자국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리 이름만 적어두는 용도가 아니다. 손 소장은 어람관안 중 ‘정격(政格, 관원의 임면과 파면 등에 관한 법식)’도 유심히 봐야 한다고 했다. 구근수용식(久勤收用式, 관리근무 현황)도 기록했다. 과거시험(문무과 지방급제시험), 율령(법률), 소송, 조의, 혼인 등 규정도 명시했다. 손 소장은 “관리를 어떻게 등용하고, 파면할 지에 관한 사항이 다 들어 있다. 요즘 말로 공무원 관리 지침”이라고 했다.

품계 별로 임금을 정해놓은 ‘백관과록(百官科祿)은 <관안 내>에 기록됐다. 손 소장은 “백관과록은 일종의 월급 명세서인데, 춘삼월엔 쌀 일석을 더 주라는 지침도 적어뒀다”고 했다.

■상의원부터 혜민서까지, 임무도 명시

<관안 내>는 조선 행정 조직의 임무도 명시했다. ‘임금의 의복을 진상하고, 대궐 안의 재물과 보물 일체의 간수를 맡아보던 관서’인 상의원(尙衣院), 천문학, 지리학·역수·측후·각루 등 업무를 맡아보던 관상감(觀象監), 빈민 구제·치료를 맡았던 활인서(活人署) 등 모든 관청을 아우른다. 손 소장은 “활인서를 두고 ‘도성에 병든 사람들의 구제를 관장한다’고 적었다”고 했다. 서민 치료를 관장한 혜민서(惠民署)에 관한 기록도 있다. 손 소장은 “더도 덜도 말고, 확실하게 관청 임무를 적시했다. 법전인 <경국대전>과 비교하면 <경국대전>은 형식적인 법전 성격이었다면 어람관안은 실무집으로 그대로 시행된 실제상황 기록”이라고 말했다.

모든 직책을 적시했다. 사복시(司僕寺)는 임금이 타는 수레·말·마구·목축 등을 관장한 곳이다. 손 소장은 “장인 정(正)부터 부정(副正), 첨정(僉正) 등 직책과 정3품, 종3품 같은 품계까지 다 기록했다. 이 품계에 따라 임명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 관청의 위치도 써놓았다.

■조선 팔도의 모든 것

<관안 외>의 팔도지도 19장은 정상기(1678~1752)의 ‘동국대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손 소장은 “울릉도는 ‘自蔚珍 得風二日到(자울진 득풍이일도, 울진에서 좋은 바람을 타고 이틀이면 도착한다)’ 구절은 동국대지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당시 조선의 총인구가 705만940명으로 나온다. 남자 344만5409명, 여자 360만5531명이다. 11개 지역별(경도, 경기, 호서, 호남, 관동, 해서, 관서, 관북, 제주 등)로도 분류했다. 경도(京都, 한성) 가구 수는 3만5576호, 인구는 19만4432명이다. 우리역사넷이 <증보문헌비고> 등을 참고해 정리한 ‘조선 인구의 분포’ 편과 비교해볼 수 있다. 정조 1년(1777)의 전국 인구는 723만9000명, 한성은 19만8000명이다. 정조 13년(1789)은 각각 740만4000명, 18만9000명, 헌종 3년(1837)은 670만9000명, 20만4000명, 철종 3년(1852)은 691만9000명, 20만4000명이다.

전(田)은 47만2809결, 답(畓)은 34만6557결이었다. 전답 현황은 조세와도 이어진다. 양전법에 따른 세금 징수를 위해 땅의 등급도 기록했다. 세금 수령 관청도 지정했다. 손 소장은 “어람관안은 나라 살림의 근거였다. 임금이 이걸 보고 각종 정책을 수립했을 것”이라고 했다.

■어람관안,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조선 왕이 보던 자료는 활용이 끝나면 불태우곤 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실록> 35권, ‘정조 16년 9월3일’ 자를 보면 ‘우리나라에 온 공자의 후손을 예우하라 명하다’에 “공씨가 관직에 제수되기 전에는 위의 승전(承傳)이나 아래의 차의(差擬)를 거론할 수 없도록 정식(定式)을 삼아 어람(御覽)하는 관안(官案)의 첫 권과 정안(政案)의 첫 장에 써서 후대에 전하여 영원히 준수하고 시행할 수 있게 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걸 보면 ‘실록’처럼 후대에 남길 목적도 있었던 셈이다.

왕실에서 어람관안 2권은 어떻게 유출됐을까. 손 소장은 “이 어람관안은 정조~철종 때의 것으로 추정한다. 경주김씨 정순왕후(1745~1805, 영조21~순조5년), 안동김씨 순원왕후(1789~1857, 정조13~철종8년)의 수렴청정 시기에 누군가 접근했을 수도 있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이 세종시 조치원 세종문화원 강당에서 ‘어람관안’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 소장이 세종시 조치원 세종문화원 강당에서 ‘어람관안’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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