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로 오르듯 이끌려··· 두 ‘미소’를 만나 ‘사유’에 잠기다

김종목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과 금동반가사유상 이야기

공간과 유물을 하나로 묶는 건축 ‘시너지 효과’ 톡톡

모나리자와는 다른 반가사유상의 미소 ‘설레는 만남’

‘공간이 반가사유상을 압도하지는 않을까.’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의 전용 전시실인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 ‘사유의 방’ 건축 때 나온 고민거리 중 하나다. 개관 뒤 박물관 안팎의 반응을 보면, 기우였던 것 같다. ‘인테리어가 너무 강하다’ 같은 평이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호평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을 느꼈다’ 같은 극찬도 더러 나온다.

공간과 유물을 하나로 묶는 건축이 시너지를 내는 건 분명하다. 그 효과는 관람객 수에서 볼 수 있다. 11월12일~12월6일 중박 상설 전시장을 찾은 이는 8만1488명인데, 이 중 5만4000여명이 사유의 방을 관람한 것으로 중박은 추산했다. 주말 관림객은 2019년 코로나19 이전보다 늘었다. 11월27일 토요일은 2019년 대비 199%, 11월28일 일요일은 127%, 12월4일 토요일은 145%, 12월5일 일요일 125% 증가했다. 당장 관람이 힘든 외국인들의 관심도 뜨겁다. 사유의 방 웹페이지 방문수 10만을 돌파했는데, 영문 홈페이지 방문수가 8만7000, 일문 1만3000으로 국문 4274보다 많다.

관람객은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사유의 방 모토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듯하다. 박물관과 건축가(최욱)의 의도가 잘 맞아떨어졌다. 중박이 전시실을 만들며 건축가와 협업한 것은 처음이다.

사유의 방과 반가사유상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했다. 사유의 방과 반가사유상 브랜딩 담당 신소연 학예연구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박이 발간한 소책자 <사유의 방>과 반가사유상 관련 논문 등을 참조했다.

■경사 1도의 비밀…현실 너머의 공간 추구

사유의 방 진입로에서 반가사유상까지 가는 통로는 고즈넉한 산사로 오르는 듯하다. 경사 덕분이다. 경사? 어린이, 장애인, 임신부 등의 이동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 바닥 경사는 1도다. 걷다 보면 4~5도로 느껴진다. 천장이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정확히는 알루미늄 봉이다. 반가사유상 위 천장 쪽 위주로 2만1000여개의 봉을 설치했다. 신 학예사는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촘촘하게 다 달았다”고 했다. 봉 길이는 다르다. 신 학예사는 “천장 면 자체가 기울어져서 내려오면 공간이 답답해진다. 천장 높이는 그대로 두고 봉 길이를 달리 조절해 내려오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래서 공간감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사유의 방 벽면은 기울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장의 2만1000여 개의 알루미늄 봉은 비스듬히 내려온다. 착시 효과가 생겨 경사 1도 바닥은 4~5도로 느껴진다. 사진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유의 방 벽면은 기울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장의 2만1000여 개의 알루미늄 봉은 비스듬히 내려온다. 착시 효과가 생겨 경사 1도 바닥은 4~5도로 느껴진다. 사진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개관 초기 때 이 경사의 효과를 두고 바닥과 천장 소실점에 반가사유상을 뒀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신 학예사는 “건축가는 소실점이 사라지는 걸 의도했다고 한다. 현실의 원근감, 물리적인 거리감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어 했다”고 한다.

사유의 방은 소극장 크기로 디자인했다. 최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 “반가사유상이 전시대 위에 있을 때 사람 키 혹은 그보다 조금 큰 정도여서, 사람의 보디 스케일을 잘 이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극장은 관객이 무대에 선 배우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잖아요. 그게 한 24m 정도 돼요. 그런 공간에선 배우의 섬세한 표현, 속눈썹 떨림까지 다 보이죠. 그렇게 되면 반가사유상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보디 스케일로 충분히 엮인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 공간에서) 안정적인 것은 반가사유상뿐이고 사람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보는 것 중에 어느 하나도 똑같이 장면이 없다.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장진아 연구관은 “건축가는 현실에서 벗어난 공간, 시공을 가늠할 수 없는 초현실적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 의도는 공간 자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반가사유상에 더 몰입하고, 직관적으로 감상하라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의 공감각을 일깨운다

옆면 벽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었다. 예사 벽은 아니다. 적토로 만들었다. 가까이 가면 은은한 향이 난다. 실제 계피와 허브 같은 재료를 분말로 만들어 흙에 섞었다. 숯, 편백, 삼베도 넣었다. 이런 재료가 친환경적인 한국의 흙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현숙 디자이너는 “숯, 흙, 옻처럼 대부분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대신 공간이 경직되지 않도록 벽면을 살짝 기울여 전체를 아우르면서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고 했다.

사유의 방은 공간과 유물을 하나로 묶어 명상의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김종목 기자

사유의 방은 공간과 유물을 하나로 묶어 명상의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김종목 기자

진입로도 주목해야 한다. 전시장 밖 소음을 차단하고, 관람객 눈을 어둠에 적응하게 하는 공간이다. 장-쥘리앵 푸스가 제작한 흑백 영상 ‘순환’과 흑백·컬러 영상 ‘등대’가 흐른다. ‘순환’은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상의 얼음, 물, 수증기는 실사 촬영한 것이다. 푸스는 “이번 영상 작업에서는 물질 너머의 공(空)을, 그리고 무(無)를 사유해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2017년 제주도 해녀 다큐멘터리 ‘울림’과 2020년 중박 ‘세한의 시간’ 영상을 제작한 프랑스 작가이다.

이 영상 음향이 나지막히 사유의 방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소리, 흙벽의 질감과 향, 조명 빛 등이 오감 중 사감을 건드린다. 신 학예사는 “이 공간이 여러 감각을 일깨워 좋았다는 분들이 많다. 이전 전시실이 유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 사유의 방은 (관람객의) 경험에 방점을 뒀다”고도 했다.

■열입곱 결의 옻칠과 받침대의 비밀

반가사유상 두 점은 각각 원기둥에 올렸다. 기둥 재료는 나무다. 열일곱 겹의 옻칠을 했다고 한다. 이 두 원기둥을 함께 지지하는 게 타원형의 받침대다. “그동안 받침대는 보통 정육면체 아니면, 직육면체였다. 타원형 받침대도 약간 비스듬하게 놓았는데, ‘비정형의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금속 타원형의 받침대 밑을 떠받드는 건 지진에 대비한 면진대(免震臺)다. 5분 단위로 한 공간에 20명 정도가 최적의 숫자다. 한 사람당 10~20분 정도 머무른다. 지금까지 관람객의 흐름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나무 원기둥 아래 타원형 받침대를 설치했다. 그 밑을 떠받치는 건 지진에 대비한 면진대다. 사진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나무 원기둥 아래 타원형 받침대를 설치했다. 그 밑을 떠받치는 건 지진에 대비한 면진대다. 사진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모나리자의 미소

반가사유상은 ‘사유’로 따지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1200년, ‘미소’로 보면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900년 앞선 작품이다. 두 반가사유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미소다. ‘온화한 미소’, ‘해맑은 미소’, ‘잔잔한 미소’, ‘해탈의 미소’, ‘신비의 미소’…. 모든 긍정의 수식이 따라붙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역사적으로도 이렇게 독특하고 신비롭기 때문에 이 미소에 대해 종교적, 미술사적 해석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학문적 탐구도 필요할 것 같다”면서 ‘모나리자’에 관한 2005년 네덜란드 조사 결과를 인용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진들은 그해 ‘얼굴 행동 코딩 시스템’으로 모나리자의 행복, 놀람, 분노, 혐오, 공포, 슬픔 등 6가지 감정을 분석한 결과 전체 감정 요소 중 83%가 행복이라고 발표했다. 나머지 17%의 감정 요소는 혐오감이 9%, 두려움 6%, 분노 2%였다.

모나리자. 출처 위키피디아

모나리자. 출처 위키피디아

이 프로그램으로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분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놀람, 분노, 혐오, 공포, 슬픔 같은 감정 요소는 측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행복이라 단정할 수 없다.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굳이 수치화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양 교수도 “인간의 무수한 감정을 뒤로한 채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에 이러한 수치적 분석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만 이런 분석을 통해 반가사유상의 사려 깊은 표정의 의미가 객관적 수치로 나타나,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연구가 가능할 것 같아 설렌다”고 했다.

■카를 야스퍼스의 찬사

‘사유의 방’을 디자인한 건축가 최욱은 문화재청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실존하는 가장 완벽한 상태의 미소”를 인용하며 “동서양을 벗어나, 종교를 떠나 반가사유상이 지닌 미학적 에너지는 굉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야스퍼스는 1945년 일본 교토 고류지(廣隆寺,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을 두고 ‘패전(敗戰)의 피안(彼岸)에 남긴 것들’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형태의 신상(神像)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감정의 자취가 남아 있어 절대자만이 보여 주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유홍준 번역).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얘기할 때 곧잘 인용하는 게 야스퍼스의 이 말이다. 일본 목조반가사유상이 이번에 사유의 방에 전시된 두 점 중 7세기 전반 반가사유상(옛 명칭 국보 83호)과 닮았기 때문이다. ‘쌍둥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중박은 “전 세계 반가사유상 가운데 독립된 존상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물을 뽑자면 중박 소장품인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과 일본 사찰 소장품인 목조반가사유상일 것”이라고 했다.

일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

일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

■일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은

신라계 불상이라는 게 통설이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재질이다.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의 재질은 홍송(紅松)이란 추정이 나와 있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논문 ‘광륭사 소장 신라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종합적 연구’에서 “일본에서는 소나무로 조각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반가상은 한국산이라는 설이 일찍부터 정설이 됐다. 신라국사가 전래하여 성덕태자를 위하여 조성한 광륭사의 주불로 봉안한 상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신라 반가사유상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라에서 목불상을 조성하자면 가장 양질의 목재를 사용했을 것이므로, 이 반가상의 재료는 신라의 가장 좋은 소나무 산지인 태백산 남록(남쪽 기슭), 즉, 춘양을 중심으로 한 봉화 울진 지역의 홍송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문 교수는 “(고류지)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약탈이나 도취에 의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수 많은 문화재들과는 달리 정식 사절에 의한 문화 교류 차원에서 교류된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반가사유상은 언제, 누가, 어디서?

반가사유상 두 점의 출토지 기록은 없다. 전 동국대 총장을 지낸 고 황수영 박사가 1995년 6세기 후반 것(옛 명칭 국보 78호)을 두고 경북 영천 소백산 폐사에서 나왔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7세기 전반 것(83호)을 두고 일본 도쿄대 세키노 타다시 교수는 경주 오릉 부근의 절터로 언급했다. 황 박사는 경주 남산 서쪽 선방사지 근처의 절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주나 경주 부근의 섭론종(攝論宗) 계통 사찰의 금당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된다”(문명대)는 추론도 나와 있다.

삼국 중 어느 국가가 만들었는지도 확정된 적은 없다. 중박 입장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운데 어디서 만든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불상 종류를 두고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의 중국 불교 상황과 삼국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유행했던 불교 신앙, 현존하는 작품의 완성도와 스케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상당수는 미륵보살(미륵불)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를 가리킨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 머리와 팔이 없다. 어깨까지 높이는 125㎝다. 김종목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경주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 머리와 팔이 없다. 어깨까지 높이는 125㎝다. 김종목 기자

반가사유상은 인도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쪽 다리를 내리고 다른 다리를 무릎 위에 올린 반가(半跏) 자세와 한쪽 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긴 사유(思惟) 자세를 결합한 반가사유상 형식은 인도에서 창안됐다”(국립경주박물관 안내표)고 한다.

중국에선 5~6세기 활발하게 제작됐다. 출가를 결심하는 태자사유상이나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구제를 사유하는 미륵보살상으로 만들어졌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비대칭의 미학과 생각에 잠긴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에서 6~7세기 꽃피우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일본에도 전해져 7~8세기에 일본에서 많은 반가사유상이 제작되었다”고 했다.

6세기 후반 것을 두곤 여러 해석이 있지만, 7세기 전반 것은 신라계로 많이 본다. 중박은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의 반가사유상, 황룡사지 출토 반가사유상 두상 등 신라 지역의 반가사유상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식의 삼면보관, 신라에서 보냈다고 전해지는 623년 무렵에 제작된 일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의 친연성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전반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친연성’을 따질 때 언급되는 다른 반가사유상이 경주 송화산에서 발굴된 125㎝ 높이의 석조 반가사유상이다. 이 사유상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안내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머리와 두 팔은 없다.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올리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윗몸에 목걸이를 하고 있다. 하체에 걸친 치맛자락은 서로 겹치어 주름지고 끝자락에서 물결을 이룬다. 발가락과 발톱까지 정성 들여 표현한 왼발은 연꽃을 딛고 있다. 조각하기 까다로운 화강암에 신라 장인의 불심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치맛자락이나 발의 형태는 7세기 전반 것과 비슷하다. 머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반가사유상은 모두 6점(금동 4점, 석조 1점, 목조 1점)이다. 이 중 4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최근 개관한 불교사원실에서는 황룡사지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전시한다. 오른쪽 턱 밑에 손가락을 대었던 흔적인 작은 돌기가 남아 반가사유상 머리로 추정한다. “아이 같은 인상을 주는 통통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다”는 평이 나온다. 머리에는 7세기 전반 반가사유상에서 보는 것과 같은 머리에 세 개의 반원을 이어 붙인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삼산관은 인도나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황룡사 터에서 발굴한 금동반가사유상.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사원실에서 전시 중이다. 높이는 8.3㎝. 김종목 기자

황룡사 터에서 발굴한 금동반가사유상.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사원실에서 전시 중이다. 높이는 8.3㎝. 김종목 기자

금동반가사유상은 세계에 70점 정도 남아있다고 한다. 한국에 20여 점, 일본에 40여 점, 유럽과 미국 등지에 10여 점이 있다. 반가사유상들은 대체로 수십㎝ 크기다. 1m 안팎의 대형 반가사유상은 중박 두 점과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 경북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사유상,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 4점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금동반가사유상(신라 7세기 추정). 김종목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금동반가사유상(신라 7세기 추정). 김종목 기자

■두 불상 어떻게 만들었나

중박은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이 두 점에 담겨 있다고 했다. 중박이 정리한 제작 순서는 다음과 같다.

수직과 수평의 철심으로 불상의 머리부터 대좌까지 뼈대를 세운 뒤에 점토를 덮어 형상을 만들고, 밀랍을 입혀 반가사유상 형태를 조각한 다음, 다시 흙을 씌워 거푸집(외형)을 만든다. 거푸집에 뜨거운 열을 가하면 내부 밀랍이 녹아 반가사유상 모양의 틈이 생긴다. 여기 청동물을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을 벗기면 반가사유상이 완성된다.

두께 0.2~1.0㎝ 정도, 크기 1m에 가까운 금동반가사유상을 제작하려면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중박은 “이때 청동물이 굳으면서 거푸집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조 후 거푸집을 고정했던 장치나 못을 제거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그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6세기 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의 주성분은 구리 91.4%, 주석 6.4%이다. 7세기 전반에 만든 반가사유상은 구리 94.9%, 주석 4.1%이다. 중박은 “두 점의 성분 차이는 크지 않다. 옛날에는 현재와 같은 전기도금을 할 수 없어서 금을 수은에 녹여 도금하는 수은 아말감 기법을 이용했다”고 했다. “수은 아말감 기법은 수은이 든 도가니에 얇게 자른 금을 넣고 불로 데워서 녹인 다음, 천이나 양가죽 또는 두꺼운 종이에 넣고 짜서 금과 수은의 혼합물인 아말감을 만든다. 이것을 불상 표면에 바르고 불로 가열하면 수은이 날아가고 불상 표면에 금이 남게 된다. 이때 표면을 연마하면 광택 나는 금도금을 얻을 수 있다.”

고즈넉한 산사로 오르듯 이끌려··· 두 ‘미소’를 만나 ‘사유’에 잠기다

■반가사유상에 관한 후대의 예술

왕지원, 기계적 반가사유상, 2011, 우레탄, 금속, 기계,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왕지원 제공

왕지원, 기계적 반가사유상, 2011, 우레탄, 금속, 기계,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왕지원 제공

걸작은 후대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중박은 2011년 작 왕지원의 ‘기계적 반가사유상’을 꼽는다.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기계 장치의 움직임을 결합해 로봇 붓다의 형상을 구현하고 있다. 인체의 불완전함을 초월한 사이보그, 그리고 고행과 명상을 통해 초월적 존재가 된 붓다. 두 이미지의 결합으로 탄생한 기계적 반가사유상은 미래 세계에 인간의 존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성찰해보는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최종태, 생각하는 사람, 2012, 대리석, 70x27.5x43.2cm. 국립현대미술관

최종태, 생각하는 사람, 2012, 대리석, 70x27.5x43.2cm. 국립현대미술관

조각가 최종태가 반가사유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조각을 하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실 한국 전통 불상 조각이었다. 창작에 많은 한계를 느끼던 30대 초반에 본 반가사유상에서 막혔던 길을 뚫어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최종태가 1965년에 접한 7세기 전반 반가사유상이 그의 미적 가치와 창작 방향에 영향을 줬다. 그는 “반가사유상이 나한테 그 쇼킹한 무언가를 줬어. 그래서 (맑음, 깨끗함, 평화를 추구하는) 길을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최종태는 반가사유상 두 점을 위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사유의 방도 다녀갔다.

강익중, 삼라만상, 패널에 혼합설치, 동에 크롬도금. 국립현대미술관

강익중, 삼라만상, 패널에 혼합설치, 동에 크롬도금. 국립현대미술관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삼라만상’도 반가사유상에 영감을 받았다. 3인치 크기, 1만여 개의 작은 이미지를 모은 대형 벽면 앞에 크롬으로 도금한 반가사유상을 뒀다. ‘벽면에 설치한 작품들이 도금된 반가사유상 표면에 투영되면서 있으면서도 없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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