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비자유주의·포퓰리즘·양극화 위협 넘어서야”

김지혜 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해 14일 열린 ‘민주주의와 한국사회’ 학술대회에서 정준호 강원대 교수·이일영 한신대 교수·장덕진 서울대 교수·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김호기 연세대 교수·허성욱 서울대 교수(왼쪽부터)가 발표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해 14일 열린 ‘민주주의와 한국사회’ 학술대회에서 정준호 강원대 교수·이일영 한신대 교수·장덕진 서울대 교수·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김호기 연세대 교수·허성욱 서울대 교수(왼쪽부터)가 발표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문재인 정부 핵심인 운동권 세력
형식적 민주주의 이뤄내고도
존중·절제 등 규범 내재화 못해

윤석열 정부 반다원주의 우려
스트롱맨·안티페미 이미지 벗고
팬덤정치·반중주의 경계해야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와 포퓰리즘, 경제적·정치적 양극화의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위협을 헤쳐나가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스트롱맨(권위주의적 지도자)과 안티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벗고 반중주의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스탠퍼드대의 월터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인 신기욱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국내외 사회과학자들이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한국 사회에서 감지된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들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 책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출간을 기념해 열렸다.

신 교수와 함께 책의 편집을 맡은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결정적인 시험대에 섰다”면서 “우리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두 편집자를 포함한 책의 주요 필자들은 이날 학술대회에서 2010년대 이후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경제와 사법 등 각 분야의 세부 논의를 이어갔다. 2016~2017년 촛불집회를 통해 권위주의로의 후퇴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한국 사회가 어떤 이유로 또다시 민주주의 위기를 맞이했는지 정밀한 분석이 이어졌다.

신 교수와 김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자유주의의 빈곤을 의미하는 ‘비자유주의’, 반다원주의를 강화시킨 ‘포퓰리즘’, 그리고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낳은 ‘경제적·정치적 양극화’가 바로 그것이다.

신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을 이룬 운동권 세력은 법치주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뤄냈지만 상호 존중, 권력의 절제와 같은 민주적 가치나 규범을 내재화하지 못하면서 자유주의의 빈곤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핵심을 이루는 검찰 역시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이해하고 내재화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엘리트주의와 반다원주의를 강화하는 포퓰리즘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신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의 구호로 선과 악을 나누는 도덕적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반다원주의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을 반엘리트주의가 두드러진 “구기득권(윤석열) 대 신기득권(이재명) 싸움”으로 보고 “유력 후보였던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서로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상대방과의 공존을 거부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앞세운 안티 페미니즘 역시 일종의 반다원주의”라며 “이 정부에서 제2의 ‘적폐청산’을 시행한다면 지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비자유주의·포퓰리즘·양극화 위협 넘어서야”

경제적·정치적 양극화 역시 민주주의의 중요한 위협 요인 중 하나다. 신 교수는 특히 정치적 양극화, 팬덤 정치가 점차 기승을 부리는 현상을 우려했다.

책의 또 다른 필자인 정준호 강원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허성욱 서울대 교수의 각론 발표가 이어졌다. 경제학자인 정 교수와 이 교수는 최근 한국 경제에서 나타난 두 가지 분열을 민주화 체제의 위기 요인으로 읽어냈다.

이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재편 속에서 한국 경제의 산업과 자산 구조가 변화했고, 한국 사회의 지역 격차와 세대 격차가 크게 심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 중심 체제로 인해 소멸 위기를 맞았고, 청년 세대는 심각한 소득과 자산 격차에 부딪혔다”면서 “정치권에서 이 같은 균열을 그저 방치한다면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적 동원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법학자인 허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를 진단했다. 정치의 사법화란 법원에서 정치적 사건이 검토되는 경향을,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적 선호에 따라 사법부를 구성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허 교수는 “2017년 탄핵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보다 1년 일찍 물러나게 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14명의 대법관 중 13명의 대법관을,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부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가속화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우려했다.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가 지난달 영문판을 출간했고, 이학사가 올가을 한국어 번역본을 펴낸다. 필자로는 이날 세미나 참석자를 포함해 안병진 경희대 교수, 이관후 전 국무총리실 비서관, 박명호 동국대 교수, 최성수 연세대 교수, 아람 허 미주리대 교수, 이용석 노트르담대 교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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