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작 ‘7급 공무원’, 영화 속의 로맨틱 빼곤 다 바꿨다”

백은하 기자

드라마 ‘7급 공무원’으로 돌아온 천성일 작가

책상 위에 노트북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국가정보 보호백서>라고 쓰여진 두툼한 책 옆에는 ‘111 안보 탐구생활’ ‘관심, 안보의 시작입니다’ 등의 문구가 쓰여진 브로슈어가 나뒹군다. 취조실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추노> <도망자>를 쓴 천성일 작가(42·왼쪽 사진)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작업실이다. 그는 2009년 4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7급 공무원>을 드라마로 옮기고 있다. 주원, 최강희가 국정원 요원 커플로 등장하는 이 MBC 수목드라마는 23일 첫 방영을 앞두고 있다. ‘양지’의 드라마를 지향하며 ‘음지’의 사무실에서 한겨울을 바치고 있는 천성일 작가를 만났다.

“20부작 ‘7급 공무원’, 영화 속의 로맨틱 빼곤 다 바꿨다”

▲ 권위적인 조직 국정원 선정
‘녹색성장’‘51.8% 당선’ 등
현실 속 사건 도입해 풍자

▲ 공무원을 지망했던 젊은이가
조직 속에서 변하는 모습 그려

-영화 시나리오도 썼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나.

“원작에서 ‘사랑과 진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는 콘셉트와 ‘밝고 가벼운 로맨틱 첩보 드라마’라는 톤만 가져온다. 이야기는 다 갈아치웠다. 영화는 2시간이지만 20부작 드라마는 열 배 이상 이야기가 필요했다.”

-왜 국정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정했나.

“첫째 권위적으로 자리잡은 조직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국정원을 신 같은 능력이 있는 조직으로 오해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 그런데 미행 사건(2010년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을 미행하다가 발각되자 조직과 관련없다고 부인함)이나 지난해 대선 직전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처럼 코미디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둘째 의외로 우리 세금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필요한 건지 생각을 안 한다. 국정원에 대한 비판도, 또한 칭찬도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사실적으로 국정원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20부작 ‘7급 공무원’, 영화 속의 로맨틱 빼곤 다 바꿨다”

-예고편의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살고 이름 없이 죽을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라는 선언이 인상적이다.

“그런 부분을 코미디로 차용할 것이다. 자신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을 적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맹세해놓고 다음날 ‘경축 국정원 합격!’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동네 잔치가 열리는 식이다. 국정원에 들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기도 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고, 자유와 진리를 위한 무명의 헌신이 여전히 유효한가. 거기에는 정말 조국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하려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까. 물론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일 수도 있다. 국정원 시험 출제방식이 한두 과목 빼고 방송국이랑 비슷했다더라. 극중 서연(최강희)도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가 국정원에 먼저 합격돼서 출근한다. 길로(주원)는 007 영화 보고 반해서 들어가고.”

-자료 수집이 어렵지는 않았나.

“국정원 홍보팀에 공식적으로 요청해서 몇 번 인터뷰를 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무것도 안 해 준다. 유도심문에도 안 넘어온다. 다만 태도나 습관 같은 건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스치듯이 말했던 이야기의 디테일을 다 기억하는 점이 놀랍더라.”

-영화와 달리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직업을 알고 있다.

“사내 커플이 가장 많이 생기는 곳이 국정원이라고 한다. 비밀이 너무 많겠지만 ‘Need to know?’라는 문구가 있다고 하더라. ‘알 필요 있느냐’는 거다. ‘요즘 뭐해’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거다. 훌륭한 요원이지만 애인 자격은 빵점인 경우처럼 요원의 자격, 인간의 자격, 애인의 자격이 ‘국정원’이라는 틀 안에 담기면서 묘하게 엇갈리고 우선순위가 바뀌게 된다. 코미디를 기본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단계 한 단계 자격증을 따는 것 같은 성장드라마가 될 거다.”

드라마 <7급 공무원>의 한 장면.

드라마 <7급 공무원>의 한 장면.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대본 변화가 있었나.

“원래 극중 국정원 여직원 최강희가 오피스텔에 사는 걸로 했는데 빌라로 바꾼 정도(웃음). 또 충청도에 사는 최강희 아버지(이한위)가 마을 이장에 당선된다. 여기는 권력의 달콤함과 비수 같은 민심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원래는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려 이장 공약을 ‘저탄소 녹색성장 마을’로 잡았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 공약에는 딱 맞는 게 없어서 마을 최초의 과반수(51.8%)로 당선이 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추노> 때 인터뷰에서 ‘개인의 역사와 집단의 역사가 만나는 시기로 인조시대를 택했고 그 안에서 추노꾼을 따라갔다’고 했다. 지금 <7급 공무원>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나는 시대를 앞서갈 능력이 없다. 대신 작품 속에서 이 시대를 어떻게 녹일 것인가만 생각한다. <7급 공무원>에는 스펙만이 목표인 젊은이들의 이야기, 권력욕에 대한 이야기, 이 시대에 흐르는 미세한 이야기들을 녹이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