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악역 배우 김소연·최예빈…‘미친 연기’로 ‘미친 서사’ 살렸다

김지혜 기자

SBS ‘펜트하우스’의 악역 모녀 연기

‘펜트하우스’ 악역 배우 김소연·최예빈…‘미친 연기’로 ‘미친 서사’ 살렸다

지난해 10월부터 1년을 달려온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시즌3을 끝으로 지난 10일 막을 내렸다.

상식을 넘어서는 악행,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비현실적 전개로 점철된 드라마의 ‘미친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미친 연기’였다. 악으로 시작해, 악으로 끝맺은 이 드라마의 처음과 끝에는 애증으로 얽힌 악역 모녀 천서진과 하은별이 있었다. 종영 직전 천서진을 연기한 김소연(41)과 하은별을 맡은 최예빈(23)을 각각 인터뷰했다. TV 속 악독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해사한 얼굴들이었다.

■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천서진이 맞다”

“천서진은 그냥 천서진이죠.” 김소연에게 ‘천서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해한 희대의 악역을 소화하기 위해 이 ‘선한 배우’가 택한 몰입의 방법은 ‘그냥’ 이었다. 그는 “천서진의 악행에서 이유를 찾으려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공감도 이해도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성장 환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며 “늘 ‘촬영만 끝나면 내가 천서진 1등으로 미워할 거야’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늘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배역에 기꺼이 몰입한 것이다. 그의 광기 어린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지난해 방송된 시즌1,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신들린 듯 피아노를 연주하던 장면은 대중에게 ‘명연기’로 회자됐다. “대사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여서 리허설조차 못한 장면이에요. 피아노까지 대역 없이 소화했던 회차라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해도 공감도 불가능했던 천서진
그래도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맞다고 생각했다

김소연은 사람 좋기로 소문난 배우다. 혹여 천서진을 연기하는 일이 마음에 상처로 남지는 않았을까. “바뀐 노동법(주 52시간 근무제) 덕분에 연기와 일상을 구분하는 여유를 갖게 됐다”며 웃던 그조차도 천서진이 오윤희(유진)를 살해하던 장면을 찍던 날만큼은 아프게 기억한다. 그는 “대본을 받고서 쇼크를 받아 악몽을 꾸고 혓바늘까지 돋았다”며 “방송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괜히 유진씨에게 ‘윤희야, 좋은 꿈꿔’라는 카톡을 보냈다”고 말했다.

천서진은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허영미’ 이후 김소연이 20년 만에 만난 강렬한 악역이다. 그의 결말은 모두가 예상했듯 처절했다. 김소연은 후두암에 걸린 천서진의 말로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촬영 직전 카메라 앞에서 직접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1주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짧은 장면을 위해 긴 머리를 자른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천서진에게 받은 선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에게 김소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럼에도 고맙고 안타까웠던 인물 천서진. 직접 만난다면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냐고 묻자 김소연은 “어려운 질문”이라며 조금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보다는, 천서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네요.”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악역 모녀 천서진·하은별로 열연한 배우 김소연·최예빈.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우철훈 선임기자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악역 모녀 천서진·하은별로 열연한 배우 김소연·최예빈.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우철훈 선임기자

■ “예상 못한 ‘연기력 논란’, 모니터링과 피드백으로 극복”

“은별이는 고슴도치 같아요. 자신을 보호하려고 가시를 세우지만, 사실은 외로움과 불안함이 많은 친구죠.” 최예빈에게 TV드라마 데뷔작 <펜트하우스>의 배역 하은별은 특별한 친구다. 그는 첫 방송에서 열 달 앞선 지난해 1월, 성악 레슨과 함께 시작된 은별과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후 1년8개월간, 엄마 천서진의 학대 속에 사랑을 갈구하다 끝내 악행까지 서슴지 않게 된 은별의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과정에 ‘연기력 논란’이라는 달갑잖은 수식어가 붙기도 했고, 86만명이 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를 얻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시즌1 때 연기력 논란, 모니터링하며 극복
엄마와 자신의 잘못 알고 있던 은별
마지막 법정 장면서 모든 것 표현하는 데 집중

그의 표정은 후련해보였다. 시즌1에서 일었던 ‘연기력 논란’에 대해서도 담담했다. “촬영 당시에는 스스로 어색하진 않아서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어요. 은별이는 감정 표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표현적으로 더 신경을 썼는데,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 같아요. 역량도 경험도 부족했죠.” 시즌2·3에 접어들며 논란은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 ‘가면 증후군’ 은별의 복잡한 심리가 보다 설득력 있게 그려졌고, 최예빈 역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인물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결과다.

“대본에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라는 지문이 자주 나왔어요. 은별이의 불안을 보여주는 행동인데,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시즌1부터 강박적으로 여러 번 머리를 넘기곤 했는데, 시즌2 촬영 중에 김소연 선배님이 애드리브로 ‘은별이 머리 만지지마!’라고 혼내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천서진이라면 은별의 불안증세를 늘 그렇게 제지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는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소심하게 만지는 식으로 동작을 바꿔갔어요.”

은별은 결국 엄마의 악행을 법정에서 고발하며 극을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최예빈은 “은별은 자신과 엄마가 한 행동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마지막 법정 신에서는 참아왔던 모든 걸 다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연기를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고등학교 내내 내신 1등급 성적을 유지했던 그의 열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원래 성격대로 쾌활한 역할도, <차이나타운>과 같은 느와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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