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 명성은 비밀은, 살뜰한 '디테일'에 있다…<지금 우리 학교는> 움직임 안무가 한성수&국중이

장회정 기자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K좀비 명가가 된 데에는 한성수·국중이와 같은 좀비 전문 안무가의 활약이 있었다. 이준헌 기자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K좀비 명가가 된 데에는 한성수·국중이와 같은 좀비 전문 안무가의 활약이 있었다. 이준헌 기자

‘안무 한성수 국중이.’

지난 1월29일 공개 이틀 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분 전 세계 1위(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오른 <지금 우리 학교는>(지우학)에 등장하는 크레디트다. 춤이 나오기는커녕 좀비 드라마인데 안무라니, 의아할 수 있다. 한성수와 국중이는 극중 모든 좀비의 움직임과 표정을 담당한 ‘움직임 안무가’다. 부두교 전설에서 출발해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남은 시체들의 밤> 이후 본격 장르를 형성한 좀비물은 서양의 영역이었다. 되살아난 시체하면 강시부터 떠올렸던 동양, 그것도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K좀비 명가가 된 데에는 한성수·국중이와 같은 좀비 전문 안무가의 활약이 있었다.

지난 16일 한성수와 국중이를 만났다. 드라마의 인기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우학>을 이야기하는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성수는 <부산행> <킹덤> 시리즈, <#살아있다>, <반도>에 출연하며 K좀비물의 계보를 함께한 배우다.  이준헌 기자

한성수는 <부산행> <킹덤> 시리즈, <#살아있다>, <반도>에 출연하며 K좀비물의 계보를 함께한 배우다. 이준헌 기자

한성수는 좀비 전문으로 이름난 배우다. 2016년 개봉작 <부산행> 초반부 좀비가 된 동료에게 물리는 KTX 열차팀장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그는 <킹덤> 시리즈, <#살아있다>, <반도>에 출연하며 K좀비물의 계보를 함께했다. <스위트홈>, <불가살>에도 ‘귀물’로 출연한 한성수를 두고 국중이는 “분장팀이 가장 아끼는 배우”라고 소개했다. 큰 눈과 뼈대가 잘 드러나는 얼굴, 길쭉길쭉한 팔다리는 좀비 역에 최적화된 듯도 하다. <지우학>은 그의 첫 안무 작품이다. 이후 tvN <산부인과로 가는 길>과 삼성 게이밍모니터 CF를 통해 안무가 경력을 쌓고 있다.

국중이는 ‘주니’라는 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댄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맨 오브 우먼 미션’에 박재범과 함께 출연해 팀 홀리뱅과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킹덤2>로 움직임 안무를 시작해 <방법: 재차의>를 맡았으며 <지옥> 속 지옥사자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한 모션캡처 작업에도 참여했다.

배우와 댄서 출신 안무가의 <지우학> 공식 업무는 캐스팅에서부터 출발했다.

“좀비의 기본 걸음부터 공격할 때, 변이할 때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라고 한 뒤 오디션을 봤어요. 안무라고 해서 댄스나 무용했던 사람이 유리한 건 아니에요. 봤을 때 뭔가 ‘좀비스러워’ 보이는 배우를 우선적으로 뽑았어요.”(한성수)

각각 배우와 댄서 출신 움직임 안무가로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 움직임을 디렉팅한 한성수·국중이. 이준헌 기자

각각 배우와 댄서 출신 움직임 안무가로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 움직임을 디렉팅한 한성수·국중이. 이준헌 기자

600여명의 신청자 중 30여명의 배우를 캐스팅했다. 여기에 <부산행>, <킹덤>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30여 명이 합류했다. 촬영 4개월 전 본격 좀비 연기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걷는 것부터 기는 것, 먹이 발견 시 행동, 공격 자세 등의 기본 동작을 거쳐 장면별로 안무가들이 잡아놓은 시안을 토대로 맞춤 트레이닝이 이뤄졌다. 과거 “좀비처럼 연기해봐”가 디렉팅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우학>의 좀비는 단역까지 철저히 사전 조율된 동작을 익혀 카메라 앞에 섰다. 국중이는 “뭔가 우습거나 어설퍼 보이는 것과 진짜 좀비 같은 것은 한 끗 차이”라며 “ ‘찐 좀비’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말했다. 관객이 몰입해서 보다가도 조금 좀비 같지 않은 한 두 명 때문에 전체 그림이 깨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첫 번째 유행어는 “좀비도 연기다”였다.

K좀비물의 한단계 진일보한 역량을 보여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K좀비물의 한단계 진일보한 역량을 보여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제가 배우로 좀비 트레이닝을 받을 때, 표정까진 배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넣었어요. 배우들이 거울 앞에 앉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는 등 표정을 바꿔가며 본인의 무서운 얼굴을 찾는 작업을 했죠. 디테일에서 오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런 표정과 동작이 다 어우러져 <지우학>의 좀비가 이전보다 강력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한성수)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부끄러워하던 청소년 배우들도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안무가들의 조언에 따라 차차 그럴싸한 좀비로 바뀌어갔다. ‘변이’ 잘하는 동료의 연기를 보고는 ‘나는 더 어려운 동작을 달라’ 요구하기도 했다. 일단 뛰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웃음부터 발사하는 어린이들도 안무팀의 가이드를 받고 전에 없던 유치원생 좀비 떼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와이어나 컴퓨터그래픽(CG)의 도움이 꼭 필요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로 K좀비의 움직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원테이크와 롱테이크가 많은 작품이다 보니 촬영 직후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안무가의 주요 업무였다. 이재규 감독 옆에 붙어서 ‘매의 눈’으로 좀비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출연 배우들의 좀비 안무 트레이닝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지금 우리 학교는> 출연 배우들의 좀비 안무 트레이닝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좀비 연기가 어려운 것은 그 누구도 실제 좀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성수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볼 수는 없지만, 배우의 연기를 보는 순간 ‘진짜 같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며 “그 뿌듯함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국중이는 요나스 바이러스를 주입받아 좀비가 된 진수(이민구)와 진수 엄마(고나영)가 장롱에 감금돼 발버둥치는 장면을 <지우학> 최고의 좀비 신으로 들었다. 한성수는 10화에서 좀비에게 쫓기다 이성을 잃고 일행과 떨어져 결국 좀비에게 물리는 지민(김진영)의 변이 장면을 꼽았다. 현장의 두 번째 유행어이자 최고의 찬사는 “태좀(태생부터 좀비)”이었다.

<부산행>의 성공 이후 좀비물이 잇달아 제작되면서 관객들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좀비의 속도감이나 리얼한 특수 분장 이상의 진화가 요구됐다. 국중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좀비다움’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또한 <지우학>은 학교가 배경인 만큼 “같은 교복을 입고 명찰까지 단 친구가 좀비가 되어 자신을 물려고 하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특별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라고 서사적 차별점을 꼽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크레디트에는 ‘안무 한성수 국중이’의 이름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크레디트에는 ‘안무 한성수 국중이’의 이름이 등장한다.

안무가들에게 주어진 난제는 ‘절비(절반만 좀비)’ 캐릭터였다. 좀비에게 물렸지만, 인지 능력은 살아 있는 절비는 원작 웹툰에도 등장하지만, 실사로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관건이었다.

“극중 귀남(유인수)은 이모탈 좀비로 다른 사람을 물면 감염이 돼요. 남라(조이현)는 이뮨이라 불리는 절비로 물어도 감염은 안 시키죠. 너무 좀비처럼 보여도 안 되지만 좀비 같은 포인트는 있어야 해서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한성수)

영화나 드라마 제작 현장에 움직임 안무가가 처음 투입된 작품은 <곡성>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본브레이킹팀 센터피즈의 안무가 전영이 아역배우 김환희의 신들린 동작 연기에 일조했다. “<부산행>과 같은 본격 좀비물이 만들어지며 움직임 안무에 대한 인식이 생겼고, <킹덤>을 통해 그 전문성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고 두 사람은 정리했다. 한성수와 국중이는 <킹덤2>에서 각각 배우와 안무가로 만나, 전영의 소개로 <지우학> 공동 안무가로 참여하게 됐다. 좀비물뿐만 아니라 <지옥>과 같은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물도 속속 제작되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움직임 안무의 비중이 커지면서 무술감독, 조명감독처럼 ‘안무감독’의 입지도 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댄서에서 움직임 안무가, 이제 영화감독으로 세계를 확장한 국중이. 이준헌 기자

댄서에서 움직임 안무가, 이제 영화감독으로 세계를 확장한 국중이. 이준헌 기자

“간단한 동작이라도 안무가를 찾는 현장이 종종 생기는 걸 보면 안무 영역이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듯해요. 예를 들어 히어로물에도 안무적인 동작이 필요할 수 있거든요.”(국중이)

전영을 필두로 한성수, 국중이 등 5인이 비공식 그룹을 형성해 차기작을 준비하며 움직임 안무 분야 확대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K좀비의 명성에 힘을 보탠 일군의 좀비 전문 배우들도 함께한다. <지우학>은 한성수에게 있어 ‘좀비 배우’들의 처우 개선에 일조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작품이다.

“저희와 함께 작업한 이른바 ‘좀비 단역 배우’들의 경우 정말 베테랑이거든요. 수많은 좀비물 출연 경험으로 감독님과 안무가가 원하는 그림대로 정확히 표현해 현장에서의 호흡과 시너지를 최고로 끌어내는 분들이니까 그만한 대우가 필요했죠.”

누구보다 ‘좀비’ 연기에 진심인 두 사람. 한성수 배우와 국중이 안무가. 이준헌 기자

누구보다 ‘좀비’ 연기에 진심인 두 사람. 한성수 배우와 국중이 안무가. 이준헌 기자

지난 2017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조·단역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꿈을 꾼다’를 합창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진심을 전해 현장의 배우들과 시청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적이 있다. 한성수는 그 33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길게는 3시간 이상 분장을 한 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백태렌즈를 끼고 달리느라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인 좀비 역할을 하는 동안 “누군가 말해줬으면 했던 부분을 드디어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조금 뿌듯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지우학>의 높은 완성도에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활기찼던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있었고, 그 뒤에는 실루엣만 나올지언정 매순간 최선을 다한 좀비 단역 배우들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있었다는 걸 이참에 알리고 싶다고도 했다.

‘좀비’에 진심으로는 국중이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CJ문화재단의 스토리업 단편영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지원금 1500만원을 받아 단편 <29번째 호흡>을 연출했다. 좀비 배우들이 겪는 고충과 연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 작품에 “사람 연기하라”며 한성수도 출연시켰다. 시사회를 마친 이 작품은 5월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한 데 이어 칸국제영화제 입성도 노리고 있다.

<지우학>의 이재규 감독은 반복해 보면 더 재밌는 드라마라고 자부했다. 여기서 ‘n차 시청자’를 위한 정보 하나. 한성수와 국중이는 직접 좀비 역할로 출연했다. 힌트? 한성수는 경찰서에서 감염돼 송재익 형사(이규형)을 놀라게 한 ‘사람 반 좀비 반’ 연기를 했고, 국중이는 보온병 떨어지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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