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나락’과 나락 퀴즈쇼

고희진 기자
인터넷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밈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현대 사회를 잘 설명하는 용어들과 대중문화를 연결해 이야기합니니다.

‘나락퀴즈쇼’에 출연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가 정치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나락퀴즈쇼’에 출연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가 정치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민심 나락. 언젠가부터 문제가 되는 유명인에 대한 평가에 관용어로 쓰이는 말이다. 주로 ‘○○○, 민심 나락 갔다’로 쓰인다. 마약이나 음주운전처럼 비판받을 일을 저지른 이들이 이 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유명인의 말실수 하나 혹은 일상적인 발언들도 ‘정치적’이라며 과도한 비판을 받게 될 때다.

이런 흐름을 포착한 프로그램이 유튜브 피식대학 <나락퀴즈쇼>다. “cancel culture.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대중의 공격을 받고 지위나 직업을 박탈하려는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현상, 즉 나락.” 마치 경고 문구처럼 이 같은 자막이 뜨며 영상이 시작한다. MC 김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당신도 언젠가 나락을 간다”고 말하며 게스트를 소개한다.

퀴즈가 시작된다. 태극 문양과 사괘를 복잡하게 섞어둔 여러 보기를 주며 제대로 된 태극기를 고르게 한다든가, 흔히 ‘히로뽕’으로 불리는 마약 ‘메스암페타민’을 보기에 넣어놓고 자신이 구입한 적 있는 약을 고르라는 식이다. 여기까진 ‘순한 맛’이다.

게스트가 가장 많이 당황하는 상황은 바로 이런 문제다. ‘가장 정치를 잘한 대통령 3명을 골라주세요.’ ‘잼버리 사태 누구 잘못인가요’ 문제가 나오자 난처해하는 게스트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게스트가 “정치에 대해 정말 모른다. 좌파가 뭐고 우파가 뭐고”라며 변명 같은 말을 하는 건 덤이다. 화면에 비친 연예인의 매니저가 고개를 푹 숙인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조차 나락으로 빠지게 될 이유가 될까봐 MC인 김민수나 정재형, 이용주는 가능하면 무표정을 유지한다. 그렇게 이 모든 상황이 웃음 포인트가 된다.

‘나락퀴즈쇼’에서 유튜버 미미미누가 정치적 질문을 받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나락퀴즈쇼’에서 유튜버 미미미누가 정치적 질문을 받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나락퀴즈쇼’에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매니저가 난감한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나락퀴즈쇼’에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매니저가 난감한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캡처.

유행하는 소재를 정책 홍보에 잘 녹여내기로 유명한 충북 충주시 유튜브의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은 프로그램을 패러디했다. 지난달 10일 올라온 ‘홍보맨,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 영상이 그것이다. ‘충주 시민의 날은 언제일까요’ 등 시 홍보에 관한 문제도 나왔지만, 영상은 ‘지난 시장 선거에서 누구 뽑았나요’라는 질문으로 달려간다. 문제가 나오자 눈을 질끈 감는 홍보맨의 행동이 웃음을 준다. 결국 “투표를 안 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영상이 끝난다.

나락퀴즈의 공통점은 ‘정치’다.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시상식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치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연예인의 정치 발언에 부정적이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한편을 들면 다른 편은 모두 적이 되기 쉽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도 그렇다.

얼마 전 가수 김윤아의 사례가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를 두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고 했다. 물론 이 일로 김윤아가 나락에 가진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들의 발언이 역풍을 불렀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일 업로드된 <나락퀴즈쇼>엔 해당 프로그램을 패러디했던 김선태 주무관이 직접 출연했다. 마지막 질문은 ‘가장 떨어져서 아쉬운 후보는’이었다. 보기는 1번 이회창, 2번 정동영, 3번 홍준표, 4번 이재명. 김 주무관이 한 말은 역시 “저는 정치를 모르고요”였다. 모두가 정치를 말하지만, 아무도 ‘정치를 모르는’ 상황. 대중문화 속 한국 사회다.

김선태 주무관이 질문을 듣고 고민하고 있다. 유튜브 ‘충주시’ 캡처.

김선태 주무관이 질문을 듣고 고민하고 있다. 유튜브 ‘충주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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