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뜨리고 들이받아도 ‘배터리 안전 OK’…그래도 갈 길은 멀다읽음

박순봉 기자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전기차 안전 점검 현장 직접 살펴보니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된 전기차 배터리 낙하 시험 중 배터리가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과 전기차 후방 충돌 시험 직후 차량의 모습. 자동차안전연구원 제공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된 전기차 배터리 낙하 시험 중 배터리가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과 전기차 후방 충돌 시험 직후 차량의 모습. 자동차안전연구원 제공

400㎏ 배터리팩 4.9m서 수직 낙하
바닷물 침수 시험에도 발화 없어
대형 물체, 시속 48㎞로 후방 충돌
외관 손상에도 화재나 누출 없어

바야흐로 전기차(EV)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 안전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전기를 담는 배터리팩은 파손 시 작은 용광로가 된다. 빠르게 불이 붙고 쉽게 꺼지지 않는다. 전기차 시대에는 사람뿐 아니라 배터리라는 새로운 보호 대상이 추가된 셈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손상을 막기 위해 차량 하부가 둔덕이나 방지턱 등과 충돌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기차 안전점검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을 찾아 점검 과정을 살펴봤다.

■ 배터리 낙하 시험 최초 공개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자동차안전연구원 배터리시험실. 4.9m 높이에 매달려 있던 배터리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구원에서는 낙하 시험 시작 전 보안경을 제공했고, 귀도 막으라고 권고했다. 귀를 막고 있었지만 실제 충돌했을 때 ‘쾅’ 하는 소리가 예상보다 크게 울렸다. 소음이 컸을 뿐 배터리팩의 외관은 낙하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었다. 우려했던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배터리 낙하 시험은 자동차안전연구원이 2009년 세계 최초로 시행했다. 국제 기준이 생긴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2014년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시험 과정을 외부에 공개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수직 낙하한 배터리팩의 무게는 약 400㎏이다. 포터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을 분리해 시험했다. 이 배터리팩은 1회 충전 시 최대 200㎞ 정도를 주행할 수 있는 용량을 갖췄다. 배터리팩이 4.9m 높이에서 자유 낙하해 바닥에 충돌할 때 시속은 36㎞ 정도이다. 자동차 하부에 시속 36㎞로 물체가 충돌할 때를 가정한 시험이다. 전기차가 둔덕에 하부를 부딪혔을 때, 과속방지턱을 넘다가 부딪히는 사례 등을 염두에 뒀다. 주행 중 배수로에 바퀴가 빠져 차량 바닥이 충돌하고 일부가 전도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내연기관차라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하부에 물리적 손상이 생기는 것 외에 치명적으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기차로 주어를 바꾸면 위험 수준은 180도 달라진다. 배터리가 손상되면 화재로 연결될 수 있어 운전자와 승객은 물론 주변에도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화재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배터리의 경우 수리 비용이 많이 든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시중에 판매되는 전기차를 선정해 이런 시험을 한다. 한국의 자동차 안전제도는 자기인증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자동차 제조사가 스스로 인증해 판매하고, 사후에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임의로 안전성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낙하 시험 설명을 담당한 문보현 미래차연구처 책임연구원은 “아주 기본적인 시험이기 때문에 이 시험에서 불이 나면 그 배터리는 낙제라고 보면 된다”며 “대규모 생산자(자동차 제조사)들이 만드는 배터리에선 현재까지 불이 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 낙하 시험장 옆에는 바닷물 침수 시험장이 있다. 바닷물과 동일한 염도의 염소에 배터리를 담그는 시험이다. 바닷물에 닿았을 때 전기차가 폭발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문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6월 기아 전기차 EV6의 인천 갯벌 침수 사고를 예로 들면서 “침수 시험을 거친 안전한 차이기 때문에 발화나 폭발이 없었다”면서 “국내에서 운용되는 전기차는 바닷물에 빠져도 불이 절대 안 난다고 믿고 타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인천의 한 갯벌에 기아 EV6를 운전해 들어갔다가 만조 시간이 돼 물에 잠기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운전자가 침수된 EV6를 뒤에서 밀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EV6가 바닷물에 침수됐지만 다행히도 폭발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배터리 낙하, 바닷물 침수 등 총 12가지의 항목을 시험한다고 밝혔다. 국제 기준(10개)보다 2개 항목을 더 추가해 배터리 안전성을 점검하고 있다.

■ 후방 충돌 시험 차량, 1년간 보관

당일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는 전기차 후방 충돌 시험도 진행됐다. 전기차인 아우디 e-트론을 중량 1805㎏의 물체가 뒤에서 시속 48㎞로 충돌했다. 아우디 e-트론의 공차 중량은 2615㎏이다. 시속 48㎞이면 도로 주행에선 빠른 속도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충돌하기 때문에 실제 교통사고를 가정한다면 빠른 편이다. 졸음운전이나 만취운전이 아닌 경우 운전자는 통상적으로 충돌 직전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제동을 하기 때문이다. 충돌이 이뤄지자 폭탄 터지듯 ‘쾅’ 하는 소리가 났고, 아우디 e-트론은 앞으로 10여m 밀려났다. 아우디 e-트론 앞에는 너무 멀리 밀려나는 걸 막기 위한 타이어가 눕혀져 있었는데 이를 밟고도 한참을 더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차량 범퍼는 내려앉고 트렁크는 찌그러졌다. 하지만 배터리 화재나 연료 누출은 없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충돌 후 화재가 발생하는지를 가장 먼저 본다.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차적으로 연료 누출이 있는지 확인한다. 배터리 기준으로는 전해액이나 전기 누출이다. 이날 시험에서는 누출 사고가 없었다. 그다음으로 인체 모형 더미의 충격 여부를 파악한다.

충돌 시험을 진행한 차량은 1년간 보관한다. 자동차안전연구원 측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조치를 내릴 경우 자동차 제조사에서 항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간 보관하고 이후에는 폐기 처분한다.

떨어뜨리고 들이받아도 ‘배터리 안전 OK’…그래도 갈 길은 멀다

작년 등록 대수 대비 리콜 대수 53%
늘어난 판매만큼 품질 논란 여전
배터리 외 차 무게 등 새 기준 필요

■ 전기차 증가만큼 빠르게 늘어나는 리콜

국내 전기차 보급은 빠르게 늘고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8년 등록된 전기차는 5만5756대였지만 지난해에는 38만9855대로 늘었다. 연간 판매량이 4년 만에 7배 증가한 셈이다. 전기차가 많아진 만큼 품질 논란도 있다. 전기차 총 리콜 대수는 2018년 1만2264대에서 지난해 20만5344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38만9855대의 등록 전기차 중에서 52.6%인 20만5344대가 리콜 조치를 받았다.

리콜은 차량을 완전히 교체하는 수준의 조치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차량 일부를 수리하거나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의 리콜은 거의 100% 자발적 리콜이기도 하다. 제조사가 이의를 제기해 최종 설득이 될 경우 자발적 리콜로 분류한다. 다만 전기차 등록 대비 리콜 비율이 지난해 기준 52.6%로 높다. 과반의 차량이 크고 작은 문제로 리콜됐다는 의미이다. 자동차안전연구원 관계자는 “전기차 리콜 대수가 등록차 수 대비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 외에도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배터리가 무겁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는 더 무겁다. 자동차의 무게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에 도로의 내구성을 비롯한 다양한 기준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전기차와 관련해 우려가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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