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만 뗀 자율주행, 늦어지는 상용화…대중의 ‘기대’도 낮아졌다읽음

박순봉 기자

③ 머나먼 ‘완전 자율주행’

지난달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GM의 자율주행 차량인 크루즈 로보택시가 버스의 뒷부분을 추돌한 모습. 출처 : 포브스 기사

지난달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GM의 자율주행 차량인 크루즈 로보택시가 버스의 뒷부분을 추돌한 모습. 출처 : 포브스 기사

한때 가치 9조원 이르던 아르고AI, 지난해 청산…현대차도 고전
기술 ‘레벨 4’ 하세월, ‘레벨 3’도 2곳뿐…비용·규제 등 난관 봉착
안전·윤리 문제 여전하고 끼어들기 등 돌발상황 대처 능력 부족

자율주행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전기차가 미래차로 가는 시작이라면 자율주행은 미래차의 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전환이 친환경이란 시대정신과 맞물려 순항하는 반면 자율주행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자율주행 앞에는 비단 기술 구현의 어려움뿐 아니라 제도, 윤리, 일자리 문제까지 난관이 산적해 있다.

■ ‘돈 먹는 하마’ 자율주행, 완성차들 백기

완성차 회사들은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자율주행 기술에도 앞다퉈 투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8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GM은 2016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회사 크루즈를 인수해 자회사로 뒀다. 스텔란티스그룹은 지난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인 AI모티브를 인수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율주행 회사들을 인수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같은 움직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르고AI의 청산이다.

아르고AI는 2016년 설립된 자율주행 스타트업이다. 포드와 폭스바겐은 아르고AI에 36억달러(약 4조7484억원)를 투자했다. 기술력과 거대 자동차 회사들의 투자 덕분에 아르고AI의 기업 가치는 한때 9조원에 달했다. 그러던 아르고AI는 지난해 10월 말 문을 닫았다. 5조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받았지만 6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자율주행 상용화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만 기약 없이 들어가자 포드와 폭스바겐이 손을 뗐다.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가 만만치 않다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 업체 투자로 지난 3년간 1조5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가 미국 전장기업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은 2020~2022년 1조499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영업손실 규모는 해마다 커졌다. 2020년 2315억원, 2021년 5162억원, 2022년 7518억원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자율주행차 시장이 2035년까지 770억달러(약 101조5630억원) 규모로 성장할 걸로 전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2035년까지 완전 자율주행 실현을 위해서 450억달러(약 59조364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율주행 시장은 커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막대한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자율주행 ‘레벨 3’ 도달 기업도 고작 2곳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단계를 레벨 0부터 5까지 총 6단계로 나눈다. 레벨 0은 ‘비자율주행’, 레벨 1은 ‘운전자 보조’ 단계다. 레벨 2는 ‘부분 자율주행’이다. 이미 상용화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 단계에서도 조작의 주체는 인간이고, 운전대에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해당 기능을 사용하다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경고 메시지가 등장한다. 일부 주행 보조를 해주지만 어디까지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다는 의미다.

레벨 3은 ‘조건부 자율주행’이다. 인공지능(AI)이 운전대를 조작하고 속도도 조절한다. 주변 환경도 파악한다. 고속도로 주행 같은 일부 상황에서는 차가 스스로 운행한다. 운전자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에선 운전대를 잡을 필요조차 없다. 레벨 4는 ‘고도 자율주행’ 단계로 비상 상황에서만 인간이 개입한다. 레벨 5는 ‘완전 자율주행’이다. 모든 도로와 모든 환경에서 AI가 스스로 차를 통제한다. 이 단계에선 더 이상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도 브레이크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자율주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는 레벨 4부터다. 그러나 현시점에 이 단계에 도달한 회사는 하나도 없다. 레벨 3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은 지난 2월 발간한 ‘자율주행 산업/기술/정책·규제 동향’ 보고서에서 “기존의 자동차 제조기업에서도 전동화에 비해 자율주행 R&D는 한풀 꺾이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KADIF는 레벨 3을 달성한 업체도 고작 혼다와 메르세데스 벤츠 2개사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인 오로라 이노베이션의 리아 시어도시오 피사넬리 부사장은 지난 1월6일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 패널 토론에서 “당초 레벨 4가 모든 경우에 적용되기를 바랐으나 최근에 우리는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KADIF는 피사넬리 부사장의 발언이 레벨 4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옅어졌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의 레벨 3 자율주행 기술 적용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2022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고속도로 레벨 3 자율주행 기능을 제네시스 G90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지난해 4분기 G90 연식변경 모델 출시 때 레벨 3 기능을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한 차례 연기됐다. 지난달 25일 G90이 한 분기가량 늦게 출시됐지만 레벨 3 기술은 또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기술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개최된 중국전문가포럼(CSF)에서도 레벨 4 자율주행차를 대량으로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5년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예측이 나왔다. 자율주행 테스트 완료를 위해서 180억㎞에 달하는 주행 시험을 해야 하고, 자율주행차가 이용될 수 있는 10억개의 시나리오에 대한 시험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단기가 아닌 중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자율주행 소비자 부정 인식도 증가

자율주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KADIF의 1월 보고서에는 2020년 대비 2023년에 자율주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여론조사가 담겼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운전면허를 소지한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2020년에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미래지향적’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65.8%였지만 2023년에는 61.3%로 줄었다. 최첨단이란 이미지를 연상하는 비중도 58.3%에서 52.3%로 감소했다. 긍정적 이미지가 줄어든 셈이다.

반면에 부정적 이미지는 강해졌다. ‘시기상조’라고 답변한 비중은 2020년 37.5%에서 2023년 46.7%로 늘었다. ‘불안하다’는 답변은 33.4%에서 35.1%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답변은 16.8%에서 24.9%로 높아졌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직 실현하기 어려운 불안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총 6단계의 자율주행 중 ‘레벨 3 단계가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도 51.4%로 가장 높았다. 기술에 대한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전히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소비자들 입장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커진 것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고 사례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자율주행을 하던 GM의 크루즈 로봇택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 뒷부분과 충돌했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점을 던졌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테슬라 운전자가 정차돼 있는 911 소방 트럭을 들이받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을 사용 중이었는지, 음주 상태에서 사고를 낸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발표는 없었다. 다만 미국 고속도로 교통 안전국은 지난 2월16일 테슬라의 운전자 시스템이 교통안전법을 준수하지 않아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테슬라는 미국 내 테슬라 차량 36만2758대를 리콜 조치했다. FSD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위해서였다.

■ 운전을 어디까지 AI에게 맡길 것인가

운전은 사람을 편하게도 해주지만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AI에게 어디까지 판단을 맡길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도 잔존한다. ‘트롤리 딜레마’가 대표적이다. 내가 탄 자율주행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고, 그 앞에 많은 사람이 있다면 AI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운전대를 돌리면 나는 벽이나 나무에 부딪쳐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반면에 그냥 달린다면 여러 사람이 죽을 수 있다. 2015년 프랑스 툴루즈 경제대학교의 장프랑수아 보네퐁 교수팀이 발표한 ‘자율주행차도 윤리적 실험이 필요하다’는 논문에서 76%의 사람들이 운전대를 꺾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수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76%의 사람들 중 절반은 이렇게 프로그래밍된 자율주행차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들이 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답변은 또 달라질 수 있다.

트롤리 딜레마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다. 자율주행 시범 사업을 하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자율주행 기술로도 고속도로 일부 주행은 가능하다. 그런데 끼어들기와 출구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AI는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4차선 도로에서 가장 우측의 출구로 빠져나갈 때 AI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됐을 때만 끼어들기를 하기 때문에 상당 시간 가지 못하고 서 있게 된다. 사람들이 거칠게 끼어들면 AI는 운행을 멈추고 기다린다. 이 시간이 초보운전자의 기다림처럼 한없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제도 정비의 한계점도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시범 사업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날 때 자율주행 기능을 끄도록 하고 있다. 속도 제한이 있는 서울 도심에서 시속 80㎞의 자율주행 기능을 시험해보기도 어렵다. 자율주행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에는 여러 난관이 있지만 전환율이 높아질수록 편의는 물론, 안전성도 더욱 높아진다”며 “기술 개발에 앞서 선제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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