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가까운 ‘혼종’…국내에선 왜 못 나갈까
하이브리드차(HEV)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혼종이라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혼종의 혼종’ 격이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중간에 새겨진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는 잡종 혹은 혼종을 뜻한다. HEV나 PHEV 모두 전기모터와 엔진이라는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점은 같다. 차이는 외부에서 충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PHEV는 이름 그대로 플러그가 있어 충전이 가능하다. 내연기관차가 순종, ‘순수 전기차’도 다른 순종이라면 HEV나 PHEV는 모두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현재의 자동차 시장을 ‘전기차로의 급속 전환기’로 규정한다면, 이 시대의 PHEV는 멸종 위기의 상황일까. 만약 종착점이 순수 전기차라면 PHEV란 종은 멸종을 앞둔 처지, 아니면 그때도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혼종일까.
‘두 개의 심장’에 외부 충전도 가능
1회 충전으로 최대 60~80㎞ 주행
내연기관 활용 땐 거리 10배 증가
비싼 가격·육중한 무게는 ‘단점’
■ 플러그인하이브리드란 무엇인가
일상에서 ‘전기차 살 거야’라고 한다면 100% 배터리 기반 전기로 달리는 배터리 전기차(BEV)를 생각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전기차는 BEV는 물론 PHEV와 수소연료전지차(FCV)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PHEV는 BEV보다 작지만 HEV보다는 큰 배터리를 갖고 있다. 외부에서 충전을 해서 쓸 수 있다. 이 점이 BEV와 닮았다. BEV보다는 배터리로만 달릴 수 있는 거리는 훨씬 짧다. 최근에 나오는 BEV는 1회 충전으로 최대 5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모델도 있다.
PHEV는 순수 전기로는 1회 충전으로 길어야 60~80㎞ 정도를 달릴 수 있다. 배터리만 기준으로 보면 대략 10배 정도의 주행거리 차이다.
하지만 PHEV는 기름도 쓸 수 있다. 이건 HEV와 닮은 지점이다. 내연기관과 기름을 함께 활용하면 최대 주행거리는 700~800㎞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최대로 흡수한 건 HEV보다는 PHEV다. 실제로 HEV는 법적으로는 전기차에 포함되지 않는다. 친환경차 분류에만 포함된다.
PHEV를 요약하면 충전도 할 수 있고, 연비도 좋고, 기름이나 배터리만으로 달릴 수도 있는 만능차다. PHEV는 내연기관차와 BEV 중간에 있다기보다는 HEV와 PHEV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수 전기차에 더 가까운 혼종이다.
PHEV는 언뜻 보기엔 완벽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약점은 있다. 비싼 가격과 육중한 무게, 그리고 국내 기준으로는 보조금이 없다는 점이다. 두 개의 심장을 가졌고 배터리도 있으니 가격도 비싸고 무거워지는 건 일견 당연하다. 특히 전기차에 주어지는 보조금은 PHEV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2021년 정부의 보조금 중단 이후
현대차·기아 국내 판매량 ‘0대’
“한국 적합, 보조금 개선” 주장도
■ 한국은 PHEV의 무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국내 PHEV 판매량은 2021년부터 0대다. 다른 말로 하면, 2021년부터는 국내에서 팔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2015년 국내 시장에서 쏘나타 PHEV 모델을 내놨다. 기아는 2016년 국내에서 니로 PHEV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후 판매량은 저조했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PHEV 모델을 2015년 128대를 시작으로 2018년 214대까지 늘었다가 2020년 34대, 그리고 2021년부터는 0대를 판매했다. 기아는 2016년 20대를 시작으로 2018년 480대에 이어 2020년 200대 그리고 2021년부터는 판매를 중단했다. 역시 가장 많이 팔렸던 해는 현대차처럼 2018년이다. 결정타는 2021년 정부 정책이다. PHEV 보조금이 중단됐다. ‘울고 싶은데 빰 때려준 격’으로 판매량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조차도 폐지가 됐다.
하지만 해외 상황은 다르다. 현대차그룹의 PHEV 해외 판매량은 꾸준히 성장했다. 현대차는 2015년 해외에서 1185대 판매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4만5510대로 늘었다. 기아는 더 빠르게 성장했다. 기아는 2016년 2011대로 시작해서 지난해는 8만3587대를 판매했다. PHEV를 선호하지 않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과 보조금 중단이 맞물려 해외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PHEV는 좋게 얘기하면 BEV와 HEV의 이점을 다 이용해서 쓸 수 있지만, 뒤집어서 보면 어중간한 차로 볼 수도 있다”며 “특히 PHEV에 대한 보조금이 국내에서 중단되면서 소비자들 입장에선 이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유럽 다수 국가들은 배터리 용량으로 보조금을 책정해줬고, 그에 따라 PHEV가 보조금 대상이 됐다”며 “보조금 정책이 PHEV 생존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 PHEV 살아남을까, “보조금 개선돼야”
전문가들은 대세인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뤄지면 PHEV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 거라고 본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PHEV는 틈새시장으로 있을 수는 있지만, 대량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거나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륙이 큰 경우에는 PHEV는 훌륭한 BEV 대체재일 수 있다. 한국 교통 여건을 고려하면 PHEV가 국내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보조금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호근 대구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평일에는 도심에서 단거리 주행을 하고 가끔 장거리 지방 여행을 하는 한국 상황에는 PHEV가 더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용량이 큰 배터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건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는 과도한 배터리를 넣은 전기차의 친환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 중 하나다.
이 교수는 “서울 시내 운전자의 연평균 주행거리는 1만4000㎞ 정도다. 1년에 250~300일 정도 운행한다고 하면 많아야 하루에 50㎞를 주행한다”며 “PHEV를 매일 충전만 하면 100% 전기차처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보조금 등의 PHEV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PHEV 배터리 충전 용량이 2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전기로만 움직이도록 설정하게 규정하고, 충전량에 따라서 사후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안이다. 이 교수는 “한국전력과 협업을 해서 PHEV 운전자가 얼마나 충전했는지 사후에 측정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실제로 줄일 수 있고, 향후 생길 수 있는 폐배터리 처리 문제에도 선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작은 배터리로도 순수 전기차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PHEV에 사후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