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사금고 전락 불보듯
공정거래위원회가 18일 ‘내년 업무추진 계획’을 통해 일반 지주회사에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고, 대기업이 설립한 사모펀드(PEF)의 비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등 대기업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일반 지주회사가 비금융회사와 금융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도록 해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고 PEF를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지주회사의 금산분리 원칙마저 허물어지면 금융회사가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대기업 집단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이어 대기업이 PEF를 통해 기업을 자유롭게 인수할 수 있도록 하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제조사도 증권·보험사 소유 = 공정위는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를 대거 완화키로 하고,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법안을 내년 3월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만큼 제조업 지주회사의 금융계열사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K나 CJ 등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아직 금융자회사를 매각하지 않은 대기업과 두산과 동양, 한화, 코오롱, STX 등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는 기업들이 법개정의 혜택을 받게 된다. 지금은 지주회사 소속의 금융자회사를 최장 4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이처럼 제조업체가 금융회사를 거느리게 될 경우 금융회사의 자금을 제조업 경영에 동원할 우려가 있어 재벌의 사금고화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주회사 전체에 대한 사전·사후 감독장치가 없는 공정거래법상의 일반 지주회사에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할 경우 감독 소홀에 따른 금융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PEF로 기업인수 가능 =6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이 만든 PEF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15%)의 적용을 5년간 유예키로 했다. PEF가 기업을 인수해 경영권을 제한 없이 행사하며 몸값을 높여 되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 지주회사 소속 PEF도 소유지분율 요건(상장사 20%, 비상장사 40%), 비금융회사 소유금지, 출자단계 제한 등의 규제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공정위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실기업을 인수하는데 PEF가 적극 참여해 구조조정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경영권을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규제완화로 대기업들이 PEF를 통한 인수·합병(M&A)에 대거 나서면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10대 기업집단이 보유한 현금성 여유자산이 43조원에 이른다.
◇ 기업담합 허용 = 공정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감산, 생산설비 축소 등을 업계 공동으로 추진할 때는 한시적으로 담합 처벌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가격을 합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행법상 △산업합리화 △연구·기술 개발 △산업구조의 조정 △거래조건의 합리화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등을 이유로 기업들이 공동행위를 할 경우 공정위의 승인을 받아 시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