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유망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겼을까

정용인 기자

2010년 1월 한자리에 모인 5명의 스타트업 CEO는 제각기 다른 비전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길은 모두 달라졌다. 다시 5년 후,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놓여 있을까.
2010년 한국 스타트업의 유망주 5인의 지난 5년을 추적했다.

스타트업(start-up).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기업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이전 단계라는 점에서 벤처와는 차이가 있다.’

스타트업은 지난 대선 때 각광을 받았다. 여야의 대선주자는 앞다퉈 성공한 20~30대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났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어젠다인 창조경제의 핵심도 스타트업이다. ‘글로벌 K-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다음 세대의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탄생시킬 만한 잠재 역량을 지닌 나라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녹스 벤처캐피털의 설립자이자 CEO인 아니스 우자만의 책 <스타트업 성공학>에 실린 저자의 머리말 첫 문구다. 그런데 이 문단은 이렇게 마무리되어 있다. “한국의 제품과 기술은 일류수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기업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왜일까.

2014년 10월 14일 네오위즈 판교타워에서 열린 ‘글로벌 K-스타트업’ 시상식.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이 주최한 행사다. / 글로벌 K-스타트업 2015

2014년 10월 14일 네오위즈 판교타워에서 열린 ‘글로벌 K-스타트업’ 시상식.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이 주최한 행사다. / 글로벌 K-스타트업 2015

2007년 이매진컵 준우승 학생들 현재는

<주간경향>은 지난 2007년, 세계 대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인 ‘이매진컵’ 본선에 진출해 준우승한 세종대 동아리팀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이들이 개발한 것은 핑거코드라는 장비였다. 장갑 형태로 되어 있는 이 장비를 시청각장애인이 끼고 점자를 짚으면 다시 음성으로 변환되어 나오는 장치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약 8만원 정도의 비용과 PDA만 있으면 구현이 가능했다. 행사를 주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당시 회장도 “환상적(fantastic)”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7년은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다.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더 쉽게 구현 가능한 기술이다. 그로부터 8년. ‘핑거코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2007년 당시에 ‘화제’를 모았지만, 그 후 소식에 대한 보도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2009년께, 당시 개발팀장으로 활동했던 임찬규씨가 휴학을 하고 상업화에 전념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1년 중앙일보는 이렇게 그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3명은 취업했고 한 명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투자받기 위해 그동안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정부가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잠깐뿐이었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외려 ‘아이디어를 무상으로 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주간경향>은 핑거코드를 개발한 당시 세종대 학생을 만났다.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그때는… 그냥 아까웠죠. 무상으로 달라고 한 사람들이 괘씸하기도 했고. 그 아이디어 자체의 가치를 당시에는 돈으로 환산한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순수하게 이 아이디어는 내가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고.”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투자를 받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면 빌 게이츠 회장에게 ‘그때 그 학생’이라고 E메일이라도 한 통 쓰면 뭔가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기회를 그렇게 써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사업을 접을 당시 자신은 “너무 어렸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만뒀다”고 말했다. 현재도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주변에 자신의 과거 이력을 밝히진 않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아는 사람도 있지만 먼저 드러내고 싶진 않습니다. 그 후 몇 년을 살아보면서 그걸 말하는 게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높이 띄워준 후’의 일이 감당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도 언론에 소개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러나 뒷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가 스타트업이나 앙트프레너십(Entrepreneurship·기업가 정신)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지도 벌써 5~6년이 넘었다. 그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스타트업 전문미디어로 벤처스퀘어(대표 명승은)라는 인터넷 매체가 있다. 벤처스퀘어가 만들어질 당시인 2010년부터 연재 중인 ‘한국의 스타트업’이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서 초창기 소개된 1번부터 5번까지의 업체들의 ‘현재’를 찾아봤다. 연재의 1번으로 소개된 온오프믹스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다. 5번이었던 디바인인터랙티브 노장수 대표가 운영하던 ‘그라폴리오’는 네이버가 인수해서 현재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임원기 기자는 스타트업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임원기의 人터넷 人사이드’ 블로그도 유명하다. 임 기자의 블로그에는 현재까지 181명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소개되어 있다. “181명 모두 업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 몇 년이 흘렀으니…. 완전히 잠적한 사람도 많고, 연락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는 그 중에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케이스는 다양해요. 회사 팔고 이민 간 사람도 있고, 아예 업계를 떠난 분도 있고.” 임 기자의 말이다. 공교롭게도 벤처스퀘어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섯 사람은 모두 그가 당시 만난 사람들이다. “아, 기억나네요. 강원도로 MT를 갔습니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할 생각이었는데, 이 사람들을 한꺼번에 묶어 인터뷰를 해보자, 그래서 차를 나눠타고 강원도 산골의 펜션으로 1박2일을 갔습니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죠.” 그들의 ‘그 후 5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임 기자로부터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2012년 설립된 은행권 청년 창업재단 ‘디캠프’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입주기업을 선발하는 D.DAY 행사를 갖는다. 행사가 열린 1월 30일 저녁, 참가자들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디캠프 제공

2012년 설립된 은행권 청년 창업재단 ‘디캠프’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입주기업을 선발하는 D.DAY 행사를 갖는다. 행사가 열린 1월 30일 저녁, 참가자들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디캠프 제공

시련에 이은 시련, 파란만장한 인생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01년도 즈음 10대 창업자 CEO로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고등학생들이 모인 IT개발회사였다. 오래가진 못했다. 공동창업자들 사이가 벌어지며 문을 닫았다. “어린 조직이었죠.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봤어요.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고객이 찾아왔는데 계약서를 내미는 거예요. 제가 좀 보수적이라 꼼꼼히 계약서를 읽어보니 세 페이지인가 네 페이지인가 뒤에 계약의 조건으로 지분 50%를 갖는다는 대목이 있는 겁니다. 계약서를 꼼꼼히 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분의 절반이 넘어간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더 큰 시련은 두 번째 사업에서 찾아왔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당시 23살 청년이 같이 일하자고 양 대표를 찾아왔다. 그는 별 의심 없이 이 청년을 공동창업자로 맞이했다. 벤처캐피탈의 투자도 받았다. “투자 받은 돈이 1년도 안 돼서 없어진 겁니다. 그분 말로는 영업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는데 포르쉐를 타고 다녔고. 아마 회사 이름으로 리스를 받은 거겠죠?” 투자 받은 돈을 유용한 것이다. 끝내 사단이 났다. 그 20대 공동창업자는 구속되었다. 언론에는 그냥 이니셜로만 나갔다. “그분하고 헤어진 때가 2003년, 고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빚만 고스란히 제 앞으로 남았어요. 법적으로 미성년자라 면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비겁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떠안았습니다.” 6개월 동안 집에서 칩거하면서 보냈다. 블로그에 그때 느낀 것을 쓴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 여러 업체를 두루 거치다 ‘우연히’ 온오프믹스를 맡게 되었다.

당시 보도에서 ITH 대표로 소개된 김범섭 대표. 개인 페이스북을 보니 이전 직장이 그루폰코리아로 되어 있었다. 결국 스타트업은 접고 일반회사에 취직한 것일까. “접은 것은 맞습니다. 아직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하지는 않았고요.” 김범섭 드라마앤컴퍼니 창업자 겸 CTO(최고기술책임자)의 말이다. 2010년 인터뷰를 했던 그의 스타트업 아이템 ‘톡픽’ 역시 직후 접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쏟아냈던 김 대표는 스타트업을 위해서 여행사를 다니던 부인까지 일을 접게 했다. 한마디로 올인한 것이다. “서비스 운영한 경험이 없어서 결국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었죠. 그렇다고 완전히 안 된 것은 아니었어요. 일종의 기업용 솔루션으로 소셜 SNS를 활용하는 것인데, 그루폰코리아에 처음에는 외주개발 형태로 결합했다가 회사의 모든 직원이 그루폰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명함관리 서비스인 ‘리멤버’는 비교적 잘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20억원 유치에 성공해 숨통이 트였다. 그는 리멤버는 그가 영입한 최재호 대표에게 맡기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미숙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다른 회사 면접 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있는 자리였는 데도요. 분위기를 다잡으려고 직원들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들은 열심히 하자고요. 나중에 당시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서로 오해가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특정 생각을 하는 몇 명은 나가고, 남은 사람은 열심히 하자는 것이었는데 직원들은 ‘아, 회사가 정말 어려운가 보구나’고 모두 짐 싸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때 좋은 친구들을 놓친 건 지금 생각해도 아깝습니다.”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세계 대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인 ‘이매진컵’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세종대 엔샵 605팀. 빌 게이츠 회장도 호평한 이들이 개발한 ‘핑거코드’는 결국 상용화되지 못했다. / 경향신문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세계 대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인 ‘이매진컵’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세종대 엔샵 605팀. 빌 게이츠 회장도 호평한 이들이 개발한 ‘핑거코드’는 결국 상용화되지 못했다. / 경향신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5년 전 유망 아이템

업계 사람들은 당시 기사에서 네 번째로 언급된 사이러스 황룡 대표가 지금은 다 접고 ‘임베디드 하드웨어 사업’을 한다고 전했다. 기사에 소개된 서비스는 블레이어라는 음원관리 서비스다. 인디음악을 중심으로 대안적인 음원 유통사업을 비전으로 삼았다. 블레이어 역시 사라졌다. 기사를 찾아보면 페이스북 앱으로, 태국 쪽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는 2013년 황 대표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황 대표가 트위터에 남긴 다음 말이 인상적이다. “꿈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나의 노력과 능력이 비현실적인 것일 뿐.” 황 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냉정하게 보자면 물론 준비단계 때엔 제도적인 부분이 준비되면 수혜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음원 저작권에 대해 복수신탁제도가 시작되면 차별화된 서비스로 저작권자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작권자들도 그런 요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판단이 틀린 셈이었죠.” 황 대표가 사업을 접은 이유다. 현재 하는 일은 여성의 기초체온을 재서 가임기간을 알려주는 일. 기존에 온도계로 일일이 재는 것을 IOT를 활용해 스마트폰 등을 통해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앱을 개발하고 있다. “사실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아이디어나 기술을 이해할 수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맡고 있는 일입니다.” 그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운도 큰 작용을 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며 “지금 성공한 것으로 인정받는 기업들도 과거에는 지리멸렬하게 몇 년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홍보팀에 먼저 물어보고요.” 노장수 네이버 그라폴리오TF팀 팀장은 마감에 임박해야 연락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노 팀장이 다섯 명 중 가장 잘 풀린 케이스”라고 했다. 그라폴리오는 일러스트 작가와 팬을 연결시켜 주는 사이트. 아이디어를 처음 가진 것은 2008년께였다.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여러 방향으로 확장계획도 세웠다. 홍대앞에 오프라인으로 그라폴리오 카페도 열었다. 그라폴리오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웹에이전시를 병행하다, ‘하나로 집중해야겠다’고 올인했다. 위기가 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도 졌다. “음… 시장에 대한 판단이 너무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생이 많았습니다. 작가들과 관계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와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죠. 그래도 그만큼 빨리 봤기 때문에 오래 본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네이버에서 이쪽 시장에 눈을 돌리면서 결국 같이하게 된 이유가 된 것이고요.” 아무래도 스타트업으로 있을 때보다는 결정할 것이 줄어들어 편해졌다. “원래 이전부터 취미가 일이라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게다가 이제는 서비스만 고민하면 되잖아요.” 만약 지금 누가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면 그는 어떤 조언을 할까. “일단 제 경험에 비춰 이야기하면 당장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오래하라는 겁니다. 시장은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거든요. 버티는 데 장사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스타트업 업계 전문가들은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한 벤치마킹만 할 것이 아니라 한류 붐을 바탕으로 아시아권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2013년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한국의 스타트업 관계자들. / 글로벌 K-스타트업 2015

스타트업 업계 전문가들은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한 벤치마킹만 할 것이 아니라 한류 붐을 바탕으로 아시아권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2013년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한국의 스타트업 관계자들. / 글로벌 K-스타트업 2015

“단군 이래 최고로 창업하기 좋은 시기”

처음에 언급한 아니스 우자만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 왜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IT기업이 아직 안 나오는 걸까. 스타트업들에 멘토링, 공간제공 투자지원 등의 일을 하는 네오플라이의 권용길 센터장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해 대표적인 스타트업 투자회사인 Y콤비네이터로부터 투자유치를 받는 데 성공한 뷰티 큐레이션 커머스인 미미박스와 같은 기업이 그런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정을 받은 미미박스나 SNS 서비스 ‘빙글’을 만들어낸 문지원, 호창성 부부 케이스는 상당한 예외에 속한다. 계속되는 권 팀장의 말. “미국 진출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투자를 받으려면 실리콘밸리 내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야 하는데, ‘빙글’처럼 아예 인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영업으로 뚫고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실리콘밸리로 가는 것을 글로벌 진출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디캠프의 양석원 팀장이 자세히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적자원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제조업은 중국에 밀릴 것이 분명하고, 경쟁력을 가질 것은 ICT밖에 없다. 사실 우리끼리는 ‘요즘 1~2년 사이가 단군 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을 한다. 정부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인프라나 하드웨어적 환경도 좋다. 게다가 요즘에는 정말 아이디어만 좋다면 외국계 벤처투자자(VC)도 관심을 갖고 적극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생태계에 대해 말을 할 때도 실리콘밸리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다른 생태계 모델을 생각해볼 시점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시장의 경우도 한류의 어드밴티지가 어마어마하다. 글로벌 진출을 생각한다고 꼭 유럽이나 북미시장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의 SNS 시장 규모도 만만치 않다. 시선을 돌려 헤비급이 아니라 플라이급에서 챔피언이 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한국 사회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어온 말이다. 근본적으로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더더욱 절실한 문제다. 2010년 1월, 강원도 산골 펜션의 MT 자리에 모인 5명의 스타트업 CEO는 제 각기 다른 비전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들 각자의 길은 모두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장’을 떠나진 않고 있다. 다시 5년 후,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놓여 있을까. 이들이 이야기하는 ‘스타트업 정신’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을까. 아니면 2000년 벤처열풍에 이은 또 한 번의 거품으로, 희망고문으로 기록하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혁신과 정체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트윗온에어가 사라진 이유는

2010년 당시 두 번째 스타트업 창업자로 소개된 아이쿠의 김호근 대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트윗온에어. 실시간 인터넷 중계서비스다. 역시 사라졌다. 김 대표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업들의 도메인 주소는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엉뚱한 외국 건강기능식품 사이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은 김 대표를 두고 “스타트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트윗온에어’는 KT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았다. “최소 3년 동안은 같이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사업규모를 늘렸다. ‘올레온에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조인트 벤처 이야기도 하다가 우리의 기술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직원이 20명까지 되었습니다. 영상운영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 미디어촬영 인력도 뽑았습니다. 그러다 붕 떴어요. KT에서 하는 광고를 보면 ‘상생’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대놓고 뒤통수를 맞은 것이죠.” KT 측은 소프트뱅크 쪽과 손을 잡고 거의 비슷한 외국 서비스인 유스트림 쪽과 계약을 맺었다.

김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대기업의 ‘갑질’이다. “후유증이 1년 갔습니다. 그때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결국 내 손으로 다 내보냈으니… 플랜B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KT 쪽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라이선스 비용을 포함해서 적자가 엄청날 것입니다. 1년에 수백억씩 적자가 날 텐데, 사실 그건 우리 쪽으로 했어도 마찬가지였겠죠.” 김 대표에 따르면 이석채 회장이 물러나면서 당시 사업을 담당했던 임원들도 지금은 모두 물러났다. 지난해 12월 KT 측은 ‘적자를 벗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유스트림 사업 청산을 발표했다. KT 관계자는 “확인해보니 당시 결정에 관여한 사람 대부분은 퇴사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추진하던 유스트림 사업과 중복된 영역이어서 사업적 판단으로 했던 선택”이라며 “해당 업체에는 올레온에어 이후에도 다른 사업을 제안했는데 안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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