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태’ 여파로 본 국내 프랜차이즈의 현실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가 대표로 있던 프랜차이즈 ‘아오리라멘’의 한 가맹점은 이른바 ‘버닝썬 사태’ 이후 손님이 절반 넘게 줄었다. ‘승리 라면’이라는 인기는 승리가 성접대 알선과 경찰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자 오히려 족쇄가 됐다. 주요 손님층인 학생·여성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점주 ㄱ씨는 3억원을 투자해 가맹점을 연 지 1년도 안됐지만 폐업을 고민 중이라며 “눈앞이 캄캄하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가맹본부인 아오리에프앤비에 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등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다른 매장에서 소송을 하면 같이할 마음은 있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오리라멘 가맹점들은 승리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며 매출 급감을 겪고 있다. 승리는 지난 1월 가맹본부 대표직에서 사임했으나 ‘오너 리스크’ 현실화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가맹점들의 몫이 됐다. 가맹점들이 가맹본부를 상대로 한 대응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배경에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현실이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국내외 총 50개인 아오리라멘 가맹점들 사이에는 ‘점주협의회’가 없다. 가맹사업법에 따르면 가맹점주는 권익 보호와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점주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다. 임원이나 가맹본부의 잘못으로 가맹점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점주협의회를 통해 조직적으로 협의를 요구하거나 법적 대응을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체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가맹점주협의회 구성률은 1% 남짓에 불과하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파악한 전국 6052개의 가맹브랜드 중 60~70개에만 점주협의회가 구성된 것으로 관련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달리 점주협의회는 가맹본부와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여서 점주들의 단결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점주협의회 조직 시도를 무마하려는 가맹본부의 ‘갑질’ 문제도 있다.
아오리라멘 가맹점주들이 협의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가맹본부가 이달 1차 보상안을 제시하고 추가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어서 보상절차를 기다리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성추행 문제로 오너 리스크가 발생한 뒤 가맹본부가 제시한 자체 보상안이 미흡하자 가맹점들이 점주협의회를 구성한 바 있다.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의장은 “문제가 생기면 가맹본부가 ‘안 그래도 회사가 어렵다’는 논리로 접근해 점주협의회 구성이 쉽지 않다”면서 “아오리라멘 가맹점들은 지금이라도 점주협의회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맹점주협의회가 꾸려져도 가맹본부와의 협의를 사실상 어렵게 하는 법조항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가 협의를 요청받으면 성실히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가맹본부가 점주협의회의 협의 요구에 의무적으로 응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가맹본부가 이러한 조항을 근거로 협의에 임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자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에 불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2016~2018년 더불어민주당 전해철·김병욱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이 이런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부터 표준가맹계약서에 오너 리스크에 따른 가맹본부의 배상 책임을 기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올해 이전에 가맹계약을 맺은 아오리라멘 가맹점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가맹점주들이 협의회 구성권과 교섭권 등 이른바 ‘가맹2권’을 노동3권처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불매운동 피해로 점주나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관점도 우리 사회에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