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솝니다. 소예요. 친구 소 299마리와 함께 오늘 풀밭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10월말까지, 5개월 동안 대관령 초지의 신선한 풀을 뜯어먹으면서 자유롭게 한 번 살아보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관리하는 강원도 평창의 한우연구소랍니다. 축산과학원이 한우를 연구하기 위해 저와 친구들을 키우고 있는 곳이지요.
“정말로 먼지나게 뛰었습니다. 얼마나 풀밭이 그리웠던지….”
오늘(22일) 오전 10시30분 연구소 우사(牛舍)에서 풀밭으로 난 도로에서는 저와 제 친구 등 소 300마리가 펼치는 경주가 펼쳐졌지요. 정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저희들의 ‘생활계획표’를 공개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앞으로 살아갈 곳은 260㏊에 이르는 광활한 초지인데요, 이 초지는 모두 50여개 구역으로 구분돼 있어요. 저희들은 평균 6㏊에 이르는 풀밭을 놀이터로 삼아 2∼3일 동안 지내다가 옆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냥 풀을 뜯어먹고, 싸고 노는 게 일과라는 얘기죠.
부럽다고요?
너무 부러워들 하지 마세요. 지난 7개월동안 저희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는지 모르실 겁니다.
한우연구소에서는 저희들을 풀밭에 풀어놓는 것을 방목이라고 하는데, 그 앞에 ‘친환경’이나 ‘동물복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고는 하지요.
하지만, 연구소 쪽에서도 노동력 투입을 줄이고, 사료비 부담을 낮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겁니다. 저희들의 입장에서 보면 방목이 ‘친인간’, ‘인간복지’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아이구, 이런 얘기는 좀 쑥스러운데, 저희들이 최상의 목초를 먹으면서 적절한 운동을 하고 매일 일광욕을 하면, 번식률이 15%나 올라간다고 하네요. 방목이 번식용 암소에 효과적이라나 뭐라나….
앞으로는 풀좀 실컷 먹고 살아보겠습니다. 어른 소인 저의 몸무게가 500㎏쯤 되는데, 하루에 60∼70㎏의 풀은 먹어야 합니다. 풀만 충분히 먹었다고 하면, 배합사료같은 것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요거는 연구소 박사님에게 들은 얘긴데요, 방목을 하면 암소를 키우는데 드는 사료비를 68%나 아낄 수 있다고 하네요. 사료비는 사람들이 소를 키울 때 드는 비용(생산비)의 절반(46% 이상)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알 수 있겠지요. 게다가 저희들을 방목하면 대한민국의 산지 이용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이래저래 저희들은 ‘사람 좋은 일’만 하고 삽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저희들을 볼 때 ‘마블링’만 따지는 버릇은 좀 버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그럼, 풀밭에 가서 한 바탕 뛰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