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1개월을 넘어섰지만 사그라들 기미 없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맥주부터 의류, 여행은 물론 외식업계까지 일제 불매운동의 불똥이 튀면서 시장 판도에도 지각변동이 감지되는 모습이다. 한·일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일제 불매는 앞으로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개연성도 높아 보인다.
■일본 맥주 편의점 매출 ‘반토막’ 이자카야서는 “이런 데 와도 돼?”
유통업계 국산 대체 늘어
1일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31일까지 전체 맥주 매출은 전달 대비 1.4% 오른 반면 일본 맥주 매출은 33% 떨어졌다. GS25에서도 지난달 1일부터 30일까지 일본 맥주 매출은 전년 대비 40.1%나 떨어졌다.
일제 불매운동은 일본풍 식당이나 프랜차이즈를 운영해온 소상공인들에게도 타격을 미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49)은 “휴가철을 감안해도 손님들이 크게 줄었는데, ‘이런 데 와도 되냐’며 들어오시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며 “술 매출이 중요한데, 일본 술을 마시지 않는 고객들이 늘면서 객단가 및 매출이 크게 하락했다”고 말했다.
한동안 ‘모찌롤’ ‘오코노미야키’ 등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쓴 신상품들을 쏟아내던 제조업계 역시 일본풍 신상품 개발 및 소싱을 자중하는 분위기다. 일본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성향이 강한 기업일수록 타격을 크게 입고 있다.
국내 1위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자리를 지켜온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 이야기를 모아보면 지난 한 달간 최소 20~30% 매출이 떨어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노노재팬’ 사이트 등 국산 대체 소비를 권장하는 움직임은 적극적이다. 이런 덕분에 같은 기간 SPA 브랜드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 주가는 최근 약 28% 상승하기도 했다.
소비자들 중에는 국산 제품에 들어간 원자재가 일본산인지 확인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식음료의 경우 한동안 잊혀진 듯하던 방사능 문제가 다시 주목받아 일본산 원재료 가려내기 추세가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45’나 ‘49’로 시작하는 일본산 제품의 바코드 정보까지 온라인으로 공유하며 ‘일제 가려내기’에 혈안이 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매가 장기화될 경우) 다음 시즌 생산 계획, 재고 관리 등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한다”며 “영향권에 있는 기업들의 체감은 언론에 거론된 수치의 몇배는 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여행 7월 예약 70% 줄어여행사 중국·동남아 상품 확대
저가항공 대체 노선 개발
반일 감정에 더해 방사능 문제까지 재거론되며 ‘일본 여행 안 가기’가 소비자들의 주요 행동지침으로 떠올랐다. 한국 여행객이 특히 일본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는 지적까지 나와서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불매운동이 본격화한 지난달 16일부터 30일까지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에 다녀온 승객은 총 46만7249명으로 전달 대비(53만9660명) 13.4% 감소했다.
이미 예약을 해둔 경우 취소수수료 부담 때문에 여행을 강행했지만, 앞으로 일본 여행 기피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1·2위 업체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는 7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70%가량 급감했다.
일본 노선에 주력해온 저비용항공사(LCC)들은 급히 대처에 나섰다. 티웨이항공은 지난달 24일부터 주 3회 운항하던 무안~오이타 노선 중단을 시작으로 부산~오이타, 대구~구마모토, 부산~시가 등 3개 노선 운항도 잠정 중단할 계획이다.
업계는 일본에서 ‘빠진’ 수요를 다른 노선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1일 제주항공은 8월 한 달간 김포~제주 노선의 운항 횟수를 260편 늘리고, 무안~제주 노선 22편을 임시 운항한다고 밝혔다. 전체 노선 가운데 일본 노선 비중이 35%에 달했던 이스타항공은 인천~상하이 노선을 주 7회 운항하고, 정저우 등 타 노선 취항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행업계도 일본 대신 동남아, 중국 등 패키지 프로모션을 늘리면서 추세에 대응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여행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동남아나 인근 휴양지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어 해당 상품 프로모션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일본이 아닌 새로운 국가나 국내 여행지에서 좋은 경험을 한 관광객들이 늘면 장기적으로도 일본 관광 비중이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머잖아 외교 노력으로 수습되더라도, 이번 불매운동의 골은 이전보다 더 깊고 길어질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