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급성장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입점업체(판매자) 상대 ‘갑질’을 막기 위해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특별법’ 마련에 나선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거래를 기존 법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이 판매자와 공동 책임지도록 하는 법 개정도 추진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5일 이러한 내용을 핵심으로 한 ‘온라인 플랫폼 불공정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6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행 법 체계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영세한 입점업체를 상대로 부당하고 불공정한 수수료를 받는다면 불공정약관이나 불공정 행위로 규제할 수 없는지 살펴보라”고 공정위에 지시한 바 있다.
■기존 법 한계…온라인 플랫폼 특별법 제정
공정위는 내년 상반기까지 가칭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의 입점업체 상대 불공정거래 행위를 사후에 규제하는 심사지침 마련을 넘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령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도 정부가 새로운 법 제정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판매자의 플랫폼 거래 의존도는 커지고, 그 과정에서 플랫폼이 ‘갑’의 위치에서 ‘을’인 입점 판매자에게 비용 전가 등 불공정거래를 할 수 있다.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 입점업체의 40% 가량이 불공정거래를 경험했다.
기존의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불공정거래를 규율하기 어려웠다. 소비자와 판매자 양자간 전통적 거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플랫폼 거래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플랫폼과 입점업체간 갑을 관계를 규정하기 쉽지 않고, 대규모유통업법은 납품받은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소매업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판매 행위가 없는 플랫폼을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계약서 작성과 교부 등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분쟁 예방을 위한 절차와 신속한 분쟁 해결을 돕는 규정이 없다”며 “플랫폼과 입점업체의 자발적 상생협력과 신속한 분쟁해결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별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플랫폼 분야가 성장하는 초기 단계에 거래질서를 바로 잡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이 새로운 규제가 아닌 공정거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송 국장은 “대표적인 신성장 분야이자 혁신산업인 플랫폼 시장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법 제정 과정에서 업계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며 균형감 있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피해시 플랫폼 업체도 연대책임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거래상 책임도 강화된다.
공정위는 올해 12월까지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 “온라인 플랫폼이 소비자 보호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법적 책임을 확대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는 온라인 플랫폼이 거래상 발생한 소비자 손해에 대해 입점업체와 연대 책임지는 조항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기존에 온라인 플랫폼들은 스스로를 ‘거래 중개자’로 한정하며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발생한 거래상 문제에 책임을 회피해왔다. 국내 1위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은 이러한 약관 조항을 운영했다가 공정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온라인 플랫폼간 인수·합병(M&A) 등 기업결합을 심사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도 올해 12월까지 이뤄진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취득 대상 회사의 자산총액과 매출액 등 ‘규모’를 기준으로 기업결합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데, 기존의 플랫폼 기업들은 규모가 작아 신고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표적으로 2012년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는 인수액이 1조1000억원에 달하는 등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컸지만 신고 의무가 없어 기업결합 심사를 받지 않았다.
공정위는 “규모 기준만으로 기업결합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현행 규정은 거대 플랫폼이 강소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독점화 시도를 사전에 인지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거래 금액을 기준으로 하고, 국내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활동할 경우 자산 총액과 매출액 기준에 미달해도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으로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쇼핑몰 ‘비용 전가’ 차단
공정위는 올해 12월까지 대형 온라인쇼핑몰의 납품업체 상대 비용 전가 등 갑질을 규율하기 위한 별도의 심사지침을 마련한다. 지침 적용 대상은 납품업체로부터 상품을 받아 자신의 명의로 판매하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유통업법상 소매업체로, 롯데닷컴·현대H몰·SSG.COM·CJ몰·쿠팡·마켓컬리 등이 해당된다.
공정위는 오프라인 거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대규모유통업법 조항만으로는 대형 온라인쇼핑몰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온라인상 할인 판매를 위한 비용을 광고비나 서버비 등 명목으로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권순국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온라인 거래의 특성에 맞게끔 심사지침을 만들 것”이라며 “비대면 거래 활성화에 따른 새로운 법위반 유형을 지침에 규정해 납품업체를 보호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