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징벌적 손배 도입
법원 소송 허가해야 재판 시작
집단소송 남발 가능성 줄여줘
“활성화 땐 과징금 등 없애면 돼”
징벌적 손배는 산정액 높지 않아
일부 피해자의 소송 결과로 모든 피해자를 구제하는 ‘집단소송제’와 손해배상 책임을 피해액의 5배까지 높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전면 도입 방안을 두고 재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소송 남발과 형사·행정·민사상 ‘3중 처벌’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하도급 등 일부 분야에 사전 도입된 두 제도의 시행 실태 등을 감안하면 재계 우려는 과도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9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모든 분야에 전면 도입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는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로 확대된다.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사건,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 펀드사기 사건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들을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강화해 악질적 위법행위를 억제하는 수단들로 평가된다.
재계는 소송 남발을 우려한다. 증권분야 집단소송제와 달리 피해자 측의 변호사 선임 의무가 없어지고 선임 요건이 완화돼 소송 문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면 전체 피해액을 산정하고 그에 따른 소송 인지액과 공고 비용 등을 내야 해 부담이 작지 않다”며 “통상 수년이 걸리고 승소도 불확실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소송을 허가해야 재판이 시작되는 절차는 집단소송 남발 가능성을 줄이는 장치다. 재계는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에 불복(항고)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문제제기한다. 그러나 불복 절차는 소송을 장기간 지연시켜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실제 증권분야에서 기업이 불복했던 ‘집단소송 허가’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평균 4년3개월이 걸렸다. 이러한 부담 등으로 증권분야 집단소송은 2005년 도입 후 지금까지 총 10건(연평균 0.6건)만 제기됐다.
기업들은 형사처벌과 행정제재에 민사 책임까지 강화돼 ‘3중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피해액의 최대 5배’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그러나 앞서 하도급 분야 등에서 ‘피해액의 최대 3배’로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례들을 보면, 손해배상 규모는 피해액의 1.1~1.64배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기업은 위법행위가 더 이득이라고 판단할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위법행위의 고의성과 중대성, 형사처벌 이력 등을 종합해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만큼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과도하게 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집단소송에 ‘증거개시(조사) 제도’가 도입되고 기업들의 자료제출 의무가 강화되는 것을 두고 재계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 입증 책임도 완화돼 부당하다고 반발한다. 김주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은 “지금까지는 가해 기업이 증거를 다 갖고 있는데도 피해자들이 피해 입증 책임을 져야 했다”며 “자료제출 의무 강화는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라고 말했다. ‘법원이 영업비밀 열람 가능 대상과 범위를 지정한다’는 법안 내용을 감안하면 영업비밀 유출 우려는 크지 않다.
향후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정착되면 ‘중복 처벌’로 비칠 수 있는 행정제재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명한석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 사후 구제가 활성화되면 사전 규제 성격의 과징금 부과 등은 없애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