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배터리 분리막 필름을 ‘옷감’으로…“환경 이슈, 생활 속에서 인식돼야”

정환보 기자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가 서울 중구 본사에서 의류 디자인 도안을 살펴보고 있다. 라잇루트·현대차정몽구재단 제공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가 서울 중구 본사에서 의류 디자인 도안을 살펴보고 있다. 라잇루트·현대차정몽구재단 제공

버려지는 양 엄청나단 말에
순식간에 아이디어 떠올라
고어텍스 소재와 비슷한데
가격은 30분의 1 수준
실제 양산은 하반기쯤 될 듯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2차전지(배터리) 제조기업들의 주가가 훌쩍 뛰었다. 당시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지자 ‘수혜주’로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상승 랠리를 탔다. 바이든 후보는 향후 2조달러를 청정에너지 관련 산업에 쏟아붓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세웠다.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직후 내놓은 첫 마디도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한국 정부도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향후 배터리 관련 소재·부품·장비 업종의 시장 전망은 매우 밝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탄소중립 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배터리 산업은 필수불가결한 산업이다.

문제는 이처럼 친환경적이라고 인식되는 배터리 산업에서조차 제조공정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이나 생산과정에서 양산되는 부산물들의 문제로 인해 반환경적인 ‘그림자’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에너지 문제는 다른 제조업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되는 전기가 많아지면 점차 해결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배터리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소재로 쓰이는 각종 금속류와 플라스틱 등 폐기물 문제는 앞으로 업계가 해결해야 할 무거운 숙제다.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젊은 사회적 기업가가 있다. 패션 관련 스타트업 ‘라잇루트’의 신민정 대표(31)가 주인공이다.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가운데 그가 주목한 것은 분리막이다. 폴리올레핀이 주성분인 분리막 필름은 공기가 잘 통하고 방수성이 뛰어난 ‘고어텍스’와 소재적인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 라잇루트는 폐분리막의 이 같은 성질을 활용해 ‘고기능성 옷감’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아이템으로 지난해 환경부와 SK이노베이션이 주최한 ‘환경 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성장지원금 2억원을 탔다. 신 대표가 실천하는 ‘탄소중립’ 이야기를 지난달 31일 화상 인터뷰로 들어봤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우연한 기회에 배터리 분리막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대표로부터 버려지는 제품량이 엄청나다는 말을 들었다. 그 회사 한 곳에서 버리는 양만 해도 한 달에 축구장 열세 개 정도인 100만㎡나 된다더라. 분리막은 얇은 필름 형태인데 미세한 스크래치만 있어도 납품이 불가능하고, 또 수급이 일정치 않아 멀쩡해도 버려지는 폐기물이 많다고 한다. 버릴 수 있는 양도 제한돼 일부는 헐값에 중국 등지로 수출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돼 계속 쌓아두고만 있는 형편이라기에 사업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 환경운동 차원은 아니었다는 말인데.

“느닷없이 ‘친환경’을 사업 아이템으로 찾은 건 아니다. 기후위기나 탄소중립 등 환경 이슈가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실생활에서 인식이 안 되면 와닿지 않는다. 젊은 디자이너를 양성하고 의류도 제작하는 사업체인 라잇루트를 2016년부터 시작했는데, 5년 넘게 업계에 있어 보니 버려지는 옷감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번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잉여 원단만으로 의류와 잡화 등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는데 그건 또 다른 문제더라. 자투리 원단을 일일이 수거하고 선별하고 재처리하는 데에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걸 직접 경험했다. 더 크게 뭔가 환경친화적인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배터리 분리막 얘기를 들었다.”

- 제품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 200개 이상의 옷감을 다뤄봐서 원단과 소재에 대한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꽤 쌓였기 때문이다. 잉여 원단 프로젝트에서 업사이클링으로 인한 비용 증가의 문제를 겪은 터여서, 특별한 가공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분리막 필름은 사업성이 좋을 것으로 봤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옷감으로 만드나.

“쉽게 말하면 양모 같은 기성 옷감에 분리막을 붙이고 안감을 덧대는 형태다. 배터리에서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을 완벽히 분리하면서도 리튬이온을 통과시켜야 하기에 무수히 많은 초미세 구멍이 존재한다. 통기성과 방수성을 동시에 갖춘 고어텍스와 비슷한 구조다. 근데 가격은 30분의 1 수준이다. 다만 옷감을 만들려면 접착제에 열을 가해 붙여야 하는데, 분리막 소재인 폴리올레핀은 고온에서 일반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지는 경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거기에 딱 맞는 열과 압력 등을 실험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

- 사업 아이템을 빼앗길 걱정은 없나.

“핵심 콘셉트는 6개월 전에 특허출원을 해놓았고, 추가로 출원을 준비 중이다. 물성 검사나 유해성 실험에서도 괜찮은 결과가 나와 하반기쯤에는 본격적으로 소재 양산이 가능할 것 같다.”

- 탄소중립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나.

“옷은 결국엔 쓰레기가 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거기에 고기능성 친환경 제품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 패션업계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에 걸릴 텐데, 싸게 사서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은 사실 환경 문제의 주범이다. 패션산업도 이제는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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