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 '착한 임대인? 난 몰라'읽음

김태훈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7월 13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SH 공공주택 자산 분석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임대주택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7월 13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SH 공공주택 자산 분석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임대주택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는 다른 단지와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럼 임대료 인상 동결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GH(경기주택도시공사)와 달리 왜 서울 사는 주민들만 인상을 감내해야 하는 건가요?”

서울 송파구에 있는 SH공사 장기전세주택에 살고 있는 박지선씨(36)는 최근 공사로부터 재계약 안내문을 받고 당황했다. 2년 전 재계약 때보다 3배나 많은 전세 보증금 인상액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재계약까지 박씨를 비롯한 이 아파트단지 장기전세 입주민들은 전체 보증금의 5%인 1600만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SH공사가 규정상 인상 가능한 최대치까지 전세 보증금을 올려받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장기전세주택은 전세 보증금을 주변시세의 80% 이하로 책정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게 한 공공임대주택이다. 그런데 최근의 집값 및 전세 보증금이 급등한 여파가 공공임대주택에도 미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SH공사가 보다 영세한 입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임대주택 형태인 영구임대나 국민임대 등에는 임대료 인상을 동결했으나, 장기전세 보증금만은 ‘주변시세 80%’라는 정책방향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인상한 것이다.

■‘주변시세의 80% 내’ 최대한 적용

그러나 주민들은 SH공사의 다른 임대주택은 물론 LH 등 다른 임대주택 공급주체와의 형평성을 들어 보증금 인상폭을 낮춰 달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임차인들을 위한 ‘착한 임대인’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실제 공공임대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임대주체들은 임대료 인상을 동결하고 있지만 유독 SH공사만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SH공사 측은 ‘서울특별시 장기전세주택 공급 및 관리 규칙’을 들어 보증금 인상액 조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주민들의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규정에 따라 계약을 시행할 수밖에 없어 다른 방안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대보증금 인상의 근거가 된 ‘서울특별시 장기전세주택 공급 및 관리 규칙’ 제11조는 SH공사가 전세가격과 재계약 시 보증금 증액분을 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규칙에도 전세가격 범위를 ‘주변시세의 80% 내’라고만 명시하고 있을 뿐 80%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게다가 해당 규칙이 2013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어 지난해 통과된 ‘임대차 3법’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전월세상한제에 따라 5% 넘는 임대보증금은 인상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 규칙은 최대 20%까지 임대보증금 인상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정진철 서울시의회 의원은 “서울시와 서울시 공기업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공공상가 임차 소상공인의 임대료 50% 감면계획을 4차례나 실시했다”며 “장기전세 입주민에게도 형평에 맞게 한시적으로 인상유예를 적용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H공사가 장기전세 보증금을 인상하는 등 공공주택사업에서 보다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선 데에는 적자사업이라는 인식을 탈피하자는 속내가 깔려 있다. 그러나 SH공사 보유 장기전세주택 자산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공주택사업이 적자사업으로 비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세보다 장부상의 주택 가치를 낮게 잡아놓은 탓에 적자폭도 더 크게 계상되면서 적극적인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7월과 월 두차례에 걸쳐 SH공사 장기전세주택 취득가와 장부가를 비교 분석한 자료를 보면 장기전세주택 3만2964세대의 실거래 가격은 33조6554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SH공사가 평가한 장부가액은 이보다 26조원이나 낮은 7조4718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세에 따른 실제 재산 가치보다 26조원가량 저평가된 것이다. 토지 가치 상승은 반영하지 않고, 건물 감가상각만 반영한 탓에 14년 전보다 오히려 가치가 하락한 아파트단지도 있었다.

2007년 처음 공급된 장기전세주택 취득가는 발산2단지(전용 59㎡)가 1억1000만원, 장지10단지(전용 59㎡)가 1억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SH가 반영해놓은 장부가는 취득가보다 더 낮아져 발산2단지는 8000만원, 장지10단지는 1억2000만원으로 하락한 것으로 평가돼 있다. 14년이 지난 현재 시세가 각각 7억8000만원, 12억5000만원으로 취득가 대비 7~8배 정도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다.

■경실련 “서민 주거안정 기여해야”

SH공사가 장부가를 최초 취득가에서 연한 경과에 따른 감가상각만을 반영해 낮게 평가했음에도 실제 임대를 할 때는 주변시세를 적용해 임대보증금을 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임대보증금으로 장부상의 주택을 몇채나 살 수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장지지구 전용 59㎡ 주택의 보증금은 2007년 1억1000만원에서 2021년 8월에는 4억5000만원으로 4배 상승해 현재 장부가액의 4배 가까운 액수로 훌쩍 뛰었다. 경실련은 “장기전세주택은 사업 초기 시세의 50~60%로도 공급했던 만큼 전세가격을 더 낮춰 서민 주거안정에 지속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며 “장기공공주택 확대는 서울시에도 집값 안정과 자산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공공주택 사업”이라고 밝혔다.

9월 27일까지 신청접수하는 제40차 장기전세주택 모집에서는 SH공사가 이전과 달리 예비입주자 모집 방식을 도입해 일각에서는 ‘공급 부풀리기’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신규공급단지를 제외한 기존 임대주택 중 공가가 발생해 모집하는 입주세대는 218세대에 불과하지만, 예비입주자로만 1317세대를 추가 모집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들 주택에 입주 대기 중인 예비자 세대도 362세대가 있고, 예비입주자로 선정되더라도 1년 안에 공가가 나오지 않아 입주하지 못하면 예비입주 자격은 사라진다. 여기에 최장 20년에 달하는 전세기간을 고려하면 예비입주자에게 돌아갈 공가를 기대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SH공사 관계자는 “그간의 공가 발생 비율을 통계적으로 검토해 예비입주자 수를 산정했다”며 “공가가 나왔을 때 신속하게 입주시키기 위한 대책일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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