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사라진 어촌…오징어 풍년에도 고깃배는 뜰 수 없었다

윤지원 기자

어업, 작동이 멈추다

코로나19로 각국이 문을 걸어 잠근 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19는 여행자들의 이동만 가로막은 게 아니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노동력도 올스톱됐다.

특히 어업·농업 등 1차 산업은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해 외국인 인력고용 관리 제도(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는 총 6480명인데 이는 전년 대비 87% 급감한 수치다.

외국인 노동력에 기대 연명해온 기간산업 곳곳에선 조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전염병 시대, 외국인 노동자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국내 1차 산업의 취약한 구조를 드러낸 것이다.

피해가 막심한 산업 분야 중에는 어업이 있다. 어업은 외국인도 기피할 만큼 노동시장 피라미드 맨 하단에 위치한 산업이다.

육지 제조업에서 몸값을 높게 불러 어업 외국인 노동자를 빼가고, 외국인들도 불법노동자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어촌 이탈 행렬에 가담한다.

인력난에 폐업하는 어민도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어촌에 남긴 상흔이다. 어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부재하다.

경향신문은 총 3회에 걸쳐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바다에 남겨진 사람들을 조명한다.


부산 어민 박형준(가명)씨 9.77톤급 통발 어선. 박씨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통상 내국인 5명, 외국인 2명을 데리고 겨울엔 대게, 가을에는 오징어, 문어를 낚았다. 현재는 외국인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인력이 부족해 조업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박형준씨 제공

부산 어민 박형준(가명)씨 9.77톤급 통발 어선. 박씨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통상 내국인 5명, 외국인 2명을 데리고 겨울엔 대게, 가을에는 오징어, 문어를 낚았다. 현재는 외국인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인력이 부족해 조업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박형준씨 제공

어업 고용허가 인원 160명만 입국
만성적 일손 부족 낯설지 않지만
어민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9.77t급 통발 어선을 보유한 부산 어민 박형준씨(가명)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내국인 선원 5명, 외국인 선원 2명을 데리고 겨울엔 대게, 가을에는 오징어, 문어를 낚았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신청한 외국인 수급이 기약 없이 끊기면서 현재는 인도네시아 국적 외국인 1명과 내국인 4명만 데리고 있다. 박씨는 “최소 8명이 있어야 바다에 나가 미끼를 갈고, 낚은 고기를 선별하고 적재하는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현재는 사람이 없어 1명이 2·3역을 맡다 보니 내국인들도 힘들다고 배를 안 타려 한다”고 말했다.

어촌의 일손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령화와 어가인구 감소로 지역소멸이 가속화한 어촌에서 고기를 잡거나 양식장을 돌보는 인력은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정부가 1차 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이래 어업 분야의 부족한 일손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워왔다. 2019년 해양수산업 통계조사를 보면 수산물생산업 전체 종사자 45만7527명 중 내국인은 83%인 37만8909명, 외국인은 17%인 7만8618명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의 체감 비중은 이보다 훨씬 크다. 올 3월 기준 전남 완도군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부자료를 보면 수산 분야에 종사하는 총 2962명 중 내국인은 771명, 외국인은 2191명으로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74%에 달했다. 전국 김 생산의 15%가량을 차지하는 완도는 외국인 없이는 어업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간 어민들은 만성적 일손 부족에 대처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해뒀다. 어선원과 가공업이 서로 외국인 인력을 빌리거나, 여러 어선이 공동조업에 나서는 식으로 인력난을 해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불러온 인력난에 그간의 노하우는 무용지물이다. 외국인 입국이 끊기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일손이 부족해졌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허가제로 입국이 예정된 어업 분야 배정 인원 3000여명 중 입국자는 247명에 그쳤다. 올해는 더 심각하다. 고용허가제 배정 인원 3000명 가운데 26일 기준 신규 입국자는 단 160명(5.3%)에 그쳤다. 한 어민은 인터뷰에서 “죽일 놈의 코로나19가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바다①]외국인 노동자 사라진 어촌…오징어 풍년에도 고깃배는 뜰 수 없었다

■오징어 풍년인데 어민은 조업 줄였다

조업일수 줄여 버티고 있는 어촌
작년 어획량 1994년 이후 첫 감소

내국인 일일 근로자는 구하기도 어렵고, 하루 30만원까지 인건비가 오른 탓에 쓰기도 쉽지 않다. 박씨는 “멀미를 안 하고 로프 등을 다룰 수 있는 최소 승선 조건이 충족되는 내국인 수가 몇명 안 되기 때문에 각 어선에서 이들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결국 박씨가 선택한 것은 손해를 감수하고 조업 규모를 절반 이상 대폭 줄이는 것이었다. 그는 “출항을 월 10번에서 5번으로 줄이면서 수입이 크게 감소했다. 코로나19 전 매출이 8억원이었는데 지난해는 2억7000만원밖에 벌지 못했다”며 “올여름엔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늘어 업황도 좋은데 조업을 줄일 수밖에 없어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어업경영조사를 보면 지난해 정치망어업의 조업 일수는 출어 횟수(-3.6%), 출어 일수(-3.2%)뿐만 아니라 어획과 관계없이 어구 등을 해중에 투입하는 어로 일수(-13.3%)까지 모두 줄었다. 어획량은 26.2% 감소했다. 출어와 어로 일수가 모두 줄면서 어획량이 20% 이상 감소한 것은 1994년 이래 처음이다.

양식업도 조업을 줄이긴 마찬가지다. 전북 군산 개야도에서 김 양식업을 하는 김종길씨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최소 6~8명으로 2개조를 꾸려 일했다. 평년 기준 1200책의 김을 시설해 2억~2억5000만원을 연매출로 올렸다. 하지만 올해는 김 시설량을 예년의 절반가량인 600책만 계획했다.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작년에 들어올 줄 알았던 외국인이 결국 안 오면서 비료나 유기산 영양제를 주는 사이클을 못 맞췄다. 뿌려놓은 김을 거두지 못하면 비용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올해는 시설량을 아예 적게 잡았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물 수급리포트를 보면 전북은 지난해 김 시설량이 전년에 비해 4% 줄었다. 보고서는 “해당 지역 생산자들이 타 지역에 비해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 시설을 줄이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업량을 줄였지만 인력이 없어 남은 어민들의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김 양식은 제한된 간조 시간에 바짝 씨를 뿌리고 동시에 수확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62세인 내가 젊을 때 이후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건 처음”이라며 “황백화 같은 자연적 현상으로 양식을 망칠 때보다 충분히 생산 가능한 환경에서 일손이 없어 못하는 지금이 심적으로 더 힘들다”고 말했다.

■김 공장·굴 가공도 인력난 비상

수산물 가공업장도 인력난 호소
외국인 노동자 줄고 인건비 2배로
양식업·연안업 등 폐업 줄이어

수산물 가공업장도 인력난을 호소한다. 양식장에서 채취한 물김은 가공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데, 올 1분기 물김 생산은 전년에 비해 7% 소폭 늘어난 반면 가격은 20% 폭락했다. 이 역시 외국인 노동자 수급 문제가 얽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외국인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 마른김 가공업체들이 물김 재고가 적체되는 것을 우려해 원재료 구매를 줄였기 때문이다. 수산업관측센터 관계자는 “김 가공업체는 연중 생산이 아니고 일정 보관 기간을 거쳐 한두 달 작업하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상주하기보다 물김 채취가 끝나는 시기에 그쪽 외국인 유휴인력을 끌어다 쓰는 구조였다”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빌릴 수 있는 외국인이 줄고 인건비는 2배 이상 오르면서 가공업체들이 마른김 생산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굴도 비슷하다. 국내 최대 생굴 산지인 통영에는 굴 까는 공장(박신장) 250여곳에서 1만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9 비자로 들어와 굴 생산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200명가량인데 이들은 직접 굴을 채취하고 박신장으로 옮기는 배달 업무와 박신장 내부 각종 설비 작업 등을 맡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외국인 수급이 막히면서 올해 통영에는 신규 입국자가 1명도 없었다. 당장 올 10월부터 내년 6월까지 본격적으로 박신 작업이 진행되는 굴 출하 기간에 인력난이 예상된다. 굴수하식수협 관계자는 “외국인을 기다리는 신청이 50건 이상 밀려 있다”며 “조합원들이 계속 일할 외국인을 찾는 상황이라 올해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바다①]외국인 노동자 사라진 어촌…오징어 풍년에도 고깃배는 뜰 수 없었다

■인력난 못 버티면 폐업

조업 규모를 줄여서라도 버티는 어민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군산 개야도에서 20㏊(헥타르) 규모 김 양식장을 운영한 송성문씨는 지난 8월 한 해 김농사를 포기했다. 송씨는 올해 받기로 예정된 외국인 노동자 4명 중 2명을 올 초 겨우 받았다. 코로나19 격리 비용까지 포함해 한 사람당 250만원을 주고 데려온 귀한 인력이었다. 평시엔 50만원에 그치는 비용이 크게 뛴 것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송씨는 결국 폐업을 선택했다. 기존에 있던 외국인 인력이 다른 업장으로 이탈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송씨는 “사람이 없어 김 수확을 제때 못하면 양식장 자체가 바다에 쓸려간다. 바람이 불 때 미리 김을 채취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손실이 크다”며 “폐업을 했지만 지금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양식장을 팔 수도 없다. 개야도에서 양식 접은 집들이 나 말고도 여럿”이라고 전했다.

수협중앙회가 지난 9월 취합한 20t 미만 연근해어선, 양식업, 소금채취업 피해 사례를 보면, 지난해 11~12월 군산시에서는 김 양식업 4곳이 폐업했고 10곳이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 연안업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연안 안강망 사업장은 동티모르와 베트남에서 각각 예정됐던 외국인 선원 입국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사업주가 혼자 조업을 이어오다가 폐업했다. 박씨는 “자기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외국인 인력이 없어진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나마 있던 배를 경매로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