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91%까지 가업상속공제”

윤지원 기자

현재 매출 3000억 규모 중견기업
자녀에 법인 물려줄 때 세금 0원
기재부 ‘4000억 확대’ 국회 제안
주요국 대비 대상 넓고 공제율 커
문 정부 조세 개혁 원칙에 ‘역행’

자녀에게 법인을 물려줄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중견기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주요국 대비 공제 대상이 이미 넓은 상황에서 세금 혜택을 받는 기업 수를 더 늘리는 것은 ‘소득 재분배 강화’를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의 조세개혁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15일 기획재정부가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상속세 주요 쟁점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보면 기재부는 가업상속공제 제도에 대해 “경제 활성화, 투자 고용유인 효과 제고 측면에서 일부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공제 한도 및 사후관리의무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대상 기업 범위·사전 가업 요건 등을 합리화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적었다.

구체적으로는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인 중견기업 범위를 현행 기존 매출액 3000억원 미만에서 4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안을 제안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이날 가업상속제도를 포함한 상속세 및 양도소득세 등 소득세법 개정안 논의를 시작했다.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에 해당하는 중소기업과 매출 3000억원 규모 중견기업을 자녀 등에게 물려줄 때 최대 500억원까지 과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확대하려는 것은 재계의 불만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2008~2020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도입된 초기 3년(2008~2010년)과 비교해 최근 3년의 이용실적(2018~2020년)의 총 가업상속공제 규모와 건당 공제금액은 각각 약 17배, 약 8.5배 증가했다. 하지만 이용 건수는 2배 증가에 그쳐 2020년 106건에 머물렀다.

이용 건수가 적은 것은 요건이 엄격해서가 아니라 대상이 될 만한 기업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전체 상속인(34만5290명) 중 상속세 납부 대상자는 2.4%(835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적, 일괄, 배우자 상속공제 등 각종 혜택으로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기에 기업 상속과 관련 있는 유가증권이 상속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에 그친다. 이 때문에 경제개혁연구소는 2019년 관련 보고서에서 “지난 5년 동안 피상속인 중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본 비율은 0.02%에 불과하다”며 “말 그대로 상위 0.1%도 안 되는 소수를 위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구재이 세무사는 “상속 자산은 대부분은 개인 부동산이 많고 법인이 직접 부동산을 보유해서 주식에 그 가격이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이 때문에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대상 자체가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제안대로 개편되면 2019년 결산 기준, 3000억원 이상~4000억원 미만 구간에 해당하는 중견기업 191개가 공제 대상으로 새로 들어온다. 이로써 전체 중견기업 91.4%(4578개)가 상속 자산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미 한국의 가업상속공제는 비상장회사에 한해서만 공제를 해주는 일본이나 자산 규모 2600만유로(330억9000만원) 초과 기업은 일정 요건을 거쳐 공제해주는 독일과 비교해 대상이 넓은데, 이를 더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공제율도 크다. 독일은 담세력을 고려해 공제율을 85%와 100%로 각각 차등 적용하고, 일본은 납세 유예를 해준다. 미국은 2013년 가업상속공제를 폐지했다.

이 같은 중견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가업 자산에만 그치지 않아 조세 형평성을 더 후퇴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진세제하에서 가업상속공제로 ‘가업’이 과표에서 전부 제외되면 세율 전체가 낮아져 가업 외 물려받은 자산에 내야 할 세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구 세무사는 “재계에선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되면 낼 세금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미 수년 전부터 대상 확대를 요구했다”며 “대상 확대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재분배 강화 조세 개혁 틀에서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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