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좋은 일자리’ 공언…MB 정부 ‘효과 부진’ 답습 우려

이창준·안광호 기자

규제 완화·세액 공제 등 경영여건 개선 도와줘 고용 확대 추진

원전 산업 부활 “10만개 창출” 공약…자영업자 맞춤형 지원도

윤 당선인, 구체적 비전 없어…전문가 “개혁 수준 정책 전환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일자리 공약은 ‘민간’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근간에 두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와 세액 공제 등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면, 기업이 성장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취지다. 공공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둔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과는 방향이 정반대다.

다만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민간에만 의존하는 것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심화하고 있는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임금 상승 없는 성장과 임금 소득 양극화를 초래한 이명박(MB) 정부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에 개혁 수준의 경제 변화를 계획하지 않으면 성장과 고용 모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장기적인 고용 확대 방안 외에도 코로나19 충격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단기 고용 시장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원전 수출, 10만개 일자리 창출”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고 강조해왔다. 20일 윤 당선인의 공약집 등을 보면 우선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대거 철폐해 기업 활동을 가볍게 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새 정부 출범 즉시 80여개의 기업 규제를 폐지하는 등 규제 개혁 전담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에서 규제 개혁 전담 기구의 설립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세액공제 규모도 확대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신산업 전환 전용 5년 거치 10년 상환의 장기 금융을 지원하고 중견 기업 신사업 투자에 10% 투자 세액 공제와 25%의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등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고용 창출 측면에서는 원전 산업 부활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가장 구체적이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2030년까지 후속 원전 수출 10기를 달성해 10만개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원전 이외의 분야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인수위 경제분과를 중심으로 일자리 정책에 대한 비전과 방향 제시가 구체화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 서울 광진구청 일자리 알림판에 고용노동부의 취업지원제도가 게시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일자리가 줄면서 정부는 고용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광진구청 일자리 알림판에 고용노동부의 취업지원제도가 게시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일자리가 줄면서 정부는 고용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에서는 또 비대면·플랫폼 서비스 등 코로나19 시기 이후 다양해지고 있는 고용 형태에 대응하기 위한 직능 개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역량 진단부터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 구직 단계에 따른 패키지 형태의 직업 교육이 제공된다.

직업 훈련 과정에서 현장 참여 등 요소를 강화하겠다고도 밝혔다. 자영업자 대상으로는 창업 준비 단계에서부터 업종 전환, 폐업 시 재취업 등 전 단계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제공된다.

디지털·녹색 전환 등 산업 전반에 걸친 대전환 과정에 기존 중장년 노동자들이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도 일부 강구된다. 윤 당선인은 산업 전환에 앞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환 정책을 수립해 기존 노동 인력의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산업 전환이 결정된 경우는 산업별·지역별 노동자에게 맞춤형 교육 훈련을 제공하는 한편 저숙련 취약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지 않도록 다양한 근로 보호 조치를 선제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 “MB 정부 답습·성장 해법 불명확” 우려

일각에서는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며 민간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집중한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이 성장하면 고용도 확대된다는 ‘낙수효과’를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경제 성장이나 고용 확대 효과는 보지 못한 채 일자리 양극화라는 결과만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B 정부 시절 국내 전체 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9.6%에서 노무현 정부 때 10.9%로 조금 높아진 후 2011년 9.9%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03년 10.3%까지 오른 후 MB 정부 때인 2011년 8.2%로 다시 나빠졌다.

MB 정부는 양적인 측면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공약으로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장담했지만, 5년간 목표치 대비 40% 수준인 125만개 정도의 일자리 창출에 그쳤다.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며 성장에 방점을 찍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실제 성과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고용률(15∼64세)은 집권 4년 평균 65.4%에 그쳐 목표에 미달했고, 실업률은 3.5%로 MB 정부 때보다 상승했다. 이는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이 민간 일자리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공공 주도의 일자리 정책을 추진토록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이 ‘좋은 일자리’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민간 경제 성장에 대한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약집을 보면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 ‘과학기술 추격국가에서 원천기술 선도국가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 등이 거론되지만 원전 외에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쓸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혁신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새 정부의 일자리 공약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으면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대는 그저 희망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이 성장을 고용 확대로 연결시킬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 역시 우려되는 점이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장이 곧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미 오래 지속되고 있는데, 민간의 성장을 일자리 확대로 유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며 “특히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새 정부에서 민간 고용 확대를 위해 정책적으로 개입하는 것 자체가 모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대부분이 장기적인 고용 시장 체질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코로나19 충격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단기 고용 시장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취업자 규모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다다랐지만 그 이전부터 우상향하던 고용 증가세를 고려하면 아직 온전한 고용 회복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새 정부의 구체적인 단기 대응책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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