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대필·인건비 후려치기…‘갑질’에 갑갑한 IT 노동자들

반기웅 기자

공정위, IT 업계 하도급 갑질 조사 착수

논문 대필·인건비 후려치기…‘갑질’에 갑갑한 IT 노동자들

수직적 비즈니스 사슬 구조에서 아래로 갈수록 처우와 노동환경 열악
대금 미지급·과업 범위 초과 업무 등 빈번…일 끊길까봐 신고도 꺼려

지난해 소프트웨어 개발자 A씨는 발주기관인 한 공공기관 담당자로부터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담당자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관련 석사 학위 논문을 대신 써줄 것을 요구했다.

담당자는 ‘부탁한다’고 했지만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는 A씨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A씨는 논문을 대리 작성하고 해당 기관과 ‘관계’를 유지했다. A씨는 불공정 행위를 신고할지 상담까지 받았지만 끝내 묵인하기로 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외부에 알리지 않을 뿐 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고하면 일이 끊기고 일하는 동안 발주기관과 불편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보기술(IT) 업계 내 하도급 갑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빈번한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사전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인 공정위는 향후 직권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IT 서비스 분야는 수직적 비즈니스 사슬 구조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 발주처와 하도급업체, 재하도급업체와 재재하도급업체까지 내려간다. 그 밑에는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개인 프리랜서도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처우와 노동환경은 열악해지며 도급 단계별로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 행위가 나타난다.

IT 서비스 분야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2020년부터 전면 개정된 ‘소프트웨어(SW)진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하도급 갑질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변호사)은 “민간이든 공공이든 경력자들이 기피하는 이른바 ‘블랙’ 일자리의 갑질 강도가 높다”며 “주로 물정을 모르는 초급 개발자들이 이런 자리에 가서 갑질에 시달리다 업계를 떠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관합동 SW불공정행위 모니터링단’에 접수된 신고 사례를 보면 개발자 인건비 후려치기, 대금 미지급, 무분별한 유지보수 강요, 과업 범위 초과 업무 등 고질적인 불공정 행위가 드러난다. 갑질에는 경계가 없다.

불공정행위 모니터링단에 접수된 60건 가운데 31건은 민간에서, 29건은 공공기관에서 발생했다.

발주기관인 지방자치단체가 하도급 업체의 특허 기술을 타 지자체에 무료로 배포할 것을 요구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가 하면 한 금융기관은 계약 업무보다 더 많은 업무를 끊임없이 지시해 하도급 업체 개발자들이 줄줄이 퇴사하기도 했다.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공핀테크사업 입찰을 따냈더니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약속 금액과 역할을 바꿔 하도급 업체에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힌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상담만 했을 뿐 실제 신고는 하지 않았다. 불이익을 우려해 직접 조치를 꺼렸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IT 업계 현장에서 만연한 불공정 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관련 협회·관계부처와 협업해 예방활동을 하고 직권 조사까지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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