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기금, 주주권 행사 깐깐해졌다

이사회 독립성·기후변화 대응 요구

주총 ‘반대표’ 사례 증가

최근 4년간 시장 질서 교란 등 법 위반 사내이사 선임 반대율 54%
이사회 성 다양성 확보·탄소배출 감축 촉구 등 적극적 주주 활동

해외 주요 연기금이 국내 상장회사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과거 법을 위반한 이력이 있는 사내이사를 선임하거나 남성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기후변화 대응 관련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4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열린 주총에서 7개 해외 주요 연기금의 국내 상장사 대상 의결권 행사내역을 분석한 결과, 반대율이 2019년 25.2%에서 2022년 33.6%로 증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미국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미국 플로리다연기금, 캐나다 공적연기금, 캐나다 온타리오교직원연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 등 7곳이 분석 대상이었다.

해외 연기금은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많이 던졌다.

지난 4년간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한 비율은 23.0%인 반면,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54.4%로 집계됐다.

연기금은 이사회 독립성이 훼손되거나 법 위반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한 이력이 있는 사내이사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한 회사 관계자가 이사회에 다수 참여하는 것은 총수 일가 영향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경우 현행 법령상 독립성 요건이 상대적으로 촘촘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국민연금도 “기업가치의 훼손이나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다”며 국내 주요 그룹의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선임 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해외 연기금은 이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도 반대표를 던지거나 의결권 행사를 보류했다.

최근 4년간 정기 주총에서 해외 연기금이 이사회의 성 다양성을 이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사례는 2020년 15개사, 2022년 5개사였다. 김선민 기업지배구조원 책임연구원은 “이사회에 한 명 이상의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주된 반대 사유지만 관련 정책의 부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0년 정기 주총에서 온타리오교직원연금이 이사회의 성 다양성 부족을 이유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15개 기업 중 10개 기업은 2022년 현재 여성 이사를 적어도 1명 이상 선임했다. 올해 8월부터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국내 상장기업은 이사 전원을 특정 성을 가진 이사로 구성할 수 없도록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여성의 이사회 진출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업에 대응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 주총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는 처음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공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국내 상장사 5곳이 상정한 이사 후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주요 해외 연기금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관련 정보를 공시하지 않는 경우 의결권 행사를 보류하거나 반대한다고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유럽 최대 규모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 10곳에 탄소배출 감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