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물가···기는 월급' 내 임금, 물가 못따라 간다

이창준 기자 반기웅 기자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한 상인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한 상인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짜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이 6000원을 넘어섰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짜장면 1인분 평균 가격은 6146원(서울 기준)으로 1년 전(5385원)보다 14.1% 올랐다. 깁밥은 2908원으로 ‘한줄 3000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4월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6.6% 상승했다. 3인가족이 외식한번 하려하면 10만원도 빠듯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로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다. 글로벌 투자은행(IB) ING는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조만간 5%대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내 봉급도 오른다면 괜찮다. 그런데 내 봉급만 안 오른다. 그저 느낌 뿐일까. 통계가 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하는 ‘고용노동통계’ 자료를 경향신문이 분석해보니 지난 2월 기준 300인 미만 사업장의 월평균 실질 임금은 313만6950원으로 지난해에 같은 달과 비교해 8.2% 줄었다. 실질 임금은 내가 받는 명목임금에서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임금을 말한다.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실질 구매력을 나타낸 임금으로 명목임금(통장에 찍히 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누어 산출한다. 쉽게 말해 월급 오르는 것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면 마이너스가 된다. 정향숙 고용노동부 노동시장조사과장은 “올해 우리나라는 4% 정도의 물가상승률이 전망된다”며 “물가상승률이 높은 상황에서 명목임금 상승률이 4%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굉장히 낮을 것”이라고 했다.

고물가가 끌어올린 금리도 주머니 사정을 빈곤하게 만든다. 한국은행은 물가 방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렸다. 은행에 이자를 더 낸 만큼 가계가 쓸 돈은 더 적어진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대출 이자 부담은 연간 3조2000억원 늘어난다.

통계청 ‘2020년 일자리 행정통계 임금근로자 부채’에 자료를 보면 2020년 말 기준 임금 노동자들의 평균 대출액은 4862만원으로 2019년에 견줘 10.3% 증가했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7년 이래 가장 큰 증가폭이다.

물가인상이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에서 큰 돈을 번 대기업은 예외다. 노력한 만큼 적정한 임금보전을 요구하는 MZ세대들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일부 대기업은 임금을 빠르게 인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사협의회를 통해 2022년 전 사원의 평균 임금을 9% 인상하기로 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임직원 연봉 총액을 각각 15%, 10% 올리기로 했다. LG전자를 비롯한 LG그룹 계열사도 임직원 평균 임금을 8∼10% 인상할 방침이다. 롯데정보통신은 올해 임직원 평균연봉을 10% 가량 올렸고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업체인 DB하이텍은 신입사원 초임을 14.3% 인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올해 임금 8.5%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문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높은 임금인상이 전체 임금상승률에 착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임금총량이 커진 만큼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은 더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 이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물가상승 → 임금상승 → 물가 추가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인상이 의도치않게 물가인상률을 끌어올리면 그 고통을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받는다. 2019년 말 기준 국내 중소기업 종사자는 1744만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2.7%에 달한다.

지난 2월 통계청의 ‘2020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직장인의 월 평균 소득은 259만원으로 대기업 529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석훈 성결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은 물가 상승분만큼 임단협을 통해서 반영하기 때문에 인플레 충격이 크지 않다”며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외부 충격을 그대로 받는다. 가처분 소득이 하락하기 때문에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는 취약 계층에게 더 치명적이다. 식료품·생필품 인상분 만큼 부담이 된다. 올해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은 2.5% 올랐지만, 물가가 급등하면서 실질 연금액은 줄어들었다. 공공요금 인상폭도 취약계층에게는 부담을 준다. 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 1일부터 8.4% 올랐고 전기요금은 지난달 kWh당 총 6.9원 인상했다. 전기·가스 요금은 하반기에 추가 인상될 예정이다.

고물가 악재 속에 지난달 새 정부 첫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됐다. 노동계는 높은 물가 상승률을 임금 상승률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고물가가 기업의 경영 부담을 높인다며 ‘동결’로 맞서고 있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5명 미만 사업체 노동자 광역시·도별 실태분석’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13.4%인 272만6000명이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27.9%(101만7000명)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상승은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데, 임금상승의 혜택은 일부 노동자에게만 돌아가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이 더 심해지고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상승분이 현실적으로 물가상승분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인만큼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소기업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마이너스인 것은 사실”이라며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올릴 필요성은 있지만 과도한 임금 인상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정선에 대한 사회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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