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공기업 민영화’…‘MB노믹스’ 되살리나

반기웅 기자
다시 불붙은 ‘공기업 민영화’…‘MB노믹스’ 되살리나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발언 논란
“공기업 지분 일부 민간 매각해야”
MB ‘공기업 선진화’ 논리 판박이
당시 명분·실익 제시 못해 ‘무산’

발언 배경에 ‘공약 재정 확충’ 꼽혀
“국채 발행·증세 피하기 꼼수” 지적
정부는 “사실무근” 선긋기 나서

윤석열 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인천국제공항공사(인천공항),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다. 공공기관 선진화를 내걸고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 이명박 정부 이후 10여년 만이다.

정부는 사실무근이라며 민영화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김 실장의 전력을 볼 때 ‘우회 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사전 포석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낸 김 실장은 최근까지 맥쿼리인프라에서 감독이사를 지냈다.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 실장이 밝힌 인천공항 지분 매각 구상은 이명박 정부 때와 다르지 않다.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밝힌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인천공항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지분 49%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천공항 지분 매각은 정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야당과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끝내 불발됐다. 국제공항협의회(ACI)에서 서비스 부문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 선정된 ‘흑자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시 정부는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기업도 있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민영화 이슈의 핵심은 ‘명분’에 있다. 왜 민영화를 하려고 하는지, 민영화의 실익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분 매각은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다시 등장했다.

김 실장은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에서 “(공항)경영은 정부가 하되 지분 30~40% 정도를 민간에 팔자는 것”이라며 정부 경영권을 강조했다. 2012년 국토교통부도 인천공항 지분 매각 관련 정책자료에서 “지분 매각 후에도 정부 지분 51%가 넘는 공기업 체제를 유지한다”며 “정부는 감독당국으로서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자본이 일부라도 들어오면 회사의 경영 방침에는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MB 정부와 같은 논리를 내세워 우회적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공식적으로 공기업 민영화 방침을 밝힌 적이 없다. 공약에도 지분 매각 등 민영화 관련 내용은 담지 않았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범 초 60곳의 공기업 민영화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역시 ‘촛불’ 역풍을 맞고 지지율 하락을 겪은 뒤 대상 기관을 24곳으로 줄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민영화에 관심을 가질 만한 상황 변경은 있다. 김 실장은 “(지분 매각한) 돈으로 가덕도(공항)도 지어야 되고 인천공항도 확장해야 한다. 돈 쓸 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대선 당시 내세운 공약사업을 이행하려면 20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데 국채 발행은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기업 지분 매각은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된다.

이는 지분 매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경기부양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던 ‘MB노믹스’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균형재정을 지키면서 경기부양 사업 지출을 하기 위해 ‘알짜’ 공기업 매각에 속도를 냈다.

나 교수는 “국채 발행은 부담스럽고 증세는 저항이 크다보니 정공법 대신 꼼수로 재원을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재정 확충을 위한 민영화는 여론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도구일 뿐 궁극적 목적은 민영화 그 자체일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밝혔듯 인천공항 지분 매각은 검토한 적 없고 현재 추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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