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글로벌 경제, 만성 불확실성에 직면…사회적 보호 시스템 필요”

김상범 기자

‘기본소득 권위자’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 그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창립자로, 현재는 명예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 <불로소득 자본주의> <공유지의 약탈> 등을 집필한 스탠딩 교수는 오는 22일 <2022 경향포럼>에서 ‘지대 자본주의의 해체: 팬데믹 시대의 기본소득’을 주제로 강연한다. 가이 스탠딩 교수 제공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 그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창립자로, 현재는 명예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 <불로소득 자본주의> <공유지의 약탈> 등을 집필한 스탠딩 교수는 오는 22일 <2022 경향포럼>에서 ‘지대 자본주의의 해체: 팬데믹 시대의 기본소득’을 주제로 강연한다. 가이 스탠딩 교수 제공

기본소득, 일종의 ‘권리’로 지급
경제 역동성·일자리 창출 기여
한국서 현실화 안 돼 안타까워
‘프레카리아트’ 요구 계속될 것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향한 한국 프레카리아트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는 7일 경향신문과 나눈 e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스탠딩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기본소득’은 한국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개념이다. 스탠딩 교수는 기본소득론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1986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를 설립해 30년 넘게 기본소득의 논리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 국민 기본소득’ 역시 그 이론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스탠딩의 생각과 만난다.

모든 시민들에게 조건 없이 균일한 소득을 안겨주자는 기본소득 주장은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사민주의적 복지제도를 옹호하는 진보 진영에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2년여간의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기본소득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강력한 방역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불안정한 상태에 내몰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다.

스탠딩 교수의 기본소득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소한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탠딩은 부동산·지적재산권 등 유·무형의 자산을 소유한 특정 소수가 ‘일하지 않고도’ 발생하는 잉여를 독점하는 현상을 ‘지대(rent) 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반면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며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계층을 ‘프레카리아트’라고 칭한다.

스탠딩은 인터뷰에서 “기술혁명의 이익은 거의 전적으로 지식재산권 등의 자산을 갖고 있는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반면 프레카리아트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점점 더 적은 수입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 우리의 글로벌 경제는 ‘만성적인 불확실성’이라는 도전 앞에 놓여 있다”며 “사전에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후적인 보상,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스탠딩은 오는 22일 열리는 ‘2022 경향포럼’에서 <지대 자본주의의 해체 : 팬데믹 시대의 기본소득>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친다. 다음은 스탠딩과 주고받은 일문일답.

- 코로나19 확산으로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진 것 같다.

“코로나19는 인간 존재의 두 가지 중요한 현실을 상기하게 해줬다. 충격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경제적)보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단순한 일자리로서의 돌봄노동이 아닌, 돌봄 그 자체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 배분 후 부자에 세금 징수
빈곤층 대상 제도보다 효율적
오염활동·공유지 착취 부담금 등
국가적 기금 마련해 재원으로

- 보편적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들에게 현금 또는 이에 상응하는 현물을 아무 조건 없이, 가구원 숫자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조금 더 적은 금액을 어머니 혹은 대리모에게 지급하도록 한다. 기본소득은 일종의 ‘권리’로서 지급되며, 더 많은 경제적 역동성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며 불평등과 개인의 불안 또한 줄여줄 것이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경제적)해방을 불러올 것이다.”

- 기본소득이 저개발 국가에는 효용성이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제한적인 효과밖에 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과거에는 기본소득이 부유한 나라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주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는 기본소득이 저소득 국가에서만 도입될 수 있다는 의견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나는 해당 국가의 생활 수준에 맞게 (액수 등을)조정하면 모든 유형의 국가에 기본소득이 도입될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4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박람회에서 장현국 경기도의회 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지난해 4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박람회에서 장현국 경기도의회 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 한국에서도 올해 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냈다. 하지만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기본소득 어젠다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향한 한국 프레카리아트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한국이 글로벌 ‘지대 자본주의’에서 탈피해 더욱 평등하고 역동적인 경제 체제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와 양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국의)현명한 정치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하지만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이 기존 복지체제에서 보호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손해가 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주류다. 부자나 저소득층에나 똑같은 소득을 제공하면 오히려 역차별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반대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소득구간별)한계 세율을 완만히 인상하는 등의 세제 개편과 함께 도입한다면 부자들이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가위의 날 하나만으로는 종이를 자를 수 없다. 보편적으로 나눠준 뒤 세금을 통해 (부자들에게서)돌려받는 것이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공평하다. 선별적 복지는 항상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가난한 이들을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 기본소득의 재원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나.

“새로운 소득 분배 체계로서의 기본소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정의, 완전한 자유, 기본적인 (경제적) 보장이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적인 기금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염 활동에 대한 부담금과 공유지를 착취하는 활동에 대한 부담금 등이 기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기술 혁명 급성장
이익은 지식재산권 소유자에
‘프레카리아트’ 손실 점점 증가
45년 이후 낡은 복지제도 한계

- 기술혁명과 인공지능(AI)의 발전, 코로나19로 인한 빅테크 기업의 급성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기술혁명의 이익은 거의 전적으로 지식재산권 등 자산을 갖고 있는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반면 프레카리아트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점점 더 적은 수입을 얻는다. 이 같은 상황은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네오파시즘 권위주의 정부의 등장을 초래할 수 있다.”(스탠딩 교수는 사회·경제적 상실감을 가진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날 경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정치적 구호에 이끌리는 ‘신파시스트’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해 왔다.)

- 전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자산 격차 확대 속에서 주거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본소득은 많은 사람들의 주거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정부의 임대료 대책도 필요하다. 모든 국가는 더욱 저렴한 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불안정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정규직 노동에 토대를 둔 현행 사회보험 제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동료 학자들에게도 이 답변을 전하고 싶다. 1945년 이후 시대의 낡은 복지제도는 완전고용·전일제·고임금 일자리라는 토대 위에서만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의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프레카리아트의 경제적 손실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21세기 우리의 글로벌 경제는 만성적인 불확실성이라는 도전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사전에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후 보상,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과거의 사회민주주의식 복지국가 모델에는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민주주의는 지난 세기 초에는 진보적이었지만 노동과의 연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일하는 사람만이 사회보장과 완전한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제도는 프레카리아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프레카리아트의 요구와 열망에도 부응하는 새로운 진보적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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