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요금 무시한 최저임금 동결론

반기웅 기자
물가·요금 무시한 최저임금 동결론

임금 인플레이션 우려 앞세워
정부·재계 ‘9160원 유지’ 여론전

전경련 “물가 상승 악순환” 주장
전기·가스요금 인상 고려 안해

정부가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경제계가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내세워 ‘임금 동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도 임금 인상이 물가를 더 올릴 수 있다며 ‘임금 동결론’에 힘을 싣고 있다. 6%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넘보는 상황에서 임금 동결은 사실상 임금 삭감에 준하는 조치다. 주요 대기업들이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확정한 것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에 대한 책임을 ‘최저 임금노동자’에게만 떠넘긴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7일 낸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하면 최대 16만5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분석도 내놨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지면 물가가 추가로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영세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더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전경련은 지난 26일에도 주요 5개국(G5)의 노동비용 증가 추이를 비교한 보고서를 내고 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전경련은 “한국의 임금근로자 1인당 연간 평균 급여는 2000년 2만9238달러에서 2020년 4만1960달러로 43.5%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G5의 1인당 연간 평균 급여는 16.5% 늘었다”며 “한국은 노동비용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김용춘 전경련 고용정책팀장은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경직적인 노동법제와 호봉급 방식의 임금체계로 수년간 기업들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최근 물가 상승 국면에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는 물가 상승 압박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속에 최저임금 인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정하지만 올해는 고물가로 인상론이 힘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 등도 임금발 인플레이션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률이 높은 시기에 노동비용이 더욱 쉽게 물가에 전가된다”며 “물가와 임금 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물가와 임금 상승의 악순환을 경고하며 임금 인상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최저임금과 달리 일부 대기업은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9% 인상을 발표했고,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부문 계열사들도 9% 인상키로 했다. LG전자를 비롯한 LG 계열사도 8~10% 수준에서 임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각각 평균 15%와 10%의 임금 인상(전체 연봉 재원 기준)을 단행하기로 했다.

소비자물가와 공공요금이 치솟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인플레이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처지에 놓였다.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을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줄어들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은 임금을 올렸고, 공공요금마저 인상하는 시기에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라는 얘기”라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최소한 실질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 5~6% 인상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