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친족 가구원’ 100만 시대
친구나 연인 등 ‘비혼동거’ 늘어…비친족 가구수 47만 돌파
“주거지원제도 이용 어려워” 현실 반영한 정책 요구 높아져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철형씨(39·가명)는 연인과 2년6개월째 동거 중이다. 이씨 커플의 일상은 여느 신혼부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비혼동거’의 벽을 마주한다.
이씨는 주거 대출·주택 청약 등 ‘법률혼’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주거 지원을 받지 못한다. ‘부부’에게 제공하는 자동차보험 할인도, 통신사 가족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제도적 ‘관계’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하고 ‘공무’를 처리하는 데도 불편을 겪는다. 하다 못해 등기 우편을 대신 수령할 때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받고도 선뜻 답하기 어렵다. 이씨는 “실생활은 부부로서 불편함이 없고 만족도가 높다”며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제도권에서 밀려나 있다”고 밝혔다.
이씨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 애인과 동거하거나 친구끼리 함께 사는 비(非)친족 가구가 늘고 있다. 비혼 동거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결혼을 통해 꾸린 가부장적 핵가족’으로 정형화된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 수는 1년 전(42만3459가구)보다 11.6% 늘어난 47만2660가구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많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가운데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뜻한다.
2015년 21만4421가구에 불과했던 비친족 가구는 2020년 40만가구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50만가구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비친족 가구원 수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비친족 가구원은 101만5100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6년(58만3438명)과 견줘 5년 만에 74.0% 늘어난 것이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가족정책은 여전히 전통적 의미의 가족, 이른바 ‘정상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비혼동거가족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50.5%가 “주거지원제도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고 응답했고, 49.2%는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 적 있다”고 답했다.
법과 제도가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지만 기독교단체 등의 반대 여론에 밀려 국회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가족 다양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련 법은 혈연, 결혼 단위로서의 가족을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다”며 “가족정책은 인구와 가족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