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 관련 첫 정부 연구 용역 보고서
경제적 부담 인한 배출 감축 효과 예상
배출권거래제 강화·탄소세 도입 제안
지구 한 편에서는 폭우가 내려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다른 편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강바닥이 말라붙었다. 모든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는 어렵지만, 재난들을 꿰는 열쇳말은 이제 명확하다. ‘기후위기’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에서 시작한 기후위기는 수많은 기후 재난을 일으키며 인간의 삶도 파괴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온실가스를 탄소로 환산하면 6억7960만tCO2eq(탄소 환산톤, 이하 t으로 표기)이다. 이 탄소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얼마인지, 이를 줄이기 위해서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 등을 활용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연구한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기획재정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조세재정연구원이 공동 발주했고, 에너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환경연구원, 교통연구원이 연구 용역을 진행해 지난 2월 정부에 제출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탄소 가격 부과체계 개편방안 연구’는 탄소세와 관련한 첫 정부 연구 용역 보고서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안 중 하나인 ‘경제적 유인 제도’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탄소세 부과나 배출권 거래제 등으로 탄소 가격을 부담시키면 한국에서 온실가스 감축량이 어떻게 바뀔지 예상했다.
연구진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1t당 5만5400원으로 산정했다. 이를 지난해 배출한 온실가스 6억7960만톤에 적용하면 총비용은 37조6498억원이 된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1t이 증가했을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 건강 피해 등을 추정해 계산한다. 미국 범부처 작업그룹(IWG)은 2020년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1t이 추가될 때 드는 사회적 비용을 51달러로 계산했다. 연구진은 “IWG 탄소의 사회적 비용 추정치는 전 지구적 기후 모형을 사용해 추정한 값으로 미국에 국한된 결과가 아니다”며 이 값에 2020년 당시의 환율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탄소세법’을 발의한 이후 탄소세 논의는 대선을 거쳐 이어지고 있다. ‘탄소 가격’을 적절히 산정해 기업 등에 부과하면 탄소 배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생산 비용에 반영할 수 있다. EU(유럽연합),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는 전환(발전), 산업, 수송, 건물 각 분야에서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등 정책을 적절히 조합해 탄소가격을 부과하고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전환·산업 부문에는 기존의 배출권거래제 강화를, 수송·건물 분야에는 탄소세 신규 도입을 제안했다.
수송 분야에 부과되고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명목총세율은 2007년 이후 그대로다. 그간 물가가 오른 것을 고려하면 실질 세율은 하락했다. 연구진은 “수송 부문의 경우 에너지세제 개편 시 반영되지 않았던 탄소 비용, 실효세율 하락분 등을 중심으로 탄소세는 물론이고 환경 비용과 혼잡 비용 등을 아우른 형태로 총체적인 탄소 가격 개편 여력 및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냈다. 건물 분야에서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는 게 어려워 “탄소세를 도입해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도 했다.
탄소세 도입을 논의할 때 똑같은 세금이 부과돼도 소득이 적을수록 부담이 커지는 ‘세 부담의 역진성’을 따지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냈다. 연구진은 “(에너지) 저부담 정책을 견지하는 경우에는 탄소배출 감축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세 부담의 역진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는 저소득층에 한정된 소득지원정책”이라고 지적했다.